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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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집 <공주님>의 표제작이기도 한 '공주님'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도발적인 소설의 첫 문장에 꽤나 당혹스러워했거나 조금쯤 놀라지 않았을까. '목을 매단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내가 겨우 다섯 살이었다는 게 다행이다.'라니.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도, 그때 나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다섯 살짜리 꼬마가 어머니의 죽은 모습을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커튼레일에 매달려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간식을 먹는다고 서술한다. 나와 같은 순진한 독자들로서는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충격적이라기보다 엽기적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편으로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나에게 그 후의 삶에 지침과 같은 걸 마련해주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죽을 자유조차 가질 수 없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자유를 빼앗게 된다는 것도. 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하고 싶다. 기억은 쌓여가지만 그 기억 속에 어떤 불순물도 섞이게 하고 싶지 않다." (p.19~p.20)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인 '나'(도키노리)의 성격 형성이 그 장면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나'는 어머니가 죽은 후 외삼촌의 집에서 성장한다. 외삼촌 집에는 4살 위인 사촌 형 세이이치와 여동생 세이코가 있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나'를  무척이나 배려해주었고, 세이이치 역시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여동생 세이코는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반항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세이코는 '나'를 이성의 감정으로 '나'를 좋아하는 까닭에 '나'의 방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나'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대학생이 된 '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 여사친 '아사코'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동성의 친구보다도 더 허물없는 사이였다.

 

"나와 아사코의 기본은 닮은 듯하면서 전혀 다르다. 그녀의 기본은 갈망하는 것을 선택했고, 나는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게 부족한 걸 항상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채워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기본을 가르쳐줄 세이이치와 같은 남자를." (p.64)

 

아사코와 나는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늘 붙어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연극을 보는 도중에 속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만 토하게 되고, 걱정이 되었던 아사코가 '나'와 함께 집으로 간다. 그런 인연으로 아사코는 결국 사촌 형의 애인이 된다. 세이이치의 연인이 된 아사코는 조금씩 변해간다. 가장 친한 남동생 같았던 아사코의 돌변이 달갑지 않았던 '나'. 사촌 여동생 세이코가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완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세이코의 보호자로서 여행에 동반한다. 세이코는 '나'를 자극이라도 하려는 듯 급조한 남자 친구를 대동하지만, '나'와 세이코의 다정한 모습을 오해한 그는 결국 달아나고 만다. 세이코의 남자 친구인 다케시는 세이코가 피자 배달을 시키면서 만난 피자 배달부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세이코와 잤다.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셨다. 태양 아래에 있으면 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빛 아래에 있으면 날이 밝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순간에 없는 걸 갖고 싶어 한 적이 없다. 낮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원하지 않으며 밤에 푸른 하늘을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이 내 세계의 전부다. 그걸 전부 먹는다. 씹어 삼켜 포식하고 눈을 감았을 때 세계는 마침내 끝난다. 그런 느낌이 든다." (p.56)

 

세이이치는 아사코의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아사코는 세이이치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세이이치는 결혼을 결정한 후 처음으로 아사코의 집을 방문한다. 아사코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은근히 소심했던 세이이치는 쑥스러웠던지 '나'를 대동한다. 아사코가 만든 요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나는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털고 잠자리에 들자 술에 취한 세이이치마저 술에 취해 쓰러지고 만다. '나'는 싫다고 거부하는 아사코를 범하게 된다.

 

세이이치는 아사코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을 서두르게 되고, 결혼식장에 참석하기 전 세이코는 '나'에게 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나가 함께 살자고 제의한다. 양복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했던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들른다. 집 앞에서 '나'는 세이코가 양복 주머니에 넣어 준 쪽지를 읽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다케시와 그가 데려온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마다 에이미는 여자 '무라카미 류'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성애를 전면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외설적이라거나 난잡하다고 비판받지 않는 까닭은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연애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소위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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