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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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을 먹고 잠깐 누웠던 게 까무룩 낮잠으로 이어졌던가 보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제5호 태풍 다나스에 대한 뉴스 특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릴 시간도 아닌데 밖은 여전히 어둡고 간간이 빗방울의 떨어지고 있었다. 태풍 다나스는 결국 육지에 상륙도 하지 못한 채 열대저압부로 약화되었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던 김진명의 소설 <직지 1>를 마저 읽었다.

 

소설의 시작이 어떠해야 한다고 따로 정해놓은 규정은 없지만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도입부는 늘 존재하게 마련이어서 <직지>의 도입부 역시 강렬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사회부 기자 기연이 잔혹한 살인 현장을 취재하는 장면. 나도 모르게 나는 최근에 있었던 고유정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떠올렸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소설의 묘사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메슥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상 옆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뼈 부스러기며 내장 조각에 이어 흉곽이 함몰돼버린 시신이 망막에 잡히는 순간'과 같은 문장을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차라리 고역이었다.

 

창과 같은 길고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심장이 관통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피살자는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교수.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직업도, 성품도 아닌 그는 유학을 떠난 아들 하나와 살해 당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가족의 전부였다. 일류급의 전문 살해범이 개입한 듯한 살해 현장에는 족적을 포함한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고 감식에 참여했던 베테랑 형사마저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을 염려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기연이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까닭은 피살자의 귀가 잘린 것과 살해 후 목에 남겨진 송곳니와 입술 자국이었다. 드라큘라가 피를 빤 듯한 흔적. 기연은 차량의 내비게이션에 남은 행선지를 토대로 전형우 교수가 청주에 있는 서원대학교를 다녀온 것을 발견하고 전 교수가 접촉했던 사람을 추적한다.

 

기연은 처음에 서원대학교의 김정진 교수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김정진 교수는 '직지'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인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가 '직지'라 확신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캐고 있는 인물이었다. 14세기 금속활자를 가진 동방의 어느 나라 왕에게 보냈다는 교황의 편지와 바티칸 비밀수장고 내부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로마대학교 출신인 전 교수가 연구 조사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김정진 교수를 통해 전해 듣게 된다. 기연은 전 교수의 죽음이 '직지'와 연관된 많은 비밀과 그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계획에 의해 자행된 철저히 계산된 범죄임을 직감하고 그녀가 독일에서 유학 당시 밀라노 신학대학에서 공부하였던 연세대학의 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라틴어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최 교수의 도움을 통하여 기연은 전 교수를 살해한 범인이 외국인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 교수의 서재를 샅샅이 뒤진 기연은 전 교수의 메모에서 '스트라스부르의 피셔 교수와 아비뇽의 카레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김정진 교수와 함께 유럽으로 향하게 되는데...

 

"피셔 교수는 연구의 성과를 알려주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전 교수가 절대 알아선 안 될 비밀에 다가선 걸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을 거요. 그래서 혼비백산해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고, 그 누군가가 한국에 암살자를 보냈을 거요. 여기까지가 큰 줄기에서 본 전 교수 사건이오." (p.235)

 

그러나 피셔 교수를 만났던 기연은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채 귀국한다. 그리고 다시 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기연의 도움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와준 최 교수는 세 시간여의 작업 끝에 전형우 교수가 로마대학교에서 서지학을 공부하던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통해 그와 가까웠던 인물인 파블리오 인데르노를 찾아낸다. 바티칸 수장고 관리신부인 그는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일간 신문의 독자 문의도 받고 있다. 그를 발견함으로써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1권은 그렇게 막을 내린 채 2권으로 이어진다.

 

일정한 시간에 매일 반복되는 일들도 여의치 않은 환경에 의해 그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종일 흐리고 어둑어둑한 날,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날에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오는 것조차 힘든 추리소설을 붙잡고 읽는다는 건 까무룩 낮잠에 빠져드는 일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 나는 그런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위험한 책 읽기에 몰입했다.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간 듯하다. 귀중한 주말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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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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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택지조성사업 현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나무를 베어내고 산과 구릉의 속살이 드러난 자리에 선캡과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아줌마들이 아주 오래 전의 집터인 듯 보이는 매장문화재 발굴터에서 세월아 네월아 솔질을 하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너른 공터에는 뙤약볕과 마른 먼지만 가득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었다. 그 허허로운 풍경에 점점이 박힌 저 여인네들은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성과도 없는 무한 반복의 솔질을 해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들의 어깨 위로 비스듬한 석양이 쏟아지고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파란 방수포가 씌워졌다.

 

"시간여행을 꿈꾸는 인간의 판타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고고학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꿈꾸던 찬란한 과거 같은 건 없다고 밝혀진다 해도 혹은 인류가 바라마지않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여행을 꿈꿀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색다를 시공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에 있다." (p.26)

 

내가 어느 택지조성사업의 현장에서 보았던 황량하고 나른한 풍경은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에도 그대로 옮겨진다. '고고학자들은 흙먼지 자욱한 열악한 환경에서 발굴을 합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저서는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고고학에 대한 편견이나 헛된 상상을 일거에 깨트린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이나 아프리카 오지의 어느 사막지대에서 거대 공룡의 화석을 발굴하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렵게 발굴한 토기 조각을 통해, 토기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식물 성분을 통해 과거의 생활상을 연구하고 그 시절의 문화와 풍습을 상상하며 이를 통하여 알게 된 고고학자들의 지식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그들의 임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짧게는 100여 년 전서부터 길게는 수천 년에 이르기까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더욱 또렷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고고학자인 셈이다.

 

"사람들이 고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물이 주는 여러 가지 창의적인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 전시품 안에 잇는 유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고고학에서는 하나의 유물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또한 새로운 유물은 계속 발견되고 그에 대한 해석 역시 계속 바뀐다. 이렇듯 고고학에는 정답이 없다. 고고학은 매일 바뀌어가는 일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p.277)

 

고고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내가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이 책에 매료되었던 까닭은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마도 저자의 유려한 문체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그것은 고고학자로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러시아,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직접 발굴을 주도했다는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실제 발굴 이야기들을 실감 나게 전하고 있다.

 

"초원을 조사할 때에 틈만 나면 땅에 누워보곤 한다. 그러면 온갖 풀들의 희미한 향이 더 또렷하게 맡아진다. 민트향, 맵싸한 향, 달콤한 향, 이 초원의 향은 순간 다른 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수천 년간 이 땅에서 살아온 유목민들의 삶 속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들과 나는 이렇게 향기로 소통을 한다. 나 혼자 하는 공상일지도 모르겠지만." (p.144)

 

책을 읽는 독자는 고고학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밝히는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컨대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무덤에서 발굴한 여러 유물을 통해 추론하고, 검증하며, 때로는 상상을 통해 종합한다. 노련한 형사가 작은 단서들을 취합하여 범인을 확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확증하기 위해서 고고학자는 무덤을 발굴하고, 향기와 음악과 음식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마약이나 젓갈 또는 문신과 같은 생소한 분야를 탐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고고학은 한 시대를 연구하는 종합학문인 셈이다.

 

"살아가면서 경험한 행복한 기억은 동시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때에 대한 슬픈 기억이기도 하다. 타투는 고통스러운 행위이지만 그럼으로써 그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몸의 감촉과 정신의 기억이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타투야말로 몸에 새기는 마음의 지도가 아닐까 싶다." (p.191)

 

나는 산길을 걸을 때마다 과거에 이 길을 걸었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곤 한다. 그들도 나처럼 헐떡거리며 저 언덕을 숨 가쁘게 올랐고, 정상의 바위 위에 앉아 흐르는 땀을 식혔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녹색의 삼림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했을까. 저 멀리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들을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허망하게 바라만 보았을까. 내가 걷는 이 길 위에서 그들도 나처럼 별의별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상념에 젖곤 했을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을 읽었던 오늘, 나는 먼 과거를 향해 시간여행을 한다. 그들도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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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아침 몇 년째 오르고 있는 산의 초입에는 능선을 따라 오른편에는 어느 종친의 가족묘가 있고  그 주변을 따라 둥글게 철망이 쳐져 있다. 그리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성 현수막이 걸려 있고, cctv도 서너 대 설치된 듯하다. 무슨 보물을 숨겨둔 곳도 아닌데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안 시설을 갖추고 있는 셈인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작년부터는 가족묘의 아래쪽에 있는 좁은 공터에 진돗개인 듯 보이는 개 한 마리를 묶어두었다. 개는 긴 목줄에 묶인 채 오가는 등산객들을 향해 열심히도 짖어댔다.

 

밤이고 낮이고 비 한 방울 피할 곳 없는 공터에서 등산객들을 향해 그저 목이 쉬도록 짖기만 하는 개가 꽤나 안쓰러웠는데 개 주인도 너무 심하다 생각했던지 어느 날 개가 머물 수 있는 개집 하나를 갖다 놓더니 언젠가부터는 밤에는 숫제 개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산을 오르는 새벽 5시 30분께에는 보이지 않던 개는 산을 내려오는 새벽 6시 30분이나 되어서야 보였다. 말하자면 개도 출퇴근을 하는 셈인데 그렇게 대우가 좋아진 탓인지 내리는 눈·비를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던 초창기의 열악한 환경에서는 등산객을 향해 악을 쓰고 짖기만 했던 험악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등산객이 나타나면 귀찮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일어나서는 바람 반 소리 반으로 겨우 짖는 시늉만 했다. 그 소리는 마치 하루에 행사 네댓 곳을 소화한 어느 가수의 심드렁한 목소리인 듯 또는 외출에 나서는 허리 굽은 노인의 힘없는 기침 소리인 듯 들렸다. 이를테면 개도 그만의 요령을 터득한 셈인데, 등산객들에게도 이른바 이것이 자신의 소임임을 확실히 알려주는 듯했다. 공짜로 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는 듯.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일본 여행 자제 움직임이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쓰던 일본산 문구류나 음료 등을 전혀 구매하지 않고 있다. 내 주변에도 적극 홍보하면서 말이다. 이를 두고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토착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끝까지 지속해볼 생각이다.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던 '냄비 근성'과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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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신소영 지음 / 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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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자주 있는 일이다. 아들과 아내와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는 딱히 안부전화를 하지 않아도 잘 지내겠거니 크게 걱정하지 않던 사람들조차 요즘은 나로부터의 연락이 조금 뜸하다 싶으면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아내가 떠난 후 나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부터 쭉 독신의 삶을 이어왔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독신으로 산다는 건 꽤나 번거롭고 힘든 일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아빠를 떠나보낸 지 이제 18년이 된 싱글 선배, 엄마. 나는 엄마를 닮고 싶다. 내가 가진 노년에 대한 희망은,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엄마가 꽃에 인사할 때마다 남사스러워 모른 척을 했는데 어느새 나도 따라 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깜짝 놀라다가도 안심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다정하고 유쾌한 엄마를 닮아가는 게 좋아서." (p.54)

 

신소영 작가의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는 대한민국에서 비혼인 채 나이 든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는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비치는지 깨닫게 된다. 결혼과 비혼은 단지 개인의 선택이거나 우연에 의한 결과일 뿐인데 비혼족을 마치 관습에 어긋나는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인 양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이유는 비혼보다는 결혼을 선택한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좋게 말하자면 정이 많은 민족이기 때문일까.

 

잡지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다가 우울증과 돌발성 난청으로 일을 그만두고 마흔한 살에 방송작가에 도전, 5년간 MBC 라디오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신소영 작가는 현재 49살의 비혼족으로서 자신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소신에 의해 비혼을 선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변에서 보면 세월에 의해 등 떠밀리거나 어쩌다 보니 비혼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비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비혼인 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종종 혼자 사는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혼자라는 사실에 사무치게 외롭고 고단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고 신나는 것만은 아녜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처량한 여자가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어디 여행 다녀왔다,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낸다, 등의 답으로 대신하곤 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니까." (p.282)

 

책의 목차를 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바가 더욱 선명해질지도 모른다. 프롤로그에 이어 PART 1 나는 결혼 없이 산다, PART 2 나의 폐경을 충분히 애도하며, PART 3 보호자 없는 인생에서 진짜 필요한 것, PART 4 짝이 없어도 충분하다, PART 5  남은 삶을 근사하게 만드는 방법 그리고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비혼족이든 결혼을 한 사람이든 자신의 삶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게 비혼이라고 해서 달라질 리도 없다. 다만 노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조금 다르고,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게 다를지도 모른다.

 

내게 전화를 걸어왔던 친구는 고등학생, 대학생인 2명의 자식과 아내를 돌보느라 남은 건 빚밖에 없노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나마 나는 아들 하나만 돌보면 되니 자신에 비하면 부담이 좀 덜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누구에게나 처음인 삶, 어느 게 덜하고 어느 게 더하다 비교한다는 게 있을 수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남의 손에 있는 떡이 제 손위에 있는 떡보다 더 커 보인다고 부러워하면서 평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71번째 맞는 제헌절,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결혼한 사람이든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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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소나기가 내린 탓인지 새벽 등산로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알맞게 부드러워진 흙과 절정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들, 그리고 새벽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맹꽁이 울음소리... 등산로에 떨어진 사탕 껍질과 종이컵, 일회용 건강식품 파우치 등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를 준비해 간 20L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려오는데 정말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나 뵙던 할머니인데 언제부턴가 통 보이지 않았었다. 등산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사는 곳도,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속으로만 그저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할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다른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뭘 이렇게 많이 주웠느냐?"는 할머니의 말씀에 늘 하던 일이니 정 보기 싫을 때쯤이면 이따금 줍고 있노라며 안부를 대신했다. 할머니는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었다면서 마치 남의 일을 전하듯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그만해져서 나들이 삼아 사부작사부작 나선 길이라며 바쁠 텐데 어서 내려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듯 고마운 것이다.

 

오늘 아침 자유당의 정 모 최고위원이 했던 막말을 뉴스에서 보면서 참으로 몹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명의 어린 목숨이 죽었는데 인간이라면 가슴이 아파서 차마 그 사실조차 입에 담기 어려울 텐데 그것을 정쟁에 이용하는 조롱과 비웃음 거리로 삼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옆에서 듣고 말리지는 못할망정 배를 잡고 웃는 놈들은 또 뭐란 말인가.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 아니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막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고귀한 목숨을 가지고 조롱을 한다는 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일 터,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프다. 다음 총선에서는 그런 작자들을 모조리 낙선시킬 수 있으려는지.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생존도 그렇게나 반가운 일인데 무고한 생명의 스러짐을 아파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인간이라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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