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소나기가 내린 탓인지 새벽 등산로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알맞게 부드러워진 흙과 절정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들, 그리고 새벽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맹꽁이 울음소리... 등산로에 떨어진 사탕 껍질과 종이컵, 일회용 건강식품 파우치 등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를 준비해 간 20L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려오는데 정말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나 뵙던 할머니인데 언제부턴가 통 보이지 않았었다. 등산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사는 곳도,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속으로만 그저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할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다른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뭘 이렇게 많이 주웠느냐?"는 할머니의 말씀에 늘 하던 일이니 정 보기 싫을 때쯤이면 이따금 줍고 있노라며 안부를 대신했다. 할머니는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었다면서 마치 남의 일을 전하듯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그만해져서 나들이 삼아 사부작사부작 나선 길이라며 바쁠 텐데 어서 내려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듯 고마운 것이다.

 

오늘 아침 자유당의 정 모 최고위원이 했던 막말을 뉴스에서 보면서 참으로 몹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명의 어린 목숨이 죽었는데 인간이라면 가슴이 아파서 차마 그 사실조차 입에 담기 어려울 텐데 그것을 정쟁에 이용하는 조롱과 비웃음 거리로 삼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옆에서 듣고 말리지는 못할망정 배를 잡고 웃는 놈들은 또 뭐란 말인가.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 아니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막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고귀한 목숨을 가지고 조롱을 한다는 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일 터,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프다. 다음 총선에서는 그런 작자들을 모조리 낙선시킬 수 있으려는지.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생존도 그렇게나 반가운 일인데 무고한 생명의 스러짐을 아파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인간이라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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