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위세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요즘 휴가 계획을 짜고, 휴가라는 들뜬 분위기를 단 하루라도 먼저 맛보려 애쓰고 있다. 사실 휴가라는 게 막상 떠나보면 고생길이 되곤 하지만 떠나기 전의 기대와 설렘은 사람들을 한껏 부풀게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매년 여름휴가를 기다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것이다. 물론 장고 뒤에 악수 나온다는 바둑 격언이 어쩌면 그렇게 잘도 들어맞을 수 있을까 신기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하기야 코앞의 삶도 장담할 수 없는 전쟁 중에서도 사람들은 때로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을 유지했을 테고 또 그래야만 살아지는 게 삶이니까. 지금과 같은 코로나 정국이 금년을 넘어갈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수일 또는 수주 내에 언제 그랬냐는 듯 코로나 정국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지금의 상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우리의 일상은 또 그렇게 이어질 테고. 그러므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어쩌면 애초에 불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중곤 박사의 <종말의 밥상>을 읽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먹는 즐거움이라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먹거리에 문제가 있음을, 그것도 심각할 정도의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그리고 식도락에 대한 욕구를 탐하면 탐할수록 지금보다 더한 위기 상황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식탁의 풍요는 인류 시작 이래 최고조에 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풍요로움과 화려함 이면에 어떤 모순과 허허로움이 상당히 자리잡고 있음을 생각은 해보았는가. 사람들은 어렴풋이 영양 가득해 보이는 식탁에 어떤 애매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바쁜 일상생활로 인해, 그리고 농수산물 생산자와 가공업자들의 교묘한 위장술로 인해 사실을 정확히 알고 대처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는 사이 가족은 갖가지 비전염성질환에 노출돼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 심지어 야생 먹거리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숲 속의 바이러스들마저 불러내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종말의 밥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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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속성 -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
김승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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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의 강연을 듣거나 그의 저서를 읽고 난 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연의 내용이 너무 평범하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어 실망했다는 쪽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어려웠다는 쪽이 그것이다. 말인즉슨 강연을 들었던 두 부류,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는 강연자로 나선 사람의 명성이 크면 클수록,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는 일반인이 차후에 실망할 확률은 비례해서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정 반대의 결과가 도출될 듯한데 왜 우리는 이러한 엉뚱한 결과와 마주치는가.

 

글로벌 외식 그룹인 SNOWFOX GROUP의 회장이자 전 세계를 오가며 각종 강연과 수업을 통해 '사장을 가르치는 사장'으로 알려져 있는 김승호 회장의 강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최근에는 외식 기업 이외에도 출판사와 화훼 유통업, 금융업, 부동산업의 회사를 소유하기도 한 김승호 회장은 자수성가의 표본이자 3,000여 명의 사업가 제자들을 양성한 지도자이며, <자기경영 노트>, <김밥 파는 CEO>, <생각의 비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쓴 장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이지만 내가 아는 한 김승호 회장의 강연을 듣고, 혹은 그의 저서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거나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3년 전 어느 극장 하나를 빌려 대중에게 강의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 책 <돈의 속성> 역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상속을 받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다.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면 이 중에 가장 쉬운 것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다. 복권 당첨 비율은 사업 성공 비율보다 훨씬 낮다. 설령 당첨돼도 돈의 성질이 너무 나빠서 오래도록 부자로 살 확률이 거의 없다." (p.67)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대개 위와 같다.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이런 걸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도 여러 곳이다. 종잣돈 천만 원을 만들고 그 돈을 1억 원, 10억 원, 100억 원, 수천억 원이 될 때까지 돈을 관리하며 터득한 '돈'이 가진 속성을 정리한 돈에 대한 이론서인 동시에 '진짜 부자'가 된 저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비법서이기도 한 이 책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과연 그만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 평생 부자로 살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빠르고 편한 지름길을 안내하는 보물 지도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전망은 심히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투자는 지식과 지혜가 합쳐져야 성공한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오만해지고 지식이 없는 지혜는 허공만 안게 된다. 지식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말하고, 지혜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이치를 깨닫는 일이다. 어떤 분야든 대가가 된 사람들은 지혜와 지식수준이 남다르다. 그가 음악가든, 운동선수든, 예술가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모두 어떤 경지에 이른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p.104)

 

내가 이런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돈은 감정을 가진 실체라서 사랑하되 지나치면 안 되고 품을 땐 품어도 가야 할 땐 보내줘야 하며 절대로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주장 역시 과거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혹은 다른 책에서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맥락의 문구를 한 번쯤 듣거나 읽어보았을 것이며,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돈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말 또한 여러 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말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 부자로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편적인 방법 이외의 다른 특별한 방법만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비밀은 저자가 그와 같은 평범한 말을 하게 된 동기와 그만의 경험, 즉 말의 이면에 존재하는 원천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가의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돈을 모으는 네 가지 습관을 말하고 있다. '첫째,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켜라. 둘째,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를 잘 정리한다. 셋째, 아침 공복에 물 한 잔을 마셔라. 넷째,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라.'가 그것이다. 이러한 습관에 대한 조언 역시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비법은 평범함 속에 감추어지게 마련이고,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가장 보편적인 조언들 역시 실천에 있어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부자가 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그 비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비법의 평범함으로 인해 그것을 우습게 여기거나 간단한 듯 보이는 방법일수록 반복적 실천은 더욱 어렵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고 했던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조언 중 한 허리를 뚝 잘라 뜨겁게 사랑할 줄만 알았던 건 아닐까. 그런 후회가 밀려오는 건 왜일까. 장맛비도 그친 후텁지근한 저녁, 이 늦은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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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 시집 -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에게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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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성도 시시각각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느낀다. 젊어서는 잘 몰랐었는데 과거에 썼던 글과 최근에 내가 쓴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면 푸석푸석 메마르고 물기가 빠진 듯한 인상을 받곤 한다. 물기가 빠진 피부가 쭈글쭈글 탄력을 잃고 허옇게 각질이 피어나는 것처럼 물기가 빠진 문장 역시 뭔가 활력을 잃고 시들시들 메말라 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시를 읽지 않는 데서 오는 '정신적 나이 듦'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12년 전이다. 2008년 11월 개인 블로그에 '올드걸의 시집'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생활에서 자라나는 감정에 시를 덧대어 한 편 두 편 글을 올렸다. 돈을 벌거나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니라 속을 달래려고, 일이 버거워서, 어쩌면 쓴다는 의식도 없이 쓴 글들이다. 생애 가장 눈물 많던 시절이다. 몸의 우기雨期를 지나며 썼던지라 자기 연민이 과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글과 삶의 거리가 없었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 가장 고통 없이 글을 썼던 것이다." (p.5~p.6)

 

작가는 '고통 없이 글을 썼다'고 하지만 사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은 서로 상쇄되는 효과가 있는 까닭에 우리는 때로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해 육체적 고통을 짊어지기도 하고, 육체적 고통을 덜기 위해 정신적 고통을 자원하기도 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정신적 고통이 심한 경우에 밤잠을 줄여가며 누군가의 글을 필사하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두서도 없는 글을 수십 편 쓰다 보면 정신적 고통은 이따금 잊혀지기도 하고, 콩알만큼 줄어든 고통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게도 된다. 반대로 육체적 고통을 정신적 고통으로 치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하곤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암 환자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러한 까닭이지 않을까 싶다.

 

"삶은 천연덕스럽고 시는 몸부림친다. 시가 뒤척일수록 삶은 명료해진다. 삶이 선명해지면 시는 다시 헝클어버린다. 나는 시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 아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좋은 시를 읽으면 자동인형처럼 고개가 올라간다.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누르듯이 책장을 덮는다. 방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다시 시 앞에 앉아 베껴 쓴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글쓰기 충동에 시달렸다." (p.19)

 

우리는 과연 어떤 나이에 철이 들고 어떤 나이에 삶은 더 익숙해지는가, 생각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전 생에 그런 나이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우리는 배부르게 나이만 먹은 슬픈 어린애로 생을 마감하게 될 터인데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다만 시나브로 우리의 삶이 그 기한을 줄여가면 갈수록 우리의 영혼 또한 더욱 단단해지고 풋밤처럼 영글었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시를 읽어야 한다. 나이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시집 한두 권쯤 곁에 놓아야 한다. 육체적 젊음을 회복하기 위해 수술을 하고, 보톡스를 맞고, 몸에 좋다는 온갖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영혼의 젊음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그보다 더한 노력을 실천해야 할지도 모른다. 백석의 시집을, 이성복의 시를, 최승자의 시를...

 

"엄마의 기일이었다. 돌아가신 지 3년이 흘렀다. 긴 시간이었다. 여자에게 엄마의 죽음은 아이의 출산에 버금가는 중요한 존재 사건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나는 한 차례 변이를 경험했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가 달라졌다. 삶이라는 것, 그냥 살아감 정도였는데,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p.127)

 

육체의 주름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맞는 것처럼 영혼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게 시일지도 모른다. 시는 영혼의 방부제인 동시에 삶의 고통을 잊게 하는 영혼의 진통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가 시를 놓지 못했던 까닭도 그와 같았으리라. 자신의 영혼을 젊게 유지하고, 삶의 고통을 온전히 잊게 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결국 마법과 같은 시의 힘이다. 시로 인한 영혼의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적과 같은 '도약'이 아니라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여가는 '축적'이었음을 은유 작가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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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삶은 비교적 단출해지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게 비교적 쉬워진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건 시작도 하기 전에 무작정 포기해버리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함으로써 점점 약해지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게 그닥 힘들어지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나쁜 점도 있다. 자신을 기준으로 내린 판단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려고 든다는 점이다. '꼰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며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동료들도 있다. 그럴라치면 '걱정은 무슨 걱정, 그냥 체력을 아끼기 위해 말을 삼가고 있을 뿐이야. 젊은 시절에는 몰랐었는데 말을 하는 것도 이게 에너지를 여간 많이 잡아먹는 게 아니더군.' 하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너스레를 떨곤 한다.

 

은유 작가의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을 읽고 있다. 나는 작가를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고, '은유? 못 들어 본 작가인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담에 시 한 수를 더하여 한 꼭지의 글을 형성하는 이 산문집은 나이가 들수록 메말라가는 감성을 어떻게든 되살리려는 작가의 애틋한 노력이 묻어나는 까닭에 때로는 나도 모르게 울컥 목이 메기도 한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바늘 하나로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생명이고 눈송이 하나로도 깨어날 수 있는 것이 사람 아닌가. 그러니 이 헛됨을 '누리면서 견딜' 수 있는 한 번의 기쁨, 한 번의 감촉,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필요하다. 합정동에 두고 온 민들레처럼. 학림다방에 두고 온 종이학. 팔뚝에 저장된 체온 같은 것들……. 나의 무제한적인 부副, 눈과 함께 서리서리 쌓인 시간의 기억들. 그것으로 겨울을 나고 일생을 버틴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으니까"

 

장마철의 먹먹한 하늘에선 이따금 눈물처럼 비가 내리고, 흐려진 시간 사이로 오래된 기억들이 배시시 웃고 있는 오후. 휴일 오후의 삶은 누리는 것도, 견디는 것도 아닌 담담히 지켜보는 것으로 마감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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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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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읽는 한 편의 소설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설에서 얻는 가르침은 비단 숫자로 따질 문제는 아니어서 하나의 가르침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가치의 경중이 천차만별로 크게 갈리는 걸 보면 소설의 영향력은 과연 대단하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김금희의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대략 9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까닭에 독자가 깨우쳐야 할 깨달음 역시 아홉 가지 또는 그 언저리에서 결정될 듯하지만, 사실 같은 작가의 소설은 비록 제목과 스토리를 달리 한다고 할지라도 그 속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이나 주제가 유사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지라 한 권의 소설집을 읽었을 때 그 안에 실린 단편소설의 편수에 상응하는 주제나 깨달음을 나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기는 나의 그런 감상적인 성격이 문제라고 했다.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으면 뭘 얻겠어, 하고 충고했다." (p.78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중에서)

 

김금희 소설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보편적 인간의 찌질함에 대한 냉정하고 신랄한 비판보다는 작가 자신이 그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아닐까 싶다.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찌질한 인간들과 그 무리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깊고 오래된 연대를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앞에 펼쳐놓음으로써 '봐라! 너희들 모습이 이렇게 찌질하단다.' 하고 호통을 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찌질하고 한심한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고 우리는 결국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이다.

 

"나는 아주 이상한 남자를 최근에 만났는데 왜 이상했는지를 오늘은 까먹고 말았다. 그렇게 휘발된 이상함이란 참으로 이상한데 이상함의 내용은 텅 비어 있으니 참으로 이상하도다." (p.168 '새 보러 간다' 중에서)

 

우리는 종종 타인의 찌질함을 통해 자신의 찌질함을 인식하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너보다는 낫다.'는 30점짜리 우월감을 가슴속 문장(紋章)처럼 새긴 채 살아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각색도 거치지 않은 삼류 연극처럼 읽히지만 자신의 처지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위로와 페이소스는 그들과 나는 동격이라는 데서 오는 깊은 좌절감이라기보다는 '다들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하는 희랍인 조르바 식의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김금희 작가는 특별히 잘나지도 않고 특별히 못나지도 않은 그만그만한 인물들을 차례로 늘어놓은 채 '너희들이라고 뭐 특별한 줄 아냐?' 한껏 비웃으면서 작가만의 화려한 문장 속에 자신의 속내를 숨긴다.

 

"오래 끓인 무의 냄새에 아주 진한 국간장 냄새가 뒤섞였는데 그냥 뒤섞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뒤섞임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서 주변에 완전히 배어버린, 그래서 솥이 끓지 않아도 마치 환각처럼 그 짜고 물큰한 내가 맡아질 정도로 오래오래 달여진 국물음식의 냄새였다." (p.141 '문상' 중에서)

 

작가는 보편적 인간의 찌질함에 대하여, 그 숨길 수 없는 허접함에 대하여 끝없이 되뇌고 반복하면서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그래도 소설은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 우아하지 않은지 되묻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가장 저질스러운 방식으로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변호사입네, 기자입네 웃고 떠드는 작자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철없는 행위를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허술한 잣대로 우리는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현실은 소설보다 못함을, 우리가 읽는 소설 속 어느 인물의 찌질함이 현실 속 인간보다 훨씬 고매하고 우아하였음을 김금희의 소설을 통해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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