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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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읽는 한 편의 소설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설에서 얻는 가르침은 비단 숫자로 따질 문제는 아니어서 하나의 가르침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가치의 경중이 천차만별로 크게 갈리는 걸 보면 소설의 영향력은 과연 대단하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김금희의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대략 9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까닭에 독자가 깨우쳐야 할 깨달음 역시 아홉 가지 또는 그 언저리에서 결정될 듯하지만, 사실 같은 작가의 소설은 비록 제목과 스토리를 달리 한다고 할지라도 그 속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이나 주제가 유사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지라 한 권의 소설집을 읽었을 때 그 안에 실린 단편소설의 편수에 상응하는 주제나 깨달음을 나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기는 나의 그런 감상적인 성격이 문제라고 했다.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으면 뭘 얻겠어, 하고 충고했다." (p.78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중에서)

 

김금희 소설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보편적 인간의 찌질함에 대한 냉정하고 신랄한 비판보다는 작가 자신이 그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아닐까 싶다.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찌질한 인간들과 그 무리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깊고 오래된 연대를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앞에 펼쳐놓음으로써 '봐라! 너희들 모습이 이렇게 찌질하단다.' 하고 호통을 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찌질하고 한심한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고 우리는 결국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이다.

 

"나는 아주 이상한 남자를 최근에 만났는데 왜 이상했는지를 오늘은 까먹고 말았다. 그렇게 휘발된 이상함이란 참으로 이상한데 이상함의 내용은 텅 비어 있으니 참으로 이상하도다." (p.168 '새 보러 간다' 중에서)

 

우리는 종종 타인의 찌질함을 통해 자신의 찌질함을 인식하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너보다는 낫다.'는 30점짜리 우월감을 가슴속 문장(紋章)처럼 새긴 채 살아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각색도 거치지 않은 삼류 연극처럼 읽히지만 자신의 처지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위로와 페이소스는 그들과 나는 동격이라는 데서 오는 깊은 좌절감이라기보다는 '다들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하는 희랍인 조르바 식의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김금희 작가는 특별히 잘나지도 않고 특별히 못나지도 않은 그만그만한 인물들을 차례로 늘어놓은 채 '너희들이라고 뭐 특별한 줄 아냐?' 한껏 비웃으면서 작가만의 화려한 문장 속에 자신의 속내를 숨긴다.

 

"오래 끓인 무의 냄새에 아주 진한 국간장 냄새가 뒤섞였는데 그냥 뒤섞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뒤섞임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서 주변에 완전히 배어버린, 그래서 솥이 끓지 않아도 마치 환각처럼 그 짜고 물큰한 내가 맡아질 정도로 오래오래 달여진 국물음식의 냄새였다." (p.141 '문상' 중에서)

 

작가는 보편적 인간의 찌질함에 대하여, 그 숨길 수 없는 허접함에 대하여 끝없이 되뇌고 반복하면서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그래도 소설은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 우아하지 않은지 되묻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가장 저질스러운 방식으로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변호사입네, 기자입네 웃고 떠드는 작자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철없는 행위를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허술한 잣대로 우리는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현실은 소설보다 못함을, 우리가 읽는 소설 속 어느 인물의 찌질함이 현실 속 인간보다 훨씬 고매하고 우아하였음을 김금희의 소설을 통해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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