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도 가기 전에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니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기상예보나 일반인들의 추측이 다 맞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최근의 날씨는 어찌나 변화무쌍하던지 전문가들조차 예측에 애를 먹지 않던가. 작년 여름만 하더라도 54일간의 역대 최장 기간 장마가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나. 올해 역시 작년과 같은 긴 장마가 올 수도 있고, 예상치도 못했던 서늘한 여름을 맞을 수도 있으니...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식당 출입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가 길어질라치면 은근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괜스레 겁이 나기도 한다. 확진자가 증가하는 바람에 혹시 주변에 있는 어떤 이가 무증상 감염자는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잠잠해질 때까지 다들 약속을 미룬 채 집에서만 머무르면 좋으련만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 내 맘처럼 같기만 할까.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프랑수아즈 지루가 쓴 <루 살로메>를 읽고 있다. 당대의 유명했던 세 남자, 프리드리히 니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적 유희를 벌였던 여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루 살로메에게 지적 충족감을 안겨줄 만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다만 남성이었을 뿐 그녀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외설스러운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루 살로메는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사랑을 드러내고 가장 숭고한 형태로 사랑을 보여준다고 해도 사랑의 삶은 불성실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적으로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기보다는 차라리 훨씬 더 생생한 살아 있는 인간의 문제를 탐색하는 것이 더 낫다고 확신했다. 특히 성적 충동, 그리도 강렬한 그 힘에 대해서."  (p.121)

 

우리는 종종 겪어보지도 못한 한 인간에 대해 지나친 관심이나 불합리한 억측을 일삼고, 아주 작은 일을 부풀려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입방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아났던가. 날씨가 더워지고 코로나의 맹위가 거세지면 짜증이나 화를 내는 일도 점점 많아질 터, 그럴 때일수록 행동거지보다 입조심부터 하는 게 순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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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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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스스로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본인이라고 믿는다. 하여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삶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비극은 그와 같은 자신감이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이 불행한 이유는 이와 같은 깨달음을 젊은 나이에 미처 깨닫지 못한다거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가슴 깊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평생 동안 있을 가혹한 경험들의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집중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나 자신감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쯤이면 자신은 이미 죽음 쪽으로 한 발 가까워졌음을 묵묵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가볍게 선택한 적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팔을 뻗어 여권을 건네는 행동이 진흙탕 속 수초를 헤치며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꼬치고기가 허리께로 쫓아오고, 발은 갈색 진흙 속에 빠지는 곳에서 말이다. 살아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만드는 당신의 이야기니까. 너무나 불완전하고, 이따금 너무나 그릇되고 불행할지라도."  (p.509)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은 5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딸(로즈)과 엄마(엘리스)의 삶이 교차되면서 펼쳐지는 까닭에 마치 두 권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1980년부터 1983년에 이르는 엄마(엘리스)의 이야기와 2017년부터 2018년에 이르는 딸(로즈)의 이야기는 각각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개별적인 서사로 꾸려지다가 결국에는 엘리사가 로즈를 낳는 장면으로 합쳐지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성장한 로즈로 인해 엄마인 엘리사와 딸 로즈가 모녀 관계라는 특별한 연관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단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엘리사와 로즈의 삶을 한 평면에 올려놓고 개별적인 두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게 된다.


"엘리스는 내심 결혼이라는 개념에 (상대와 하나,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멸시키고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계속해서 한 사람으로 살기는 너무 힘겨웠다. 사려 깊고 상냥한, 더 나은 사람을 발견하고, 내 마음이 그날 밤 상대의 곁에 누워 있기만 하면 변화한다고 상상해보라!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걸어가는 느낌이면서도 상대의 인도를 받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쉬운 일이 있다니!"  (p.164)


작가인 제시 버튼은 스무 살의 매력적인 여인 엘리사가 유명 소설가인 콘스턴스 홀든(코니)을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 젊고 매력적이지만 웨이트리스, 극장 안내원, 모델 등 변변치 않은 일을 전전하던 엘리스와 <밀랍 심장>이라는 소설로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서른여섯 살의 코니.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매력에 끌려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다소 의존적인 성향의 엘리스는 코니의 자신만만함에,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꼿꼿한 성향의 코니는 엘리스의 외적 아름다움과 자신에게는 없는 의존적인 성향에 이끌려...


<밀랍 심장>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엘리스와 코니는 영국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타지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엘리스와 유명 작가이자 영화의 원작 소설가로서 셀럽 대우를 받는 코니의 일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코니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바버라와 급격히 가까워졌고, 바버라의 주선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그녀의 일상도 바쁘게 돌아간다. 반면 코니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온 엘리스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코니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코니는 엘리스의 생일도 잊은 채 지나치고, 이를 섭섭하게 여긴 엘리스는 화를 내고 만다. 미안했던 코니는 뒤늦게 엘리스의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연다. 술에 취해 잠자리에 들었던 엘리스는 문득 잠에서 깨어 창밖을 내다보게 되고, 코니와 바버라의 연인처럼 가까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다. 사건은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엘리스는 코니의 절친인 샤라의 연하 남편이자 자신의 서핑 강사인 맷을 유혹하고...


"샤라의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아이는 진짜 사람이었다. 그녀의 것이었다. 샤라는 잃어버린 생명을 키웠다.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엘리스에게 주관적이고 터무니없는 주문을 했지만 그 속에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인간 본연의 확신이 있었다. 샤라를 돕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싶었다. 엘리스는 일어나서 풀밭을 향해 외쳤다. "혹시 임신하게 되면 그럴게요. 약속해요." 샤라가 돌아서서 엘리스를 보았다. 두 사람은 웃었다."  (p.220)


서른 살이 넘도록 뚜렷한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을 살아오던 로즈는 어느 날 아버지인 맷으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권의 소설을 쓰고 잠적한 유명 작가 콘스턴스 홀든이 엄마인 엘리스의 옛 연인이었으며 로즈를 낳은 후 사라지던 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역시 콘스턴스 홀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즈는 중증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은둔 작가 코니가 요리와 타이핑을 대신해 줄 비서를 구한다는 기사를 읽고 이름을 속인 채 가짜 신분으로 지원한다.


"코니는 나를 빤히 보았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후회를 밀어내주죠. 좋든 나쁘든 간에요. 모두 언제나 변해요. 그러니까 동등하지만 상이하게 풍요로운 두 길, 똑같이 고난을 겪을 두 길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해봐요. 그 생각에 익숙해지면, 어느 길로 가더라도 성공과 실패를 다 겪을 거라고 여기게 되면, 그땐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할 말이 생각 안 나서 코니를 보기만 했다."  (p.364)


코니의 비서가 된 로즈는 코니를 위해 요리도 해주고, 코니가 쓴 원고를 타이핑하면서 가까워진다. 코니는 자신의 비서가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엘리스가 뉴욕에서 낳은 신생아 로즈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능력은 있지만 그저 남을 위해 희생할 줄만 아는 불쌍한 '로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코니가 새로운 소설을 탈고할 무렵 코니의 매니저인 데버라에 의해 로즈의 신분이 들통나고 만다. 로즈는 이미 조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자신의 사업 파트너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조와 결별하고 코니의 집으로 이사한 상태였다. 로즈는 자신이 듣고 싶어 하던 엄마의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코니의 집에서 쫓겨나고...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로즈는 우수한 학생이었음에도 남자친구인 조에게 의지하여 카페에서 일을 하고, 모아두었던 돈도 조의 사업에 투자한 상태였다. 게다가 언제 하겠다는 결혼 약속도 없는 조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조를 따라 그의 부모님과 가족이 모이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엄마인 엘리스와는 다른 사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의존적인 성향은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찾아왔지만, 코니는 내게 어머니 대신 자아를 주었다.'는 로즈의 고백처럼 로즈로 인해 엘리스와 로즈의 삶이 바뀌는 것도 비슷했다. 젊은 시절 코니는 지나친 자신감과 거침없는 말투로 인해 엘리스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그로 인해 그들의 남은 삶을 달라지게 했지만 그 시절의 코니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다.


계절을 앞선 더위가 어리둥절 사람들의 발길을 더디게 했던 4월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는지 곰곰 되짚어본다. 화단의 철쭉이 비현실적인 화려함으로 빛나는 4월의 어느 날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이 마음을 사로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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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협상법 - 인생의 승부처에서 삶을 승리로 이끄는 협상비법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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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이라고 하면 사업이나 비즈니스 현장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단어인 양 생각되는 것이다. 거창한 회의 탁자에 앉아 테이블의 한 귀퉁이에는 몇 날 며칠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듯한 무거운 서류 더미를 쌓아 놓고, 협상의 당사자인 양 팀에서 각각 서너 명의 전문가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고, 따라 놓은 차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열띤 토론을 하는 풍경. 우리는 적어도 그러한 장면을 협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여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지는 협상의 장에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평생 나설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바다의 성공적인 항해사가 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으로 펼쳐지는 위험하고 두려운 요소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이 바로 협상이라고 생각한다."  (p.293 'Epilogue' 중에서)

 

협상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 그러나 <고수의 협상법>의 저자인 신용준 에듀콤 교육연구소 대표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주어진 상황들을 목표 달성에 유리하게 만들어 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정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 저자는 '구체적인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제반 사항들을 이 책에서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의사소통이나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식의 적당한 결과를 협상으로 인식하지 않겠다는 천명이다.

 

"이 <고수의 협상법>은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협상을 주로 다룬다. 비즈니스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업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은 물론이거니와 영업, 거래관계, 직업적 성공, 승진 등 돈을 포함한 목표 달성을 위해 벌이는 모든 과정과 노하우를 '협상'이라는 키워드로 녹여내었다."  (p.22)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협상의 이면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협상에 성공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세운 어떠한 욕망을 위해 끝없이 준비하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인생 역시 하나의 협상인 것이다. 자신을 절제하고 눈 앞의 유혹을 견디게 한다는 건 협상을 준비하는 자의 기본적 전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결국 성공적인 협상을 도출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 역시 성공적인 삶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협상은 감정으로 시작하여 감정으로 끝난다. '두려움'으로 시작하여 '분노'하는 과정을 거치는 협상은 결국 '신뢰'라는 결과로 끝맺음해야 한다. 협상은 이성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인간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p.172)

 

책의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많은 사례를 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PART 1. '어떤 상황에서도 유리하게 만드는 협상술-목표의 비법', PART 2. '자신을 만만치 않은 상대로 여기게 만드는 협상술-대안의 비법', PART 3. '상대가 나를 돕게 하는 심리유도 협상술-관계의 비법', PART 4. '자원과 정보를 수집하여 최대한 확률을 높이는 협상술-정보의 비법', PART 5. '사소한 희생으로 성과를 얻는 협상술-실전 협상 스킬 & 전략' 등 총 5개 PART의 본문과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이 책은 협상에 임하는 자가 갖추어야 하는 여러 준비와 노하우를 꼼꼼히 되짚는, 말하자면 협상의 매뉴얼 북인 셈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이르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白戰不殆)라고 하지 않던가. 협상의 파트너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을 점검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핀다면 협상에서의 위태로운 순간을 결코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협상도 인간관계의 작은 부분 중 하나임을 인식할 때 진심은 어디에나 통하는 법이다.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여 완벽히 숨겨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좋은 협상이란 어쩌면 상대방과 내가 상생할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찾는 공동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협상에 임하는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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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내내 어두웠다. 이따금 비가 내렸고, 바람이 건듯 불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 기억의 덧없음을 절절히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속절없는 바람과 분분한 낙화를 보며 '한 계절이 또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쓸쓸한 감회에 젖었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7주기. 생때같은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처참하게 죽어갔던 그 날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날. 기억은 덧없고 슬픔은 야멸차게 가슴을 후비는데 흔들리듯 비가 내렸다.

 

가끔 뒤돌아보면 인간은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냉정하며 더없이 잔인할 수 있는지... 짐승들도 제 무리 중 하나가 죽으면 제 일인 양 슬퍼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다른 이의 죽음을 아파할 줄 모른다는 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것.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 마치 인간인 양 행세를 했던, 인간 탈을 쓴 짐승들의 광란의 몸짓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 있는 현장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놈들, 세월호 참사가 단지 하나의 교통사고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하려 들었던 어느 정치꾼, 세월호 참사를 언제까지 우려 먹을 거냐며 따지고 들던 미련한 짐승들...

 

벌써 7년이다. 기억은 이렇게 생생한데...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The Confession)>을 읽었다. 두 권의 소설만 남기고 잠적한 희대의 소설가 '콘스턴스 홀든'이 실종된 로즈의 어머니와 연인 사이였고, 심지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로즈는 삼십 년 전 그날의 진상에 대해 듣기 위해 신분을 속인 채 콘스턴스에게 접근하는데... 소설은 줄곧 로즈의 어머니인 엘리스와 로즈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실의 소실점을 향해 나아간다. 고백, 자백, 혹은 고해성사의 의미가 있는 이 소설의 제목이 세월호 참사 7주기인 오늘 내 가슴에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 소설처럼 누군가의 자백이 필요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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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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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쓰면 못 쓸 것도 없겠지만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건 어쩐지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살아오면서 남들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경험도 없으려니와 딱히 그럴 필요성도 없이 살아온 터라 지난 과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불편하고 속이 거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그렇다고 뭐 깊숙이 숨겨야 할 은밀한 이야기가 나의 과거에 다수 내포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백은선 시인 역시 이런 비슷한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지금부터 '나' 혹은 '내가'라는 말을 안 하고 싶다. 이미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근데 자꾸 그러면 어떻게 하지? 글이 공개된다고 생각하니 겁난다. 근데 원고료를 주니까 열심히 좋은 말을 해서 사람들을 막 재미있게 만들고 싶은데, 막상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잘 안 되려고 한다. 저는 여기까진가봐요."  (p.18)


시인이 쓴 산문집은 언제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산문이지만 문장에 리듬이 실려 글을 읽는 독자들의 독서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인은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습성이 있지 않은가. 속이 훤히 비치도록 다 드러내놓고 까발리지 않으면 글이 아니라고 믿는 족속, 있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더 내놓을 게 없나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족속이 시인이 아니던가. 하여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독자들이야 한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테지만 정작 시인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 조리고 콩닥콩닥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겠는가.


"내가 너무 화가 많다. 정말 미칠 것 같았나보다. 감정을 그대로 뭉쳐서 종이 위에 패대기쳐놓은 걸 보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걱정스럽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게 너무 많고, 스스로가 한심하고 무기력하게만 느껴진다. 정신 차려. 잘 좀 하자."  (p.172)


'왕따'로 유소년기를 보냈다는 시인은 이제 자신에게 남은 건 눈치뿐이고 잃은 건 자존심이라고 말한다. 사업에 실패한 후 티브이 앞에 반쯤 송장처럼 누워지내는 아빠와 한방에서 지내는 게 숨이 막혔고, 별 이유도 없이 얻어맞기 일쑤였다고 고백한다. 티브이 화면이 바뀔 때마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천장에 어른거리는 빛을 보며 나중에 크면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소중한 목표를 세웠다는 시인. '남자에게 여자는 변기'라는 말 따위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성평등에 무지했다는 고백과 이혼 후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지만 주민센터에서 '한부모 가정' 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했다는 고백과 딸의 몫으로 나온 재난지원금이 아빠에게 지급됐다는 황당한 사연 등을 시시콜콜 쓰고 있는 시인의 키워드는 '말'과 '시'와 '삶'과 '여성'이라는 각 부의 제목과도 맞닿아 있다.


"밤중에 침대에 누우면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집은 이십 층이야. 언제든지 뛰어내리면 반드시 죽을 수 있어. 그럼 조금 안심이 된다. 그러다 아이를 본다. 아이의 잠든 얼굴은 천사 같다. 이상한 충만함과 슬픔이 마음 안에 가득 차오른다. 네가 겪을 여러 처음들로 인해 상처받고 아무 손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내가 옆에 있으려면 나는 더 오래 살아야겠다. 더 오래 살아야만 한다."  (p.176)


시인이 쓴 곱디 고운 산문집을 기대하며 읽었던 백은선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독자인 나의 가슴에 다가와 시인은 이상한 사람이었다가, 가여운 여인이었다가, 당당한 엄마이자 마음 따뜻한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고,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건전한 사회 구성원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내가 다시 붙인 책의 제목은 <나는 시인이 이상하고 가엾고 건전하고>쯤으로 순치되지 않을까.


"옷을 벗고 있으면 이상하고 불편한 것처럼 마스크를 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모습이 어쩐지 짠하다. 공기 좋고 바이러스 없는 곳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내 유년과 아이의 유년이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p.249)


주춤하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다시 또 강해지는 양상이다.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바이러스와 함께 했던 시간도 1년여의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2021년도 코로나19를 떨쳐버리는 건 요원한 일인 듯싶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며 살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다. 바이러스에 일부러 감염되는 사람이야 있으랴마는 확진자들에 대한 괜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외출을 삼간 채 수도승처럼 사는 내가 바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일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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