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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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스스로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본인이라고 믿는다. 하여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삶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비극은 그와 같은 자신감이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이 불행한 이유는 이와 같은 깨달음을 젊은 나이에 미처 깨닫지 못한다거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가슴 깊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평생 동안 있을 가혹한 경험들의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집중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나 자신감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쯤이면 자신은 이미 죽음 쪽으로 한 발 가까워졌음을 묵묵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가볍게 선택한 적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팔을 뻗어 여권을 건네는 행동이 진흙탕 속 수초를 헤치며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꼬치고기가 허리께로 쫓아오고, 발은 갈색 진흙 속에 빠지는 곳에서 말이다. 살아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만드는 당신의 이야기니까. 너무나 불완전하고, 이따금 너무나 그릇되고 불행할지라도."  (p.509)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은 5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딸(로즈)과 엄마(엘리스)의 삶이 교차되면서 펼쳐지는 까닭에 마치 두 권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1980년부터 1983년에 이르는 엄마(엘리스)의 이야기와 2017년부터 2018년에 이르는 딸(로즈)의 이야기는 각각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개별적인 서사로 꾸려지다가 결국에는 엘리사가 로즈를 낳는 장면으로 합쳐지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성장한 로즈로 인해 엄마인 엘리사와 딸 로즈가 모녀 관계라는 특별한 연관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단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엘리사와 로즈의 삶을 한 평면에 올려놓고 개별적인 두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게 된다.


"엘리스는 내심 결혼이라는 개념에 (상대와 하나,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멸시키고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계속해서 한 사람으로 살기는 너무 힘겨웠다. 사려 깊고 상냥한, 더 나은 사람을 발견하고, 내 마음이 그날 밤 상대의 곁에 누워 있기만 하면 변화한다고 상상해보라!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걸어가는 느낌이면서도 상대의 인도를 받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쉬운 일이 있다니!"  (p.164)


작가인 제시 버튼은 스무 살의 매력적인 여인 엘리사가 유명 소설가인 콘스턴스 홀든(코니)을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 젊고 매력적이지만 웨이트리스, 극장 안내원, 모델 등 변변치 않은 일을 전전하던 엘리스와 <밀랍 심장>이라는 소설로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서른여섯 살의 코니.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매력에 끌려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다소 의존적인 성향의 엘리스는 코니의 자신만만함에,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꼿꼿한 성향의 코니는 엘리스의 외적 아름다움과 자신에게는 없는 의존적인 성향에 이끌려...


<밀랍 심장>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엘리스와 코니는 영국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타지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엘리스와 유명 작가이자 영화의 원작 소설가로서 셀럽 대우를 받는 코니의 일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코니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바버라와 급격히 가까워졌고, 바버라의 주선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그녀의 일상도 바쁘게 돌아간다. 반면 코니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온 엘리스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코니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코니는 엘리스의 생일도 잊은 채 지나치고, 이를 섭섭하게 여긴 엘리스는 화를 내고 만다. 미안했던 코니는 뒤늦게 엘리스의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연다. 술에 취해 잠자리에 들었던 엘리스는 문득 잠에서 깨어 창밖을 내다보게 되고, 코니와 바버라의 연인처럼 가까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다. 사건은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엘리스는 코니의 절친인 샤라의 연하 남편이자 자신의 서핑 강사인 맷을 유혹하고...


"샤라의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아이는 진짜 사람이었다. 그녀의 것이었다. 샤라는 잃어버린 생명을 키웠다.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엘리스에게 주관적이고 터무니없는 주문을 했지만 그 속에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인간 본연의 확신이 있었다. 샤라를 돕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싶었다. 엘리스는 일어나서 풀밭을 향해 외쳤다. "혹시 임신하게 되면 그럴게요. 약속해요." 샤라가 돌아서서 엘리스를 보았다. 두 사람은 웃었다."  (p.220)


서른 살이 넘도록 뚜렷한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을 살아오던 로즈는 어느 날 아버지인 맷으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권의 소설을 쓰고 잠적한 유명 작가 콘스턴스 홀든이 엄마인 엘리스의 옛 연인이었으며 로즈를 낳은 후 사라지던 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역시 콘스턴스 홀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즈는 중증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은둔 작가 코니가 요리와 타이핑을 대신해 줄 비서를 구한다는 기사를 읽고 이름을 속인 채 가짜 신분으로 지원한다.


"코니는 나를 빤히 보았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후회를 밀어내주죠. 좋든 나쁘든 간에요. 모두 언제나 변해요. 그러니까 동등하지만 상이하게 풍요로운 두 길, 똑같이 고난을 겪을 두 길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해봐요. 그 생각에 익숙해지면, 어느 길로 가더라도 성공과 실패를 다 겪을 거라고 여기게 되면, 그땐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할 말이 생각 안 나서 코니를 보기만 했다."  (p.364)


코니의 비서가 된 로즈는 코니를 위해 요리도 해주고, 코니가 쓴 원고를 타이핑하면서 가까워진다. 코니는 자신의 비서가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엘리스가 뉴욕에서 낳은 신생아 로즈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능력은 있지만 그저 남을 위해 희생할 줄만 아는 불쌍한 '로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코니가 새로운 소설을 탈고할 무렵 코니의 매니저인 데버라에 의해 로즈의 신분이 들통나고 만다. 로즈는 이미 조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자신의 사업 파트너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조와 결별하고 코니의 집으로 이사한 상태였다. 로즈는 자신이 듣고 싶어 하던 엄마의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코니의 집에서 쫓겨나고...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로즈는 우수한 학생이었음에도 남자친구인 조에게 의지하여 카페에서 일을 하고, 모아두었던 돈도 조의 사업에 투자한 상태였다. 게다가 언제 하겠다는 결혼 약속도 없는 조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조를 따라 그의 부모님과 가족이 모이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엄마인 엘리스와는 다른 사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의존적인 성향은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찾아왔지만, 코니는 내게 어머니 대신 자아를 주었다.'는 로즈의 고백처럼 로즈로 인해 엘리스와 로즈의 삶이 바뀌는 것도 비슷했다. 젊은 시절 코니는 지나친 자신감과 거침없는 말투로 인해 엘리스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그로 인해 그들의 남은 삶을 달라지게 했지만 그 시절의 코니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다.


계절을 앞선 더위가 어리둥절 사람들의 발길을 더디게 했던 4월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는지 곰곰 되짚어본다. 화단의 철쭉이 비현실적인 화려함으로 빛나는 4월의 어느 날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이 마음을 사로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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