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내내 어두웠다. 이따금 비가 내렸고, 바람이 건듯 불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 기억의 덧없음을 절절히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속절없는 바람과 분분한 낙화를 보며 '한 계절이 또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쓸쓸한 감회에 젖었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7주기. 생때같은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처참하게 죽어갔던 그 날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날. 기억은 덧없고 슬픔은 야멸차게 가슴을 후비는데 흔들리듯 비가 내렸다.

 

가끔 뒤돌아보면 인간은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냉정하며 더없이 잔인할 수 있는지... 짐승들도 제 무리 중 하나가 죽으면 제 일인 양 슬퍼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다른 이의 죽음을 아파할 줄 모른다는 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것.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 마치 인간인 양 행세를 했던, 인간 탈을 쓴 짐승들의 광란의 몸짓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 있는 현장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놈들, 세월호 참사가 단지 하나의 교통사고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하려 들었던 어느 정치꾼, 세월호 참사를 언제까지 우려 먹을 거냐며 따지고 들던 미련한 짐승들...

 

벌써 7년이다. 기억은 이렇게 생생한데...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The Confession)>을 읽었다. 두 권의 소설만 남기고 잠적한 희대의 소설가 '콘스턴스 홀든'이 실종된 로즈의 어머니와 연인 사이였고, 심지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로즈는 삼십 년 전 그날의 진상에 대해 듣기 위해 신분을 속인 채 콘스턴스에게 접근하는데... 소설은 줄곧 로즈의 어머니인 엘리스와 로즈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실의 소실점을 향해 나아간다. 고백, 자백, 혹은 고해성사의 의미가 있는 이 소설의 제목이 세월호 참사 7주기인 오늘 내 가슴에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 소설처럼 누군가의 자백이 필요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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