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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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라는 게 원한다고 언제든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지만 평화를 깨는 불협화음의 주요 원인이 과거의 기억이라면 우리는 과연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없앨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개인의 기억이라는 게 개인을 대표하는 정체성인 동시에 삶의 총체인 까닭이다. 단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발적 치매를 얻는 꼴인데 누군들 이 선택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삶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가와 요코의 초기작 <은밀한 결정>은 사물의 존재와 기억이 주기적으로 사라져가는 미지의 섬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섬에서는 주기적으로 '소멸'이 일어난다. 섬의 주민들은 '소멸'과 함께 관련된 기억을 모두 잃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밀경찰에 끌려가곤 한다. 소설가였던 '나'의 어머니 역시 기억을 잃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이미 소멸한 물건을 지하 서랍장에 숨겨두고서 나에게만 남몰래 보여주거나 어떤 물건인지 설명해주곤 했다. 어느 날 비밀경찰에 불려 갔던 어머니가 시신으로 돌아온 후 들새 연구가였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나'는 가정부 할머니의 남편이자 페리 정비사였던 할아버지와 가족처럼 지내며 살고 있다.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색깔의 새와 장미정원의 꽃,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하나둘 소멸해가는 속에서도 '나'는 그와 같은 상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담담한 생활을 이어간다.

 

"저도 기억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허사였어요. 도무지 기억이 안 나요. 어머니의 표정이나 목소리, 지하실 공기의 감촉은 선명한데, 서랍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전부 흐릿해져버렸어요. 그 부분만 기억의 윤곽이 녹아버린 것처럼."  (p.81)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나'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평가해주는 담당 편집자인 R씨 역시 소멸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할아버지와 합심하여 집안에 작은 은신처를 마련하고 그를 숨긴다. 언젠가 R씨처럼 기억을 잃지 않은 사람도 숨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비밀경찰의 기억 사냥은 날로 심해져만 가고, 달력이 소멸한 탓에 추운 겨울이 끝없이 이어졌다. 섬에는 식량과 물자가 점점 부족해지고, 소설마저 소멸하면서 '나'는 메울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소멸해버린 것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신경의 일부분을 혹사해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언짢지 않았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선명한 영상으로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크게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다. 어릴 적 지하실에서 어머니와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때처럼 나는 그저 천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신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초콜릿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내려고 치맛자락을 펼친 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p.294)

 

소설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 지진과 해일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자연재해, 테러, 전염병 등 예상할 수 없는 위기가 수시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 돌볼 뿐 이웃, 국민, 나아가 지구인의 안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이기심은 증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동정심 등 인간 본연의 심성은 점차 소멸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인간성을 지키며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체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이 소멸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먼 길을 돌아서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진이 나고, 페리가 가라앉고, 이누이 씨가 맡긴 조각품이 부서지고, 그 안에서 '물건'이 나타나고, 별장에 조각품을 가지러 가고, 검문을 당하고, 할아버지가 죽었다. 하나하나의 사건은 전부 우연에 좌우된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섬사람들 모두 어렴풋이 예감하면서도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달아나려고 발버둥치지도 않았다. 다들 소멸의 성질을 잘 이해했으며, 가장 적절한 대응법을 알고 있었다."  (p.360~p.361)

 

햇수로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그저 온라인으로만 물을 뿐 만남도, 서로를 향한 토닥임도, 기쁨이나 슬픔의 언어도 점차 그 횟수를 줄여가고 있다. 오직 침묵만이 우리네 삶의 영역을 조금씩 잠식하며 친밀함이 주던 과거의 숱한 경험과 그 기억의 따스한 온기를 잊게 하고 있다. 비대면의 편리가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이미 우리들 곁에 자리를 잡은 채 도무지 비켜줄 의사가 없다는 듯 완강한 모습.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는가. 밖에는 눈발이 날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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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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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254억을 부과받았던 모 그룹의 회장이 납부 대신 노역을 선택함으로써 일당 5억 원의 소위 '황제노역' 논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하루 노동의 대가를 10만 원으로 정하는 일반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일당인 셈인데 2014년 4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액 벌금을 단기의 노역장 유치로 무력화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지금은 고액 벌금형 선고 시 환형유치기간의 하한을 정하는 조항이 신설되어 어느 정도 형평성을 맞추려는 노력이 개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노역장 유치 기간의 상한을 3년으로 정한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어 '황제노역'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따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나처럼 고급 인력을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나?" 하며 툴툴대기도 한다. 사람의 일당이 이처럼 천차만별인 것처럼 우리의 생명 역시 누군가에 의해 천차만별의 가격표가 매겨지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두루 이용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얼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이도 드물지 싶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 가격표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매겨지고 있다. 혹자는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며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철학적 관점일 뿐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의 생명에 수시로 가격을 매기고 나 역시 타인에 의해 그리 평가된다는 것을 인지하여야만 한다. 지난 일이지만 군대 물품을 조달하는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하였던 나는 갓 전입한 이등병 시기에 사망한 군인을 처리하는 영현 처리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일반 사병의 영현 처리비(일명 몸값)는 13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와 선임들은 사람의 몸값이 갯값만도 못하다며 혀를 끌끌 찼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해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에는 매일같이, 끊임없이 가격표가 부여된다.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p.277)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 가격표>는 '인간 생명의 가치 측정'이라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핵심 문제를 파고든다. 유엔인구기금에서 유엔 주요 사업의 수석 데이터모델러를 맡아 왔던 저자는 생명 가격표가 불공정할 때가 많고 젠더, 인종, 민족, 문화적 편견 등이 작용하며 노인보다는 젊은이, 빈자보다는 부자, 외국인보다는 내국인, 타인보다는 가족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지곤 하는 까닭에 낮은 가격이 매겨진 사람들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에서 돈과 시간이 어떻게 교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보상은 생명 가격표에 관한 논의에 매우 중요하다. 소득이 민사소송에서 생명에 책정되는 금전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9.11 희생자 보상 기금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137)

 

우리 사회에서 종종 불거지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 역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 가격표가 다라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그것이 곧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 가격표의 최상단에 위치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수명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환경에서 적용되며 이것을 피할 방법도 딱히 없다.

 

"관념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 가치 평가 방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명백한 해답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Isaiah Berlin)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불멸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깊고 형이상학적인 불치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는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에 가치를 매기는 일에도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있다. 그리고 명확한 정답도 없다."  (p.265)

 

우리는 이따금 생명의 가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치환하곤 한다. 최근 아동 성범죄를 저질러 12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조 모씨의 집에 잠입하여 조 씨를 피습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의 범행을 생각할 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테고,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사적 구제를 하는 건 잘못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한 인간 생명에 대한 가격표 역시 다양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간다/그러니까 사람이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의 생명에 다양한 가격표를 매기는 불합리한 행위를 시시각각 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그러니까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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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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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평범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당사자 본인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삶을 이어가는 다른 모든 이에게는 타인의 죽음은 마치 일상에 찍힌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죽음을 목도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일상을 뒤흔들 만큼의 태풍 그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는 없는 죽음. 그러나 일상에서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은 마치 영원한 침묵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끝나지 않는 지루한 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끝이 보이는 삶이라 해도 살아갈 가치가 없다거나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삶은 여전히 가치가 있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해줄 수 있으며 남은 시간이 얼마든 관계없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며, 이것이 좋은 죽음을 맞는 과정이다."  (p.322)


한국인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후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써내려간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죽음을 읽는 시간>은 '서른네 가지의 각기 다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대부분은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에 대해, 몇몇은 한국과 미국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머지 조금은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미국의 호스피스 정신과 전문의로 13년간 활동헤오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온 저자가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잃은 현대인에게 내놓은 마음 처방전이자 사랑 충전제인 셈이다.


"꿈을 내려놓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꿈을 품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꿈꾸는 자가 월터에게 알려준 삶의 '본질'을 떠올려본다. 미래의 꿈을 좇는 삶도, 지금 여기를 사는 삶도 똑같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행복은 내 안에 있고 나다움 속에 있다는 것을.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살고 있다는 것을."  (p.73)


자신의 삶이 밋밋한 시간으로 채워지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 각자가 스릴 넘치는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 여겨지기도 하고, 그런 모습은 내일도 혹은 일 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다 보면 삶에서 가장 힘든 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내 곁에서 나와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그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에 끝이 있음을 알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이유와 의미가 되어준다.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p.329)


나는 여전히 죽음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이해하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내게도 불청객처럼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그 소식을 듣고 거칠게 반항하거나, 미친 듯 부정하거나, 나약한 모습으로 방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다정한 연인의 속삭임처럼 옅은 미소를 띠고 기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주 담담하게, 마치 이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사람처럼 노련하게 그 소식을 접했으면 좋겠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벼운 작별을 고하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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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야당의 어느 대선 후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조짐이 보일 때 선제타격밖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선제타격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이와 같은 대북 강경론은 극우 세력의 허풍이거나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하나의 술책으로 종종 이용되곤 했었다. 1997년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비선조직으로 활동하던 오정은·한성기·장석중 3명이 이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에 대선 직전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소위 '총풍사건'만 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고 오직 정권 쟁취에만 눈이 먼 극우 세력의 진면목을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사실 그들에게 안보는 하나의 전술이자 술책일 뿐 국민의 안전이나 국가의 발전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 보인다. 흔한 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북한과의 긴장관계에서 오는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로 보아야 하지만 대선 때마다 일부러 긴장관계를 획책하는 극우 세력들의 만행으로 볼 때 그들의 행동은 하나의 매국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북한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군사력이 비슷한 두 나라의 충돌은 공멸이라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추측할 수 있는 결과이다. 물론 군사력의 격차가 현저할 경우에는 쉽게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선제공격 운운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공멸의 길로 가자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바보 같은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후보 부인의 녹취록이 공개되는 걸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도대체 후보 부인은 기자에게 뭔 말을 씨불였기에 그들이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짜증이 나는 건 매한가지다. 숨길 게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공인으로 왜 나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나 소나 다 대선 후보가 되면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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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소박하게 - 문명을 거부한 어느 수행자의 일상
전충진 지음 / 나남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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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금세 아득해지곤 한다. 내가 직접 겪고 지나온 길이 아닌, 누군가로부터 그저 한 사람의 삶을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처럼 허허롭고 마냥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오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면 원인이었을 터, 내 삶에 좀 더 애착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따금 시간이 날 때는 말이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긴 반성문을 쓰거나, 온종일 손을 들고 서 있거나, 벽을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충진 작가의 에세이 <단순하게 소박하게>와 같은 부류의 책을 읽으며 한동안 멍 때리기를 하는 게 내 반성의 전부일뿐이다. 이 책 <단순하게 소박하게>는 기자 출신의 저자가 산중의 스님과 10년 넘게 교류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스님이 조그만 절이나마 주지 자리를 벗어버리고 일찌감치 농사를 짓고자 나선 것은 이처럼 <지게 철학>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바로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하며,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내가 소용하는 만큼의 농사를 짓고, 내가 수확한 만큼 그 안에서 만족하는 삶. 그로 인하여 마음은 번거롭지 않고 일상은 소박하게 꾸리는 것. 그 속에서 대大자유인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p.64)


지게도인 육잠 스님이 터를 잡은 곳은 거창군 가북면 내촌리 덕동마을이다. 1317m 수도산 봉우리가 내리뻗은 능 선 한 자락을 뼈대 삼은 첩첩산중으로 전기는 당연히 없고, 이동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스님은 그곳에 '두곡산방'이라는 삼간 집을 지은 후 낮에는 자급용 농사를 짓고, 밤에는 먹을 갈고 글씨를 쓴다. 산방과 해우소, 토굴까지 스님이 사는 마을 곳곳에는 절도, 절제, 운치, 여유가 스님을 따라 흐른다.


"붓에 의지하여 정진하는 스님에게 붓글씨 공부는 실존이자 실재이다. 살아 있음의 확인이자 구도인 것이기도 하다. '한나절 호미를 잡고 선정에 들고, 한나절 붓대에 의지해 삼매에 빠지는' 일상의 의미가 그렇다."  (p.200)


내가 육잠 스님을 처음 접한 것은 2020년 설 특집으로 방영된 EBS 〈한국기행〉 ‘그 겨울의 산사’ 편을 통해서였다. 사실 그곳은 스님이 처음 거처로 삼고 이 책의 무대가 된 경남 거창의 덕동마을이 아니었다. 몇 차례 집주인들이 손바꿈 하면서 덕동마을이 황폐화되고 숲과 사람이 공존하지 않는 곳으로 변해버리자 스님은 2012년 덕동마을을 떠나 경북 영양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곳에서도 스님은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쓰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1km 남짓의 오체투지를 일상화하고, 자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대비하여 다비목을 준비하는 등 수행자로서, 그리고 세상에 빚을 지고 떠나고 싶지 않은 개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고독 속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인생을 말하며, 하물며 예술을 운운하겠는가. 스님은 깊은 산중에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붓을 택했다. 이제는 그 붓을 고독의 친구로 유희하면서 산중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p.334)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다. 말이나 글보다는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나의 삶을 부여잡고 살기보다 타인의 삶만 부러워하다 평생을 보내게 생겼다. 스님이 붓을 놓지 않는 이유도 자신의 삶을 다잡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놓지 않고,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부쩍 추워진 날씨. 나를 벗어난 마음이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에 깃들고 있는가.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을 품은 온전한 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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