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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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254억을 부과받았던 모 그룹의 회장이 납부 대신 노역을 선택함으로써 일당 5억 원의 소위 '황제노역' 논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하루 노동의 대가를 10만 원으로 정하는 일반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일당인 셈인데 2014년 4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액 벌금을 단기의 노역장 유치로 무력화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지금은 고액 벌금형 선고 시 환형유치기간의 하한을 정하는 조항이 신설되어 어느 정도 형평성을 맞추려는 노력이 개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노역장 유치 기간의 상한을 3년으로 정한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어 '황제노역'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따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나처럼 고급 인력을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나?" 하며 툴툴대기도 한다. 사람의 일당이 이처럼 천차만별인 것처럼 우리의 생명 역시 누군가에 의해 천차만별의 가격표가 매겨지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두루 이용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얼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이도 드물지 싶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 가격표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매겨지고 있다. 혹자는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며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철학적 관점일 뿐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의 생명에 수시로 가격을 매기고 나 역시 타인에 의해 그리 평가된다는 것을 인지하여야만 한다. 지난 일이지만 군대 물품을 조달하는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하였던 나는 갓 전입한 이등병 시기에 사망한 군인을 처리하는 영현 처리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일반 사병의 영현 처리비(일명 몸값)는 13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와 선임들은 사람의 몸값이 갯값만도 못하다며 혀를 끌끌 찼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해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에는 매일같이, 끊임없이 가격표가 부여된다.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p.277)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 가격표>는 '인간 생명의 가치 측정'이라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핵심 문제를 파고든다. 유엔인구기금에서 유엔 주요 사업의 수석 데이터모델러를 맡아 왔던 저자는 생명 가격표가 불공정할 때가 많고 젠더, 인종, 민족, 문화적 편견 등이 작용하며 노인보다는 젊은이, 빈자보다는 부자, 외국인보다는 내국인, 타인보다는 가족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지곤 하는 까닭에 낮은 가격이 매겨진 사람들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에서 돈과 시간이 어떻게 교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보상은 생명 가격표에 관한 논의에 매우 중요하다. 소득이 민사소송에서 생명에 책정되는 금전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9.11 희생자 보상 기금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137)

 

우리 사회에서 종종 불거지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 역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 가격표가 다라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그것이 곧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 가격표의 최상단에 위치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수명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환경에서 적용되며 이것을 피할 방법도 딱히 없다.

 

"관념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 가치 평가 방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명백한 해답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Isaiah Berlin)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불멸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깊고 형이상학적인 불치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는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에 가치를 매기는 일에도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있다. 그리고 명확한 정답도 없다."  (p.265)

 

우리는 이따금 생명의 가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치환하곤 한다. 최근 아동 성범죄를 저질러 12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조 모씨의 집에 잠입하여 조 씨를 피습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의 범행을 생각할 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테고,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사적 구제를 하는 건 잘못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한 인간 생명에 대한 가격표 역시 다양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간다/그러니까 사람이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의 생명에 다양한 가격표를 매기는 불합리한 행위를 시시각각 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그러니까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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