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난 줄 알았던 장마가 뒤늦게 이어지면서 폭염과 가뭄은 한풀 꺾였습니다. 눅눅한 습기가 어두운 방안을 유령처럼 떠돌아도 밤마다 잠을 설치게 하던 열대야의 기세가 꺾인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습기쯤은 너끈히 견딜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도 전에 없이 밝아진 듯합니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줏대 없이 일희일비하게 될 줄을 어찌 알았을까마는 날씨가 사람들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한 적이 요즘처럼 심했던 적은 아마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온이 선선해진 탓인지 아침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제법 많아진 듯합니다. 아무리 기온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낮보다는 새벽 시간이 운동을 하는 데는 여러 면에서 나은 까닭이겠지요. 비가 올 듯해서 우산을 챙겨 들고 산행에 나섰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에서 거의 매일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도 있고, 오늘 처음 본 얼굴도 더러 있었습니다.


또래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곁을 스쳐갔습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 몇 마디를 듣게 되었습니다. "에이, 자기 몸이 견딜 때까지 살다 가는 거지." 하고 노란 티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말하자 곁에서 나란히 걷던 회색 티셔츠의 할머니가, "그럼! 사람이 어디 더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건가." 하면서 노란 티셔츠 할머니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듯 말하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다들 철학자가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허투루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습기가 많은 날엔 모기떼가 극성입니다. 비가 내리면 인적이 끊기고, 그리 되면 그들 역시 쫄쫄 굶어야 할 처지가 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전에 시작된 비는 지금도 하염없이 내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물웅덩이의 수면 위로는 빗방울이 만드는 물동그라미의 잔상이 규칙적으로 나타났다 스러지곤 합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 패배한 듯 보이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지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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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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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과 이글거리는 태양이 두렵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나 이따금 생각해 본다. 싫었던 적은 자주 있었어도 두려웠던 적은 글쎄...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작열하는 여름 날씨가 두려웠던 적은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요즘 날씨는 정말 두렵다. 열대야로 인해 잠을 설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낮의 살인적인 더위는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음을 현실에서 체감하기 때문이다.


조승리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남은 인상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을 서둘러 읽게 되었다. 때론 읽었던 책의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같은 작가의 책을 연거푸 읽을 때가 있다. 조류의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한 뒤 처음 본 대상을 자신의 어미로 인식하는 것처럼 작가의 이름만 보여도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동 반사적인 이러한 반응은 정해진 기간이 없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작가가 쓴 한 작품에 크게 실망하거나 최근에 읽은 다른 어떤 작가의 작품이 내게 큰 인상을 남김으로써 나의 시선이 다른 작가에게 향하면서 끝이 나게 마련이다.


"나는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대로 살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내가 얻은 것은 운명에 결코 순응하지 말고 맞서라는 가르침이었다. 나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피해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조언받는다. 그것이 진정한 명리학이라 생각한다."  (p.248)


조승리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인 이 책은 전작의 다소 심각한 분위기에 비해 글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밝아진 느낌이었다. 첫 작품 치고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덕분일지도 모른다. 처음 출간한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는 건 웬만한 필력으로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물론 시각 장애인이라는 작가의 남다른 이력이, 그리고 시각 장애인이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직업 중에서 고객과의 신체 접촉이 잦은 마사지사를 직업으로 삼아 그 길을 꿋꿋이 걷고 있는 점도 독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독자들이 조승리 작가를 선택하는 데는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생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신에게 지워진 운명의 굴레나 삶의 역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깨 위에 쌓인 가벼운 먼지쯤으로 여겨 몇 번의 손길로도 쉽게 떨쳐낼 수 있다고 믿는 자세는 장애가 없는 일반인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난관에 처한 인간에게 절망이나 좌절은 가깝고 용기나 희망은 아주 먼 곳에 위치하는 법이니까.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자 새로 입학한 내가 궁금했는지 아이들이 내 방으로 몰려왔다. 그 애들은 별스럽지 않게 자신이 실명된 이유를 말했고, 우스갯소리를 하듯 장애인 학교에 입학한 과정을 떠들어댔다. 애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했다. 부모가 모두 장애인인 아이도 있었고, 갓난아이 때 쓰레기통에 버려져 구조된 고아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낯선 공간에 누워 생각했다. '나도 저 애들처럼 불행이 익숙해지면 무뎌진 불행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겠지.' 엄마가 비상금으로 놓고 간 십만 원은 새로 사귄 친구들과 유흥비로 탕진했다. 그리고 나는 눈먼 일상에 적응했다."  (p.162)


명한 햇살 사이로 가볍고 건조한 바람이 불고 있다. 여름철에 흔하디 흔한 소나기도 요즘엔 찾아보기 힘들다. 아스팔트 도로는 강렬한 햇빛에 달구어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거리에는 휴일 오후를 닮은 느긋한 차량들이 몇 대 오갈 뿐 인도를 걷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한껏 기세가 오른 여름 햇빛으로부터 달아나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잔다. 일주일에 삼일 마사지사로 일하고, 평일 오전에는 3~4시간씩 집필을 하고, 건강을 위해 PT도 받고 있다는 조승리 작가. 작가처럼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면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꼬박 일주일을 소모했다.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노력하지 않는다. 무더위를 핑계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체는 한 시간가량 수난을 당하다가 거짓말처럼 안정되었다. 난기류 구간이 끝난 것이다. 기장의 무사 귀환 방송에 승객들이 환호하며 알라를 불러댔다. 나는 절망스러웠지만 안도했다. 종잡을 수 없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공포로 잠식되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살고 싶었다. 나는 건방지고 오만했다. 비겁하게 불행을 피하려고만 했다. 못난 마음을 자책했다. 멀뚱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승무원이 내게 다가와 손에 샌드위치를 쥐어주었다."  (p.112)


누군가 내게 숙제를 내준 건 아니지만 집에는 여전히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딴에는 읽겠다고 산 책이지만 나는 띠지도 풀지 않은 채 배달된 채 그대로의 상태로 고스란히 모셔만 두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날씨를 핑계로 뒹굴뒹굴 시간만 흘려보냈다. 휴일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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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보다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화려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야 하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더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넘치지 않고서는 화려함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겠지요.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이따금 들춰보곤 합니다. 당신의 삶이 평탄했더라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던 작가는 삶이 문학보다 먼저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단순함을 찾는다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뜻입니다. 화려하고 오밀조밀 귀여운 것만 탐하기에는 정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러나 녹음이 무성한 한여름에는 숲의 본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화려한 것만 눈에 띄던 젊은 시절에는 삶의 참뜻을 알기 어려운 법이지요. 기운이 없어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가재도구와 옷가지를 겨우 갖추고 살 나이가 되면 그제야 겨우 삶의 본모습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리고 약하게 바람이 불던 오늘의 아침 날씨는 금세 변하여 무덥고 습한 날씨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환기를 하기 위해 베란다 창문을 열면서 가볍게 부는 바람이 반가워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문득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독일 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이메일로 꾸려지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었습니다. 나는 이 소설을 생각할 때마다 삶의 쓸쓸함과 함께 서늘한 한기를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형식 때문인지 헬렌 한프의 소설 <체링크로스 84번지>도 함께 떠올리는 건 나만의 습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이따금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나도 이제 화려함보다는 단순함을 선호하는 쪽으로 취향이 변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복잡한 것을 감당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어느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나빠지는 건 어쩌면 타인의 단점을 젊은 시절처럼 세세히 보거나 듣지 말라는 신의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온이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무더운 하루가 되겠지요. 나는 어쩌면 이 더위를 잊기 위해 다니엘 글란타우어의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찾아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쓸쓸함과 서늘한 한기가 어깨 위로 가득 내려앉는 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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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07-0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문장입니다.

꼼쥐 2025-07-12 16:30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꽤나 덥네요.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나와 디탄
사철생 지음, 박지민 옮김 / 율리시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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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딘다'는 말은 '살아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힘듦을 견딘다거나 오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이나 괴로움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결심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많지 않은 선택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삶은 단순히 살아내는 한 과정일 뿐 주어진 삶을 즐기는 살아가기의 연속은 아닌 게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은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찰나의 가벼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중국 작가 사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었을 때였다. 조승리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은사님이 추천한 사철생 작가의 산문집 <나와 디탄>의 한 대목을 인용했었는데 나는 그것이 꽤나 인상 깊었다. 시력을 잃은 조승리 작가도 그렇지만 사철생 작가 역시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우리도 삶을 살아내는 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닌데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더해진다는 것이기에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었던 나는 사철생 작가의 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 살에 나는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다른 일도 하고 싶었다. 몇 번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에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때의 어머니는 젊지 않은 데다 내 다리 때문에 흰머리가 생겼다. 병원에서는 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내 치료에 모든 것을 걸었다. 여기저기 용하다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좋은 비방을 찾아다녀 돈도 많이 썼다. 어디서 이상한 약을 구해 와서 먹고 마시게 하거나 씻고 붙이고 쐬고 맞도록 했다. "시간 낭비 하지 마! 다 소용없다고!" 나는 오직 소설만을 쓰고 싶었다. 소설만이 장애인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p.79 '자귀나무' 중에서)


우리는 종종 별 뜻도 없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처지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정작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빈말에 가까운 그 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인사치레에 가까운 그 말을.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건 내가 적어도 신분이나 여건상 그 사람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이해하니까 고맙게 생각해,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래 봬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선함과 너그러움이 있는 사람이야, 하는 정도의 우월의식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은 겉으로 드러난 여러 차이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그와 같은 계급과 차별의식에서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처음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을 때는 남은 평생 방에서 책만 읽고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몰래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나를 달래서 안아 마당으로 데려 나왔다.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 버드나무와 바람을 보니 그 결심은 바로 흔들렸다. 게다가 친구들이 자주 놀러와 바깥세상에서의 온갖 소식을 들려주니 점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이 넓은 세상에서 휠체어를 밀며 다니는 일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255 '휠체어에 앉아 길을 묻다' 중에서)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싱숭생숭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곤 한다. 하물며 내 몫으로 장애인 한 명을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삶도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전해질 테다.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은 삶의 동력을 잃게 하고 원망과 분노만 쌓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가정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긍정의 선순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과 무한 사랑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파탄과 공멸의 외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범위를 넓혀 보면 한 사회의 구성원 간에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앞으로 살아갈 작은 길조차 가늠하지 못했고, 여동생은 겨우 열세 살이어서 아버지 혼자 이 가정을 짊어져야 했다. 이 20여 년 동안 어머니는 하늘에서 다 지켜보셨을 것이다. 20년 후 모든 것이 안정된 어느 겨울밤, 아버지는 우리를 떠났다. 마치 어머니의 당부를 다 완성하고, 주어진 고통과 노력과 고단함과 외로움을 다 겪어내고 급하게 어머니를 찾으러 떠나신 듯했다. 이 세상에 무덤 하나 남겨두지 않은 어머니를 찾아 서둘러서."  (p.200~p.201 '기억과 인상' 중에서)


오늘도 날씨가 무덥다. 주말을 맞는 홀가분함이 없었더라면 날씨로 인해 마음은 더욱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장마철에 물난리를 걱정하기는커녕 비는 구경도 하기 어렵고 메마른 날씨에 기우제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이렇게 마른장마가 지속되다가 수확을 앞둔 어느 시점에 때 아닌 물난리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 큰 곤란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릴 비라면 푹푹 찌는 더위도 식힐 겸 이맘때 내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날씨가 덥다 보니 되지도 않을 바람이 점점 늘어만 간다. 돌이켜보면 또 이렇게 힘든 한 주를 살아낸 게 아닌가. 견딘다는 말은 살아낸다는 말의 동의어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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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는데 비는 오지 않고 날씨는 그저 무덥기만 하다. 밤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바람도 없고 습도가 높은 탓인지 창문을 열어젖히고 선풍기를 틀어도 땀만 줄줄 흐를 뿐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더위를 일컫는 말이 '불볕더위',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등 많이도 생겼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그만큼 지구 기온이 급변했다는 뜻이리라.


더위로 인해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아침 운동을 나가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산에는 피에 굶주린 모기떼가 어찌나 극성인지 아무리 더워도 반팔 운동복을 입을 수가 없다. 그러자니 땀은 비 오듯 흘리게 되고 땀 냄새를 맡은 모기는 '옳다구나' 하면서 더욱 달려들어, 모기를 쫓으랴 더위를 식히랴 이중으로 고생을 하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이런 처지이다 보니 '오늘은 운동을 나가지 말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는 건 당연지사, 두 눈을 질끈 감지 않으면 나는 너무도 쉽게 그 유혹에 넘어갈 것 같은 위험을 감지하곤 한다. 더위가 마냥 나쁜 것은 아니어서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딱히 할 일이 없는 나는 책을 읽곤 한다. 말하자면 책 읽는 시간이 전에 비해 조금 늘었다는 점은 더위가 내게 주는 혜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백온유의 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읽고 있다. 가출 청소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백온유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인해 독자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일은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장면 하나하나가 다 수긍이 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가출 경험이라는 게 책이나 언론을 통한 간접경험일 테지만 말이다.


"어머니 지갑에 있던 현금이 떨어져갈수록 마음은 초조해졌고 남은 돈으로는 하루나 이틀 정도 버틸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슬그머니 휴대폰을 켰다. 걱정이 가득한 연락이 얼마나 와 있을지, 이쯤하고 못 이기는 척 집으로 돌아가는 게 유일한 선택지가 아닐지 생각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어머니에게서는 내가 도망친 당일에만 몇차례 전화가 왔었고 다음 날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더이상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고 그게 아버지의 뜻이라는 걸 나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p.37)


오늘도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밤에도 나는 몇 번을 깼다 다시 잠들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장마가 끝나고 시작되는 본격적인 무더위는 아직 맛도 보지 않았는데 2025년의 더위도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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