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결혼 10년 만에 첫 아이를 얻고 그 아이를 위해 100일 기도를 온 어떤 부부가 있었다.

그때 스님이 하신 말씀은 이랬다.

  "자기 자식이라고 어떻게 저리 편애할 수 있을까?"

나는 순간 당황했다.

당시 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오히려 스님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당연한 거 아냐? 스님도 참 웃기는 사람이네'하고 생각했었다.

 

곧 있으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이 다가온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명절 모임에서 싸움과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이해의 부족이 원인이지만 가깝다고 느껴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빌미가 되는 경우도 있다. 부부간에도 사소한 말다툼이 심각한 불화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인의 영역을 보장해 주지 않는 우리의 문화에도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유지하는 모든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각각의 개인에게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불가침의 영역을 존중하고 부당하게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문화에서 성장한 우리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가깝다는 이유로, 연장자라는 이유로, 또는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을 옭죄는 일은 삼가야 한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일.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어서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방에게 간섭이나 모욕으로 비춰진다면 그 또한 곤란하지 않을까?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가까운 친지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진정한 '사랑'이다.

 

스님의 말씀은 '편애'가 집착이나 간섭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어슴푸레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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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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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는 상인계급 바이샤가,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은 색깔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 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사성제에 들지 못하여 '아웃 카스트'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있었다.  그들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최하층민이었다.(P.9 -P.10)

 

이 책은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 나렌드라 자다브의 자전적 소설이다.

불가촉천민(달리트)으로 태어난 그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는 뭄바이에서 일이 없어 예스카르 의무(마하르들에게 부과된 마을의 의무)를 하기 위해 고향 오자르로 떠난다.  마하르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석 달씩 이 의무를 맡는데, 마을의 하인이 되어 마을 소식을 알리고, 부고를 전하고, 가축의 시체도 치운다.  이런 일들을 하는 대가로 약간의 곡물을 받고, 집집마다 다니며 남은 음식을 구걸할 수 있다.  어느 날 다무는 마을의 샘에 빠진 시체를 지키라는 순경의 지시를 받고, 밤새 허기를 참으며 지시를 따른다.  다음 날 서장의 부당한 지시에 항거하다 물매를 맞는다.  다무는 예스카르 의무를 뒤로 하고 소누와 함께 다시 뭄바이로 향한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인간답게 살기를 원했던 다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긍심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달리트의 해방과 자유를 주장했던 암베드카르 박사의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부모는 자녀들을 교육함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달리트 출신 암베드카르 박사는 다무와 소누의 의식을 일깨웠고, 그들의 자식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작가 나렌드라 자다브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로 돌아와 국제통화기금의 관리가 된다.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했던, 상층 카스트의 사람들과 우연한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 몸에는 종을 달아야 했던, 달리트 출신의 나렌드라 자다브는 상층 카스트의 여인과 결혼하고,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들의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었던 사원에서 제를 올린다.

그가 학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 다무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P.342)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 가장 고가의 아파트라는 T. 팰리스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학벌은 보잘 것 없지만  많은 재력을 보유한 부류와 학벌과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춘 전문가 집단과 재력과 권력을 소유한 소수의 정치인 집단 등으로 나뉘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것이다.

과연 계급이 없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나라는 헌법 전문에 밝히고 있듯이 게급과 차별을 부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급은 존재한다.

오히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보다 더 확고하게 굳어가고 있다.

우리가 타파해야 할 대상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 그것은 서서히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신분제도가 그랬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그랬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과녁에 화살을 맞히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의 생명을 후손에게 대물림하듯 계급도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물체에 운동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듯, 생명과 계급에도 관성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대상과 보이는 대상, 어느 것이 더 깨트리기 쉬운가?



이 책은 작가 자신의 부모 다무와 소누의 인생을 중심으로 하고, 자신과 자신의 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소설로서의 감칠맛은 없지만, 삶의 자세와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는 충분히 제공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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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받고 주는' 관계가 아닌 '주고 받는' 관계이다.
'받고 주는'관계는 거래일 뿐이고 결코 사랑이 아니다.
먼저 주는 곳에는 사랑이 싹트고,
먼저 받으려는 곳에는 욕심이 자란다.
마음의 크기는 항상 같아서
욕심을 키우면 사랑이  작아지고
사랑을 키우면 욕심은 점점 작아진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거래에 익숙해져 사랑도 받은 후에 주려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방법으로 시작된 사랑이 어찌 성공할 수 있으랴.
먼저 주지 않으면 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나의 방식만 고집하다 우리는 매번 사랑에 실패한다.
그리고 실패의 책임을 늘 남의 탓으로 돌린다.
진실로 사랑을 원한다면 나의 방식이
거래인지 사랑인지 되짚어 볼 일이다.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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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크릿>이후 봇물처럼 흘러나온 자기계발서는 이제 서점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옛모습은 간 데 없고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인기 코너가 되었다.

자기계발서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은 차치하더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책이 선을 보이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일도 쉽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선택한 책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도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신의 여가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을 때에는 투자한 시간만큼의 효과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계발서를 두루 섭렵했다 자신할 수 없는 내가 '자기계발서는 왜 읽는가', '자기계발서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하여 짧은 메모라도 남기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런 문제로 고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지나친 오지랖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는 저자의 의도하는 방향에 따라 그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람들의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 계획과 방법, 개인의 능력과 한계 등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개선하는데 주력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 불안감, 자아상실 등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책들도 있다.  최근에는 둘을 적절히 통합한 책들도 있지만 그 내용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렇게 더욱 다양한 종류의 자기계발서들이 출판되고 현란한 광고로 독자들을 유혹할수록 독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킨다.

사실 자기계발서는 그다지 재미도 없고,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며, 문학서적에 비해 가독력도 떨어지는데 우리는 왜 자기계발서에 열광하는가?

그 이유는 현대인의 지나친 경쟁의식에 있다.  나의 능력을 향상시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싶은 욕망,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바람은 현대인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불치병이다.  이러한 공통심리를 교묘히 파고든 책이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둔 학생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이나, 신입사원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것을 볼 때 그들을 머리가 나쁘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게으르다고 평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일의 우선순위를 모를 뿐이다. 

이렇듯 어떤 일에 있어 우선순위는 성적이나 기업의 손익, 개인의 물질적 풍요와 빈곤 등 그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 기간을 잘라서 바라본 결과일 뿐 능력이나 태도의 차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을 인지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 개인의 능력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항상 정해진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무엇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100'이 될 수도 '0'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행히도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함에 있어 우리는 그 결과에만 집착할 뿐 그 시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잘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경험에 의존하는데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우리로서는 당연하게도 어떤 일에 허둥대거나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도 하찮은 일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는 분명 인생이라는 기간 내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또는 자신이 정한 앞으로의 기간 안에 무엇을 먼저 처리하고, 원하는 결과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와 같은 우선순위와 방법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한다.  분명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기계발서'가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은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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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읽고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니 조금 버거운 것도 있지만. 내용을 음미하며 읽고자 하는 욕심 때문인지 속도는 아주 느리다.

다 읽지 못하였으니 리뷰는 쓸 수 없겠고, 1911년에 그가 써놓은 좌우명을 올린다.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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