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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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는 상인계급 바이샤가,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은 색깔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 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사성제에 들지 못하여 '아웃 카스트'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있었다.  그들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최하층민이었다.(P.9 -P.10)

 

이 책은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 나렌드라 자다브의 자전적 소설이다.

불가촉천민(달리트)으로 태어난 그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는 뭄바이에서 일이 없어 예스카르 의무(마하르들에게 부과된 마을의 의무)를 하기 위해 고향 오자르로 떠난다.  마하르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석 달씩 이 의무를 맡는데, 마을의 하인이 되어 마을 소식을 알리고, 부고를 전하고, 가축의 시체도 치운다.  이런 일들을 하는 대가로 약간의 곡물을 받고, 집집마다 다니며 남은 음식을 구걸할 수 있다.  어느 날 다무는 마을의 샘에 빠진 시체를 지키라는 순경의 지시를 받고, 밤새 허기를 참으며 지시를 따른다.  다음 날 서장의 부당한 지시에 항거하다 물매를 맞는다.  다무는 예스카르 의무를 뒤로 하고 소누와 함께 다시 뭄바이로 향한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인간답게 살기를 원했던 다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긍심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달리트의 해방과 자유를 주장했던 암베드카르 박사의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부모는 자녀들을 교육함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달리트 출신 암베드카르 박사는 다무와 소누의 의식을 일깨웠고, 그들의 자식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작가 나렌드라 자다브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로 돌아와 국제통화기금의 관리가 된다.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했던, 상층 카스트의 사람들과 우연한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 몸에는 종을 달아야 했던, 달리트 출신의 나렌드라 자다브는 상층 카스트의 여인과 결혼하고,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들의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었던 사원에서 제를 올린다.

그가 학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 다무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P.342)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 가장 고가의 아파트라는 T. 팰리스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학벌은 보잘 것 없지만  많은 재력을 보유한 부류와 학벌과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춘 전문가 집단과 재력과 권력을 소유한 소수의 정치인 집단 등으로 나뉘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것이다.

과연 계급이 없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나라는 헌법 전문에 밝히고 있듯이 게급과 차별을 부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급은 존재한다.

오히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보다 더 확고하게 굳어가고 있다.

우리가 타파해야 할 대상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 그것은 서서히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신분제도가 그랬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그랬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과녁에 화살을 맞히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의 생명을 후손에게 대물림하듯 계급도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물체에 운동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듯, 생명과 계급에도 관성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대상과 보이는 대상, 어느 것이 더 깨트리기 쉬운가?



이 책은 작가 자신의 부모 다무와 소누의 인생을 중심으로 하고, 자신과 자신의 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소설로서의 감칠맛은 없지만, 삶의 자세와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는 충분히 제공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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