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리멘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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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알지 못하고, 떠올릴만한 추억도 없다.
고향 뒷산에 있는 할아버지의 산소만 기억할 뿐이다.
저자인 레이첼 레멘에게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과 어린 시절 그녀에게 마음으로 전해주신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그녀와 함께 하고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가끔 삶이 버겁고 힘겹다고 느낄 때.
그럴 때마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 되고 마음 든든한 것일지.....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카발라(kabbalah : 유대교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랍비로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 이민 1세대였다.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간직한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부모님은 낯선 땅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전문적 지식과 능력이라고 믿었다.  의대 1학년 때 크론이라는 희귀병으로 쓰러졌을 때도 가정 간호사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기숙사에서 그녀를 돌보며 학업을 독려했었다.  할아버지의 자녀들과 손자들은 대부분 의사나 간호사였다.  세상에 깃든 거룩함을 느끼며 삶을 축복으로 느끼는 할아버지와 일상의 평범한 삶을 뛰어넘는 재능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부모님 세대 사이에서 가치관의 갈등을 느꼈던 그녀가 전문의로서 영적인 치유와 섬김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 것은  의사가 된 후 35년이 지나서였다고 고백한다.  
소아과 의사를 그만두고 중증의 질병을 지닌 사람들을 치유하는 심리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하고 의사들에게 그 필요성을 교육하는 일에 투신하는 선두 주자로, 20년 동안 암 등의 중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는 그녀의 소소한 일상과 할아버지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 환자들과 그 가족을 상담하면서 그녀가 깨달은 삶의 지혜와 짧은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몇번이고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억눌러야 했다.

  청교도들이 누비 이불을 만들 때 누비 이불의  대가는 그가 만드는 누비 이불마다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었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렀다.  영혼을 지닌 것은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천에 '영혼의 구슬'과 같은 올이 하나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이 꿈꾸었던 삶의 천보다 더 멋진 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P.266)

감정의 개입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  오직 과학적 지식과 뛰어난 재능만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을 교육받았던 저자가 인간의 불완전성과 삶의 신비, 삶의 축복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이별을 했던 할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닦아놓은 '사랑의 길'이 아니었을까?   

  섬김은 영혼의 일이다.  진정한 섬김이란 우리 안에 있는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영혼의 움직임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선을 향한 전환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어떤 전환은 아주 작고 어떤 전환은 크다.  이 모두가 매우 중요하다.  탐욕, 무절제한 열망, 무감각, 무의식의 사슬 등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진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보다 영혼이 더 강하다는 증거다.(P.298)

자신의 재능으로 봉사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혼으로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섬기고자 했던 레이첼 레멘은 책을 읽는 모든 독자의 가슴에서 향기를 뿜어내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섬김의 꽃'을 피우려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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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침을 먹고 혼자 산책을 나섰단다.
잔뜩 흐린 하늘과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
그 길에서 나는 노란 산수유꽃을 만났지.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는 가녀린 산수유꽃이 얼마나 장하던지.....
오늘은 네게 그 꽃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단다.
믿지 못하겠다고?
그래.  세상엔 가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곤 한단다.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수화기를 통해 멀리 떨어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너는 분명 기적을 믿는 것이란다.


아들아

산수유꽃에게 물었단다.  매년 봄철 한때 잠시 피었다 지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고.
너무 유치한 질문이었지?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아주 많이 부끄러워 했단다.
  "우리는 순간을 나누어 영원을 얻는 것이랍니다.  벌과 나비에게 꿀을,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에게 향기와 아름다움을.  이런 것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얻는답니다.  우리가 주는 것에 비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우리는 매년 그 신비에 감탄한답니다.  당신네 인간들은 오히려 순간적인 것에 탐닉하고 영원한 것을 멀리하더군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알고 있는 이 자연스러움을 인간 중에는 지혜로운 자만 그리 한다고 들었어요."

 
아들아

나는 사랑, 믿음, 기쁨, 행복, 관심, 우정 등 영원한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반평생을 보냈는데 이것이 보편적 진리였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단다.
어쩌면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 자리를 주었던 하느님이 몹시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더구나.
삶은 화려할수록 금세 사라지는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평범한 것에 삶의 신비는 자신의 모습을 꽁꽁 숨기곤 하지.
어느 책에선가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것이지만 관계마저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구나. 



아들아 


순간적인 것을 많이 나누렴.
순간적인 것을 탐하면 탐할수록 소중하고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한단다.
나의 아들은 순간을 미련없이 주고,  영원을 얻는 삶을 살았으면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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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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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을 세세히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삶에 있어 작은 행복이 아닐까?
하루하루가 즐겁고, 온갖 모험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은 지친 일상에 활력소로 작용할테니까.
1951년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태어난 빌 브라이슨의 어릴 적 이야기는 70년대 우리네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세계 전체 부(富)의 95%를 차지하고 있었던 1950년대의 미국 생활상이 전적으로 우리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냉장고와 세탁기가 등장하고 일반 가정집에 자동차 보유 대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던 1970년대를 생각하며 그의 이야기는 마치 나의 추억인듯 빠져들게 되었다.
빌 브라이슨은 엄밀히 말해 유럽인은 아니다. 미국 태생이지만 20여년 동안 영국에 살면서 < 더 타임즈 > 나 < 인디펜던트 > 등 거의 모든 매체에 기고를 해 온 칼럼리스트이자 여행작가이고, 몇 년 전부터는 다시 미국에 돌아가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특정 문화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냉정한 관찰에서 비롯된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일단 어떤 사물, 어떤 사람이든 그의 눈에 띄어 그의 머릿속을 통과하는 순간 즐거운 얘깃거리로 바뀐다. 

추리닝 한 벌이면 운동복이자 잠옷이며 외출복까지 겸했던 우리의 70년대 그 시절은 차림새처럼 몸도 마음도 자유로웠다.  최소한 나이키 운동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봄이면 물 오른 나무처럼 겨우내 숨죽였던 아이들 팔뚝에 기운이 돌고, 주체할 수 없는 기운에 윗동네 아이들과 밤늦도록 전쟁놀이.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흉내내어 망토처럼 보자기를 뒤집어쓰고는 골목을 내달리던 일.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과도하게 넘치는 아이들은 종종 동네 목욕탕의 김서린 여탕 유리창을 힐끔거리거나 영화 두 편을 동시상영하는 영화관 주변을 맴돌았다.  가끔 헌책방 아저씨로부터 구입한 외국의 성인잡지를 학교에 몰래 가져와 영어공부에 목마른 친구들에게 한 장씩 찢어 돈을 받고 팔기도 했었는데, 수업시간에 서랍에 숨겨놓고 보다가 선생님께 들켜 혼이 나기도 했었다.

  발가벗은 여자를 보고 싶어하던 우리를 위해서는 <플레이보이>를 멋지게 장식한 사진들이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덜 알려진 남성용 정기간행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그런 잡지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동쪽 끝에 줄줄이 늘어선 허름한 잡화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목소리를 두 옥타브쯤 낮추고 1939년생이라고 주장하며 하느님한테라도 맹세할 수 있다고 무표정한 점원에게 거짓말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P.169)

빌 브라이슨의 표현은 사실관계에 그치지 않고, 모험심과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의 감정을 섞어 배를 잡고 한참을 웃게 한다.  그의 고백을 신부님이 들었으면 웃음을 참지 못한 신부님이 고해실 밖으로 뛰쳐 나가거나, 냉전체제의 두 주역인 흐루시초프와 아이젠하워가 웃으며 악수를 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빌 브라이슨은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핵무기 경쟁과 같은 당시의 커다란 사건들도 만화책의 지어낸 이야기인듯 심각하거나 우울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나 자신의 기억들을 그저 단순하게 나열만으로 그쳤다면 이야기는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었을까?
오늘 하루를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준 저자에게 감사라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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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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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에 앞서 '창의력'에 대한 담론부터 하려고 한다.
언제부터라고 그 시발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들 교육에 있어 창의력이 강조되고 있고, 부모들도 너나 할것 없이 자식들의 창의력 증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방법론에 있어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겠으나 근래의 현실을 보면 시대에 따라 유행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국가나 초창기 산업사회에서는 기술자, 또는 전문가가 부족하기 마련인지라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성공의 지름길인 양 인식되었고, 그 길을 따랐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머쥔 것도 사실이다.  이 시대에는 '재주 많은 사람들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속담도 교육의 정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고도의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하나의 '스펙'이라는 것이 자신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차츰 깨닫고 있는 듯하다.  대학생들의 '스펙쌓기' 경쟁은 그 좋은 본보기이다.  이제는 한 우물을 파던 시대는 막을 내린 느낌마저 든다.  이와 더불어 어떤 교육 전문가로부터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창의력만이 살길이다'라는 인식이 교육 현장에 팽배해 있다.
'창의력'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과연 어떻게 교육을 해야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고, 그런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까?
참으로 난감하고 뜬구름 잡기식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새로운 것은 '무'에서 갑자기 나타난 '유'의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창의력'이란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습득한 토대 위에서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점에서 고전은 학문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하겠다.

이 책은 저자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해왔던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총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서론과 제11장 강의를 마치며를 제외하면 그 주요 내용이 중국의 고전을 연대순으로 훑고 있다.  시경, 서경, 초사와 같은 고대 운문에서 시작하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등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꽃피었던 다양한 사상과 거대 담론을 요약하여 들려주고 있다.
어쩌면 장대한 역사의 동양 사상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거시적 관점이 각각의 사상가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어떻게 비판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다. 
사실 젊은 시절에 고전을 읽기는 매우 어렵다.
나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며, 젊은 사람들은 모호하고 결론이 없는 듯한 고전의 특성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서구식 교육제도 하에서 학습한 우리 학생들이 동양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들에게 동양의 고전은 곰팡내 나는 고리짝 정도로 인식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학생들보다는 부모된 자가 읽어야 할 책으로 보인다.  부모가 이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동양 고전을 강독할 수는 없겠으나 학문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자세를 바로잡음으로써 학생들의 학문적 기틀을 확고히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현대사회는 미시적이냐, 거시적이냐 선택할 것이 아니라 총론과 각론이 통합되는, 더 나아가 학문과 학문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하나의 '거대학문'으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발전.진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의 학생들은 전문성과 다양성의 이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딱히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한정된 시간 내에서 학생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학문을 담아내는 그릇(器), 또는 틀을 설정하고 그 정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학문적 소양을 기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까닭에 학문적 소양을 쌓는 것은 학생들의 책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담을 그릇을 빚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기에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부모는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나 고전을 읽지 않고서는 아이에게 학문적 기틀을 잡아주기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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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아들과 아내를 대동하고 가까운 서점으로 간다.
어제도 다르지 않아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는 분당의 교보문고로 향했다. 
초등학교 일학년의 아들은 요즘 <신기한 스쿨버스>와 <너도 보이니>에 푹 빠져 있다.
다른 책을 권해도 요지부동 고집을 부린다.
읽은 횟수만 세어도 책을 외울 정도로 많을텐데 여전히 그 책이 좋단다.
봄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아들은 기분이 좋았나 보다.  숨을 못 쉴 정도로 바람이 거센 날씨를 좋아하는 것도 아들녀석만의 특별한 면모이다. 
아내는 요즘 명상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여러 이유로 말미암은 마음 속의 스트레스를 다루기 어려웠나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녀석의 보살핌도 그러려니와 나의 문제도 아내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의 요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에게 늘 죄스럽다.
서점은 신학기 학용품 세일을 하는 관계로 몹시 복잡하였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도 앉을만한 자리 곳곳에는 책을 든 사람들로 넘쳐난다.
혼잡한 자리를 비집고 한동안 책을 읽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불과 십수 년 전만해도 건물보다는 공터가 많아 겨울이면 불어오는 찬바람에 마음까지 을씨년스러웠던 분당의 거리는 이제 더 이상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환락의 도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는 아들에게 몇 번씩 다짐을 한다.
  "아빠 또 올라오시니까 가실 때 울지 마"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 자신이 없는 표정.  맛을 느끼지 못하는 저녁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아들도 나도.
웬만하면 버스로 이동하는 나는 이 시간이면 매번 차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아들과 어려운 이별을 했다.  고개를 숙인 얼굴에 눈물이 맺히고 있다.
오늘도 아들은 울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의 옆으로 아들을 불러 가슴에 안으며 내게 손짓을 한다.  아내의 재촉에도 여전히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았을 때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아들에게 전화를 건넨다.  아들과의 통화는 여전히 힘겹다.
어른들은 가끔 사내녀석이 눈물이 너무 많다고 걱정을 하시지만 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좋기만 하다.  웃을 때는 세상 걱정 하나도 없이 티없이 깔깔 웃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세상의 그 누구로부터 눈물의 배웅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아들이 쏟는 눈물의 빚, 사랑의 빚을 지고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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