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침을 먹고 혼자 산책을 나섰단다.
잔뜩 흐린 하늘과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
그 길에서 나는 노란 산수유꽃을 만났지.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는 가녀린 산수유꽃이 얼마나 장하던지.....
오늘은 네게 그 꽃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단다.
믿지 못하겠다고?
그래. 세상엔 가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곤 한단다.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수화기를 통해 멀리 떨어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너는 분명 기적을 믿는 것이란다.
아들아
산수유꽃에게 물었단다. 매년 봄철 한때 잠시 피었다 지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고.
너무 유치한 질문이었지?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아주 많이 부끄러워 했단다.
"우리는 순간을 나누어 영원을 얻는 것이랍니다. 벌과 나비에게 꿀을,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에게 향기와 아름다움을. 이런 것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얻는답니다. 우리가 주는 것에 비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우리는 매년 그 신비에 감탄한답니다. 당신네 인간들은 오히려 순간적인 것에 탐닉하고 영원한 것을 멀리하더군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알고 있는 이 자연스러움을 인간 중에는 지혜로운 자만 그리 한다고 들었어요."
아들아
나는 사랑, 믿음, 기쁨, 행복, 관심, 우정 등 영원한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반평생을 보냈는데 이것이 보편적 진리였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단다.
어쩌면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 자리를 주었던 하느님이 몹시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더구나.
삶은 화려할수록 금세 사라지는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평범한 것에 삶의 신비는 자신의 모습을 꽁꽁 숨기곤 하지.
어느 책에선가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것이지만 관계마저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구나.
아들아
순간적인 것을 많이 나누렴.
순간적인 것을 탐하면 탐할수록 소중하고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한단다.
나의 아들은 순간을 미련없이 주고, 영원을 얻는 삶을 살았으면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