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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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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하여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더없이 멋진 말로 정의하였지만 나는 그 중 "여행은 삶에서 출발하여 죽음을 향해 간다."는 루이 페르디낭 쎌린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저서 <밤 끝으로의 여행> 도입부에 나온 말입니다. 여행은 삶의 저편에 속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는 쎌린느의 정의는 나로 하여금 여행에 대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였지만 때로는 현실과 아주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온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현실에 붙잡힌 채 살다 보면 여행은 한낱 상상 속의 그 무엇이 되곤 합니다.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그렇게 동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던 후지와라 신야의 고백에 비추어 보면 나에게는 아직 삶의 온기가 조금쯤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요즘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게 해외여행이라지만 실상 떠나고 싶다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차를 몰고 휑하니 떠난 주말여행이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여행 서적을 읽으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는 게 고작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때로 잊혀진 꿈이자 로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밥장의 <떠나는 이유>를 읽었습니다. 황금같은 주말에 말입니다. 내가 글을 쓴다면 아마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쯤 되지 않을까 싶은, 서글픈 기류가 듬성듬성 떠다니는 주말 오후에 작가와 함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마음 한켠에는 '언젠가는 나도...' 하는 옅은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밥장의 여행기는 처음인 듯합니다. 어쩌면 그의 책은 처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소개를 보면 이런 저런 책을 여러권 집필한 인기 작가인 모양인데 왜 나만 몰랐던 것일까요. 작가는 꽤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더군요.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에 빠져 아티스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네요. 여행 마니아로도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가 뽑은 여행의 아홉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홉 가지 키워드는 '행운, 공항 + 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입니다.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은 타바론 차는 티 소믈리에가 여러 가지 차를 섞어 그 손님만의 향을 만들어주는 차라고 합니다. 저도 '장소'라는 재료를 섞어서 저만의 여행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밥장만의 블랜딩으로 만들어낸 여행의 맛과 향에 가깝습니다." (p.21)

 

열거한 키워드만 보더라도 이 책의 내용을 대강 어림할 수 있겠지요? 그 중 방송과 나눔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미 EBS <세계문화기행>을 비롯한 몇몇 여행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마도 방송 큐레이터로서의 욕심보다는 타고난 여행 DNA의 촉수가 여행을 도와줄 여러 분야의 냄새를 맡고 그곳으로 뻗어가도록 부추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저자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꽤나 강렬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내전이 일어나 갈 수도 없는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나눔' 편에 잘 드러납니다.

 

"중세의 수도사 테오필루스는 예술가의 재능이 질투라는 지갑과 이기심이라는 창고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예술가 역시 자신의 재능을 기꺼운 마음으로 예술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예술이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하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은 가난하더라도 예술을 많은 이들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재능나눔으로 벽화를 그리러 가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조용히 지켜보다 한마디 툭 던집니다. 그 말을 들으면 다시 힘이 솟아납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더라."" (p.289)

 

각 챕터의 끝에 수록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음악’에는 작가가 각각의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을 소개하고 있는데 언급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수록해 놓은 것도 이채롭습니다. ' 어떻게 일상과 떨어져있으며, 또한 일상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복합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여행이다.'라고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온도가 임계점 이하로 내려가거나 미지의 세상으로부터 '먼 북소리'를 듣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배낭을 꾸려 홀연 그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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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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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엔딩 크레딧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우주를 구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금언과 함께 시작된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엔딩 크레딧을 본 후 나는 길어야 3분을 넘지 않는 엔딩 크레딧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제가나 테마음악과 함께 영화 제작을 위해 수고하거나 도움을 준 사람들을 소개하는 엔딩 스크롤(scroll)을 보면서 영화의 마지막을 차분하게 음미하거나 영화의 감동을 되새김질하는 그 잠깐 동안의 여유는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필수도구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는 영혼의 편지처럼 읽힌다.

 

그러나 아직은 어둠 속에서 차분하고 조용히 흘러가야 할 그 시간이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엔딩 스크롤이 뜨자마자 퇴장을 다그치는 듯 실내가 밝아지고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는 관객들로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영화의 감동이 채 가슴을 적시기도 전에 조급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런 경험들은 유쾌하다거나 기쁜 일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영화의 감동마저 경감시킨다.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거나 독서 토론에 참석하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엔딩 크레딧을 보며 영화의 감동을 되새기듯 각자의 관점에서 소설을 해석하고, 인상 깊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주고,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즐겁지 않을까 생각되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이후 독서 클럽이나 주말 독서 모임에 나가본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 두 사람의 대화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공감해요. 결국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게속 누군가의 마음을 상상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런 오해도 아예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오해야말로 우리가 결국 겪어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p.69~p.70)

 

이 책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메인 테마 도서로 다루었던 80여 권의 책 중 청취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외국 소설 7편을 엄선하여 방송 내용을 다시 글로 옮겨 정리하고 보충한 책이다. 나는 사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도서를 테마 주제로 선정했는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설 7권은 익히 읽어본 책이었던지라 때로는 무릎을 치며,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 시작하여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로 이어지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끝맺는다. 나는 이 중에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뺀 나머지 6권의 책에 대해 리뷰를 썼었다. 사실 <파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엄청나게 지루함을 느꼈던 터라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소설 초반에 파이가 카톨릭 신부를 찾아가 계속 질문을 던지잖아요. 신은 왜 그랬고 신의 아들은 왜 그랬는지 의문을 갖지만 신부는 '사랑 때문'이라고 대답하구요. 저는 사랑과 믿음이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일단 사랑하게 되면 믿게 되는 거죠. 저 역시 종교는 믿어야 이해하게 된다고 봐요." (p.230)

 

이 책에 선정된 7편의 소설이 각각의 작가가 쓴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은 따로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는 명작이고 작가의 역량이 종합적으로 잘 표현된 작품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체실비치에서>나 <암스테르담>을 더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이동진 작가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해변의 카프카>를 김중혁 작가는 <땅속 그녀의 작은 개>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선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두 명의 작가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때로는 일반 독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분야로 안내하여 책을 읽는 독자를 곤혹스럽게 할 때도 있지만, 책의 저자와 소설의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가 하면 '내가 뽑은 문장'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소설 속 최고의 문장을 소개하고 있다. 대담집이라는 게 대체로 산만하거나 주제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계적으로 기술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작가에게 나는 대체로 우호적인 입장이지만 그 중 무라카미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는 광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까닭인지 하루키 작품의 평에 있어서 '평행우주'론은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행우주에 관한 생각을 지금 막 떠올린 것은 아니구요, 이 책을 읽다가 느껴진 것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행우주에 대한 신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키는 시간에 관한 문제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때 없어진 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다른 차원에 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놀라운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을 구분할 때 평행우주에 대한 생각을 적용하는 것 같아요. 화자를 계속 엇갈리게 넣는다든지 하면서요. <1Q94>가 전형적으로 그렇고 <태엽 감는 새>도 일부분 그렇고 <해변의 카프카>도 그랬거든요." (p.311)

 

나는 지금껏 한 명의 작가에 의해 씌어진 독서 일기나 비평, 혹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주로 읽어 왔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어느 블로거의 리뷰에 댓글을 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체적이면서 신선하다. 게다가 자신도 이미 다 읽었던 책이라면 그들 옆에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절로 든다. 독서 토론은 그야말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감동을 되새기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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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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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단 며칠의 짧은 휴가를 받은 내가 얼굴만 겨우 아는 누군가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어느 작은 마을을 산책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휴가는 한번쯤 지루함을 느낄 만큼 길지 않아야 하고, 짧아서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 그런 정도면 좋겠고, 동행하는 사람은 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하여 내 속내를 스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이라면 좋겠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어도 서로를 어색해 하거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고, 혹여라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산책에 방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외딴 곳이었으면 좋겠다.  하루키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그야말로 '무중력의 삶'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소설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의 한시적인 삶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하루키 소설은 대개 흥미진진한 전개와 몰입도를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특유의 허무주의로 귀결되곤 한다.  소설 속에 기이한 사건들이나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많지만 그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나 깔끔한 결말 없이 독자들의 판단에 내맡기는 식이다.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도 삶을 움켜쥐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그저 스쳐지나는 풍경처럼 비춰진다는 것이다.  상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어느것 하나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키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의 개성과 특유의 스타일이 가장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통하여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하게 된다.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1970년 8월 8일에 시작하여 8월 26일에 끝나는 18일 동안의 이야기로서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주인공 '나'가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인 항구도시로 내려와 겪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인 '쥐'와 바에서 맥주를 마셔대며 보낸다.  '내'가 '쥐'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사고 때문이었다.  둘은 만취하여 운전을 하다 차가 거의 박살날 정도로 큰 사고를 낸다.  그러나 둘 다 숙취에 시달릴 뿐 다친 데 없이 멀쩡하다.  21살의 '나'와 22살의 '쥐'는 그렇게 어울려 지낸다.  어느 날 '나'는 바의 화장실에서 만취해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하여 집까지 바래다 주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새끼손가락이 없는 그녀와 친해진다.  그러나 그녀와 친해질수록 알 수 없는 고독감이 커져만 간다.

 

사실 이 작품은 소재의 특이성이나 스토리 구상의 기발함 때문이 아닌 하루키의 문장력이 인상적이다.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와 신선한 문장들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나는 이따금 이 책을 들춰 볼 때마다 이것이 하루키의 초기작이라는 생각을 잊곤 한다.  이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한 풋내기 소설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전개와 막힘 없는 문장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죽은 인간에 대해 무슨 말을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여자에 대해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죽음으로, 그녀들은 영원히 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살아남은 우리들은 해마다 날마다 나이를 먹는다.  때로 나 자신이 한 시간 단위로 나이를 먹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것은 진실이다."    (p.109)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상실감과 공허함은 하루키 문학의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특이한 에피소드와 세밀하고 감성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독자들에게 툭 던져놓는 듯한 작가의 전개 방식은 어떤 결말이나 해석을 유보한 채 그 전권을 독자들에게 떠넘긴다.  때로는 작가의 이런 태도가 불만일 때도 있지만 전체의 맥락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작가의 필력은 참으로 대단하구나 느끼게 된다.  하여 하나의 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 없다.

 

"나는 여름이 되어 그 거리로 돌아가면, 늘 그녀와 걷던 길을 걷고, 창고의 돌계단에 앉아 혼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정작 울고 싶을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법이다." (p.169)

 

하루키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다음과 같은 문장은 재미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는 오래 전에 읽었던, 지금은 반쯤 잊혀져 기억도 아련한 그의 소설이 돌연 생각날 때가 있다.  오늘도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한 대목이 문득 떠올랐고 다 읽을 때까지 책을 놓지 못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몹시 언짢은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 인간 사회에 만연해 있는 두 가지 거대한 죄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 우리는 곧잘 거짓말을 하고, 심심하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년 내내 조잘거리고 그것도 진실밖에 말하지 않는다면, 진실의 가치 따위는 없어지고 말지도 모른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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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월은 마음도 몸도 늘 바쁘다.

일년 중 가장 날수가 적은 달이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알차게 보내야지 다짐하지만 언제나 빈 결심으로만 끝날 뿐 무엇 하나 제대로 끝을 맺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저 '벌써 3월이야?' 하는 놀람의 말로 지난 2월을 아수워했을 뿐이다.  올해는 숫제 게획도 세우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두고 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3월을 맞을 셈이다.  다만 2월이 다 가기 전에 좋은 에세이 두어 권 읽었으면 싶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편견없는 '책사랑' 때문이다.  평생에 걸쳐 책을 좋아했던 그의 한결같음은 문장 곳곳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평생 기교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마음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  헤세는 흔들림 없는 마음을 자신의 영혼에 담아 아무리 우려내어도 마르지 않을 깊은 울림의 글을 남겼다.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대표 작가이자 교육 실천가인 하이타니 겐지로를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작가가 40대 무렵에 쓴 산문을 모았다는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상냥함'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전국민이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듯한 요즘의 우리에게 상냥하다는 말은 너무나 멀어진 느낌이 든다.

 

 

 

 

 

 

 

 

'TED'에서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밋밋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없던 힘도 짜내어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스(moth)'는 처음 들었다.  테드만큼이나 유명한 스토리텔링 이벤트라는데 말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내가 강제윤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을 읽으려 했는데 나는 그만 강제윤의 <숨어사는 즐거움>을 읽고 말았다.  저자가 다른 같은 제목의 책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물론 책이 맘에 들지 않았으면 단박에 던져버렸겠지만 처음 접한 그의 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더 오래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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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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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에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나 봅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8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라는군요.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낮잠을 자기 위한 용도로 알맞은 두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곤한 국민들이 그 책을 베고 누워 잠깐의 오수를 즐겼으면, 바라는 대통령의 애민정신(?)이 숨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책의 정가가 28,000원이고 10%를 할인받는다 해도 25,200원이니 목침 가격으로는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단 하나 좋은 점은 양장본이라 잠을 자다가 나도 모르게 침을 흘려도 크게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1쇄로 찍은 1만 5000부가 모두 팔려 2쇄를 준비하고 있다 하니 그만한 가격에 목침을 준비하기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는 이러한 기현상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성인 중에 목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회고록은 많지 않았던 듯합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가 먼저 떠오르는군요.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회고록이라고 늘 생각해오던 책입니다.  아, 이런!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의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엉뚱한 이야기로 서두가 길어지고 말았네요.  서로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흔적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한들 그 사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따금 의문이 듭니다.  나의 결론은 언제나 부정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서 그 사람의 행위만으로는 이렇다 저렇다 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고록을 쓴 전직 대통령만 하더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믿었을 것이며,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 중에 그렇게 믿었던 분은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가정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의 마음이나 습관을 잘 안다고 믿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와 반대 되는 대답이 나오곤 하지요.  우리는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할 뿐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p.201~p.202)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작가로서 명망이 높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전혀 다른 색깔의 책입니다.  추리소설이 아닌 심리소설의 범주에 속할 법한 그런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한 중년 여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세 명의 자녀를 둔 엄마로서 뒤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조앤 스쿠다모어는 자신의 삶이 무난하고 만족스러운 것이었다고 믿는 여인입니다.

 

비록 시골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자상하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 다들 장성하여 일가를 이룬 아이들을 생각할 때 조앤은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자평합니다.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바그다드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던 길에 여고 동창 블란치를 만납니다.  고교 시절 예쁘고 똑똑했던 그녀는 몇 번의 이혼과 재혼으로 이제는 천박하고 추레한 모습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렇게 변한 그녀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조앤은 속으로 우쭐한 마음마저 듭니다.  폭우로 교통이 끊기는 바람에 조앤은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서 발이 묶입니다.  읽을 책도 없고 대화할 상대도 없는 기차역 숙소에서 조앤은 무덤 같은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을 걷는 것 말고는 아무 할 일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조앤은 이 며칠을 그동안 바라던 온전한 자기만의 휴식 시간으로 삼기로 마음먹지만 블란치가 던진 몇 마디 말이 불씨가 되어 과거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조앤은 - 남들이 며칠 지나면서 그랬듯이 - 환상을 보았다. 자신이라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여행의 사사로운 부분에 신경쓰는 평범한 영국인 여행자로 보였겠지만,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사막의 고요와 태양 아래서 밀려왔던 치욕스러운 자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p.222)

 

농장을 가꾸며 농부의 삶을 살고자 했던 남편 로드니, 주관이 뚜렷했던 맏딸 에이버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채 아프리카로 떠난 아들 토니, 서둘러 결혼하여 바그다드에 정착한 막내 바버라, 조앤은 그들 모두가 자신의 고집과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약간의 강제성이 개입되었다 할지라도 현명한 조언을 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가정을 별 탈 없이 지켜왔다고 믿었는데 하나하나 되짚어 갈수록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로드니는 에이버릴에게 "인간은 하고 싶은 일 - 타고난 일 - 을 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했다. 바로 그것이 조앤이 로드니에게 한 짓이었다...... 조앤은 새로 알게 된 이러한 사실들을 초조하게, 열을 내며 변명하려 했다." (p.217)

 

조앤이 쌓아올린 지금까지의 삶이란 게 부유하고 윤택하며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모습으로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을 때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고 후회스러운 일들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볼 때도 언제나 타인의 눈을 통해서 본다."고 했던 니체의 말이 떠오릅니다.

 

"맞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러는 건 아니야. 시골의 변호사는 인간관계의 약한 면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보는 사람이야 - 의사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래서 이 일을 하다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인간이란 원래 나약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탐욕에 약한 존재지.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게 이타적이고 용감한 인간을 보게 돼. 어쩌면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폭넓은 동정심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몰라." (p.136)

 

바쁜 일상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끝끝내 모른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삶의 지평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일은 아닌가 봅니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까닭도 거기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잘못된 게 있을라구요.  모든 게 옳고 모든 게 칭찬받을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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