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난다. 경상도 사투리를 어찌나 심하게 쓰시던지 때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쳇말로 인정만큼은 '갑'이었던 분이다. 언젠가 내가 하루 종일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딸꾹 딸꾹' 하면서 돌아다니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머슬 딸가닥 혼자 훔쳐 묵었노?" 하시면서 나를 조용히 불러 식혜 한 사발과 함께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셨다.

 

어제 오후에 폭염을 뚫고 외출을 했던 나는 두어 시간 동안 원치도 않던 딸꾹질에 시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어떤 맛잇는 걸 혼자 훔쳐 먹었느냐?' 물어왔다.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이웃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무얼 그리 허겁지겁 훔쳐 먹었던 걸까?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나섰던 외출. 말매미 울음 소리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거리에는 여름 햇살만 가득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훔쳐 먹은 게 하나 있긴 하다. 내것이 아니라고 나는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는지도 모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무엇 하나 그른 게 없다. 양잿물은 마신 적 없지만 길에 넘쳐나는 오존을 욕심껏 들이켰던 듯하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생각지 않고 너무 많이 마신 게 아니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슬몃 들었다. 양심도 없는 짓이었다.

 

오늘도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거리에는 뜨거운 햇살이 넘실대고, 오가는 행인들을 위해 쉼없이 오존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찌 고맙지 않으랴! 국민들 배 곯지 말라고, 혹시나 세균에 감염되지나 않을까 강력한 소독 효과가 있는 오존을 국민들 몰래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 정부는 자신들의 공을 너무나 많이 감추는 게 아닌가. 우리가 국민들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했소, 알린다고 해서 누가 뭐랄 것도 아니고 국민들은 오히려 고맙고 황송해 할 텐데 말이다. 겸손함만으로 따진다면 역대 최강의 정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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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너무 무능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그 혜택이 부정적인 것이 그렇습니다만...

꼼쥐 2016-08-21 11:00   좋아요 1 | URL
현 정부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혜택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국민들 배고플까봐 미세먼지도 주고, 불법으로 축재하는 방법을 국민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민정수석을 본보기로 보이기도 하고... 정부는 온통 국민들 생각뿐이지요. ㅎ
 
하여가
최수영 지음 / 새움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필히 불법행위로 간주될 만한 오래된 관습을 적어도 한두 개 이상은 갖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내에서 벌어지는 그런 행위나 관습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데 있다. 예컨대 조직폭력배나 군대 조직에서의 상시적인 폭력이나, 검찰 또는 조직폭력배 내에서의 갑질은 그것이 단지 조직을 유지시키기 위한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이라고 인식될 뿐 조직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불법적인 행위 또는 직위를 이용한 파렴치한 행위라고는 그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갓 들어온 조직원이 조직내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 고참이 되어 신입 조직원을 대할 때면 그 당시에 있었던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채 오직 자신이 윗사람으로부터 당했던 것만 떠올리게 된다. 소위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이제 와서 윗사람에게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조직원을 이유도 없이 괴롭힐 수밖에. 결국 그런 행위는 조직의 폐쇄적인 운영이 지속되는 한 약간의 형태와 강도만 바뀔 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최수영 작가의 소설 <하여가>는 비슷한 조직 내의 두 인물을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김동하와 조직폭력배의 똘마니 이장철. 두 인물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유사성과 함께 인생의 비슷한 행로를 밟게 된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강대한 적 앞에서 언제까지고 마냥 무기력하게 끌려갈 수는 없는 법. 그날이 그날 같은 지리멸렬한 삶으로부터 두 청춘이 벌이는 거대한 반란은 우리 세대 청춘들을 대변하는 판타지이자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하게 하는 카타르시스라고 할 만하다.

 

이웃 블로거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이 소설은 소설의 전체적인 얼개보다도 비속어와 사투리, 유행어를 적절히 섞은 맛깔나는 문장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 다큐멘터리를 번역하고 시나리오와 문화재 스토리텔링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에 걸맞게 그의 걸쭉한 입담이 압권인 책이다. '한번 보면 '막장', 다시 보면 '막 짠한'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카피처럼 현실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찰진 대사에 배꼽을 쥐고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 그렁그렁 맺히는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 분교 대학생이었던 김동하는 돈이 없어 휴학을 하고 주유소 알바에 편의점 알바까지 하루에 두세탕씩 알바를 뛰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삼 년이나 사귄 여자친구가 변심을 하여 떠나고 그는 결국 군에 입대한다. 일병 김동하 밑으로 유준만이라는 꼴통이 들어오고 그때부터 그의 군생활마저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준만의 행패를 보다 못한 김동하는 그의 후견인인 곽병장과 함께 유준만을 쓰러트리고 탈영하기에 이른다.

 

"인생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냐 ……. 고개가 숙여졌다. 담 아래 쓰러져 있는 유준만이가 보였다. 저 지독한 애는 죽어도 문제지만 살아도 문제다. 쟤 살아나면 한밤에 나를 세면장이나 소각장으로 불러내는 짓 따윈 하지 않을 거다. 그냥 죽일 거다. 이래저래 일단은…, 뛰고 보는 수밖에!"    (p.116)

 

한편 팸짱을 하며 여러 가출팸으로부터 상납을 받아 생활했던 이장출은 범단(조폭) 스카우터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고 조폭에 가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폭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친구 무식이를 조직원들이 처벌하는 과정에서 이장출은 그만 하극상을 저지르고 도망친다. 조직원들에게 쫓기던 그는 회장님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게 된다. 불륜을 저지른 회장님의 명령을 받고 비열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도중에 그는 군인 김동하를 만난다. 김동하는 헤어진 애인 설희를 만나 담판을 지으러 가는 중이었다. 막다른 골목의 탈영병과 인생 막장으로 치닫는 조폭 똘마니의 만남은 곧 이유도 없는 사생결단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나야 그렇다 쳐도 대체 이 자식은 왜 이리 죽자 살자 덤벼드는 거냐. 제놈도 나처럼 기절에서 깨어나 뭐가 뭔지 몽롱할 텐데도 깊이 옹이 박힌 어떤 스트레스. 그 엿같음으로 악을 부리고 있다. 이 자식도 나만큼이나 되는 일 없고 뭐 좀 잘해보려고 하면 하는 짓거리마다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는 병맛인 게 틀림없다. 아무튼 너, 싸움 좀 한다. 너나 나나 젊은 팔자 왜 이리 꼬이는지. 젊은 게 한 재산이라는 개 엿 먹는 소린 어느 시러베새끼가 읊은 건지"    (p.253)

 

그들의 앞길에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이유도 없이 벌이는 그들의 결투는 '이방인'의 뫼르소를 떠올리게 한다. 부조리한 삶이며, 부조리한 청춘인 것이다. 최수영의 <하여가>는 죽을 만큼 힘든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자신의 삶을 향하여 과감히 맞장 뜰 준비가 되었는지 묻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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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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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자제하라는 기상청의 예보 때문이었는지 햇살이 가만가만 퍼지는 이른 시간부터 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습니다. 테라스 유리창에 의해 차단된 완전한 침묵. 밝음 속에 스며든 어둠처럼 침묵은 그렇게 한정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소리가 사라진 정적의 공간 속으로 한가로운 햇살만 넘실대는 바깥 풍경을 나는 그렇게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소리를 완전히 지운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에서 눈을 뗀 나는 '이 더위가 언제까지 갈런지 원...' 하는 현실적인 걱정을 이끌어냈던 것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주의보와 오존주의보 그리고 인적이 끊긴 보도.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걸렀지만 주말 휴일의 허기는 언제나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쉬는 날이면 나는 마음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향해 하루에도 수십 번 달음박질치는 까닭에 육체의 허기는 잠시 잊혀지는 어떤 것이 되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은 일견 기쁘면서도 씁쓸한 것이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를 향해 내가 느꼈던 양가감정은 나로서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묘한 일이었고, 그래서 다시 집어든 책이 <희랍어 시간>이었습니다. 책에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語을 잃은 여자가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희랍어 시간은 상실의 고통과 기억을 지닌 그들만의 공간인 셈이었습니다. 정교한 언어이지만 문법적 복잡성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간 언어, 더이상 언어로서의 최소한의 기능마저 상실한 희랍어는 소설 속 남녀 주인공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남자는 희랍어 강사로 여자는 희랍어를 배우는 학생으로 만납니다. 대학이나 학원에 개설된 희랍어 강의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아카데미 중 하나였습니다.   과거와 멀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과거의 기억은 우리가 어떤 것을 잃음으로써 다른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통념과는 사뭇 배치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원하지도 않았던 기억 한 줌을 손에 쥐었다는 건 이론상으로 맞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p.120~p.121)

 

십대 중반의 나이에 가족 전체가 독일로 떠났던 남자는 언어와 문화가 두 동강이 난 채 그곳에서 살다가 십수 년 만에 혼자 귀국하여 아카데미에서 희랍어를 가르치며 삽니다. 부계 유전에 따라 독일에서 그는 이미 마흔 이후에는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귀국을 결심한 남자를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떠나기 전부터 걱정했습니다. 남자는 독일에서의 청소년기를 지극히 외롭게 보냈습니다. 아시아계 이방인이라는 것에 더하여 그의 내성적인 성격이 만들어 낸 결과였습니다. 남자의 이야기는 청소년기에 그가 사귀었던 두 사람(그의 첫사랑이었던 농아 여인과 유일한 독일 친구이자 그를 사랑했던 요하임 그룬델-그는 이미 사망했다)과 여동생 란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p.39)

 

열입곱 살 때 처음 실어증을 앓았던 여자는 그때 우연히 배운 불어 단어로 인해 다시 말을 찾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와 편집대행사에서 일했고, 대학과 예술고등학교에서 문학 강의를 했고, 시집 세 권을 냈고, 칼럼을 쓰며 문화잡지 창간 멤버로 활동했던 여자는 반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수년 전에 이혼했고,  소송 끝에 아홉 살 난 아들의 양육권마저 잃고, 아들을 못 만난 지 오 개월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20년만에 다시 찾아온 실어증을 극복하기 위해 희랍어를 배웁니다. 어머니를 추모하며 늘 검정 옷을 입고, 아들이 없는 집에서의 불면의 밤을 두려워하여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걷는 여자는 희랍어 수업에 나가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 날 건물 안으로 날아든 박새를 내쫓으려다 남자는 계단에서 굴러 상처를 입고 안경마저 부서져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부축해 함께 병원엘 가고 남자의 집까지 데려다 줍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마치 독백을 하듯 가만가만 들려주고 여자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로 인해 오랫동안 굳어 있던 마음에 따스한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p.174)

 

소설에 등장하는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상실해가는 남자와, 청각을 잃었던 남자의 첫사랑과, 일찍 세상을 떠난 사춘기 시절 남자의 독일인 친구는 모두 자신이 소유했던 무엇인가를 내어주고 끝내 다시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작가는 어쩌면 삶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이 비록 각자가 소유하는 시간은 다를지라도 시간이라는 블랙홀에 결국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아프게 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을, 그리고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들마저도 결국에는 시간의 소멸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시력도, 청력도, 말語도 사람에 따라 임대 기간은 서로 다를지언정 얼굴도 모르는 주인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같은 처지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이라는 임대하우스에 잠시 세 들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런게 있기나 할런지요. 곧 있으면 저녁 어스름이 내릴 시간입니다. 빛이 소멸하는 시간이지요. 애초에 내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섭섭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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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온두라스와의 축구 8강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잘 싸우고도 졌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나 하나 다행인 것은 지난 런던 올림픽에 비해 응원 열기가 덜하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좋지 않고, 한 달 이상 지속되는 폭염에 몸도 마음도 지친 탓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우리 대표팀이 졌다는 소식에도, 또는 이겼다는 소식에도 그저 시큰둥할 뿐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말이지요. 이따금 올림픽 소식을 흥분해서 전하는 사람만 머쓱해지곤 하지요. 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기 후반전 온두라스의 역습에 의해 한 골을 먹자마자 '흠, 졌군.' 하며 당연하다는 듯 TV를 껐습니다.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데 스포츠에 목을 맨다는 것은 유행에 뒤떨어진 모습이겠지요.

 

가뜩이나 더운데 이런 소식은 어떨까요? 소식을 들으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고 열불이 나겠지만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다 생각하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송로버섯'이 떴기에 뭔가 싶어서 열어보았지 뭡니까. 그랬더니 글쎄 지난 11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새 지도부의 청와대 오찬 메뉴가 보이더군요. 오찬 메뉴에는 그 비싸다는 송로버섯과 캐비어가 올랐다고 합니다. 모임 참석자들은 음식을 쳐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원 깎아 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고 말이지요.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고작 몇 천원 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라고 썼다더군요. "우리가 본 것은, 민심의 강 건너에 있는 궁전의 식탁이었다."고 점잖게 말한 정치 평론가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떠셨나요? 이열치열의 효과가 있었나요? 현 정권 들어 계속 열받는 기사만 읽어 온 터라 이제는 그 정도의 기사로는 열도 받지 않는다구요? 흠...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음주부터는 폭염의 열기가 한풀 꺾인다고 들었는데 그 예보가 혹시 또 오보가 되어 사람들의 화를 돋구지나 않을지 심히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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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8-1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 받아봐야 나만 손해지요~말 그대로 ˝서민˝은 그저 몇천원에 벌벌 떠는 존재 아니겠어요. 그들 입장에선 크게 더운 날씨도 아닌데 ˝거참 찡찡대네 옛다 사탕!˝ 입에 물어준 셈이지요.

꼼쥐 2016-08-18 14:27   좋아요 0 | URL
전기요금 고지서가 발송되는 요즘, 전기요금 폭탄이 현실로 체감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말입니다.

2016-08-14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8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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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부지런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자랑같지만 정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지만 일단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려 하지 않는다. 재차 고집스럽게 우기는 것이다. 마치 우기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럴라치면 나는 '내가 정말 그런가?' 곰곰 생각해보곤 한다. 정말 그럴까?

 

'부지런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좋아하여 열정을 갖고 임한다'를 달리 표현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자신을 꾸미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여 밤잠을 줄여가며 동대문 상가 새벽시장에 나간다거나 별을 관찰하는 걸 즐겨 하여 매주 토요일마다 천문대를 찾는다거나 산새 소리를 들으려고 아침마다 산에 오른다거나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아, 그렇구나!' 하고 감탄까지는 아니어도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밤이고 낮이고 밭에 나가시는 어머니는?'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이 있을까봐 하는 말이지만 어머니는 농사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거두는 일을 좋아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가꾸고 키운 곡식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입히고 먹이는 게 무엇보다 좋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이따금 착각하는 이유는 대상을 잘못 짚는 데 있다. 우리 어머니는 농사일을 정말 좋아하셔, 라고 말하는 불효막심의 자식이 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제2탄(속편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허구한 날 책을 사대면서도 나는 매번 비슷한 이유의 핑계를 대곤 한다. 이제는 질릴 만도 한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웅현의 책을 읽고 공감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깊이 있는 독서 습관에 있을 텐데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읽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치 입에 든 음식을 씹는 것처럼 꼭꼭 씹어 삼킨다. 바쁜 현대인들의 방식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게다가 자신이 읽은 책의 권수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게 좋은 것이다.

 

"1강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구절을 깨우치는 것은요, 그저 읽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아는 것과 느낀 것은 달라요. 제가 앞서서 불혹이라는 단어를 느꼈다고 말씀드렸지요. 정말 피부로 느꼈어요. 그런데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은 못 느꼈어요. 이 깨달음이 한꺼번에 오진 않겠죠.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아, 이거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다음엔 비로소 내 몸의 일부가 되겠죠."    (p.117)

 

전편을 읽어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이 깨달았던 것들, 이른바 삶의 태도나 창의력 등에 중점을 두고 말하였지만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그가 선택한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마치 현미경을 통하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어떤 것들을 새로이 발견하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나는 저자가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선택한 책이 다양한 장르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1강에서 쇼펜하우어의 '문장론'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라는 쉽지 않은 책을 선보이더니 2강에서는 '곽재구의 포구 기행', '길귀신의 노래'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법인 스님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등 다소 부드럽고 문학적인 책들을 선택함으로써 1강에서 경직되었던 사고의 틀을 2강에서는 다시 노곤노곤하게 만든다. 이렇게 8강까지 이어진다. 8강에서는 그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룬다.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해 말하는 4강도 좋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다룬 5강이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해변을 가만히 산책하다가 어느 순간 아주 행복해졌어요. 영적인 순간 같았죠. 완벽했어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었고,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었어요. 그거 같아요. 순간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순간 자체가 완벽해야 해요.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하죠. 어차피 부족함이 있는 상태에서 원하는 것들은 비합리적인 것들일 가능성이 커요. 지금보다 젊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잘났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들 처럼요. 그런 마음을 정리하면 어느 순간 바라는 것 없이 완벽한 순간이 옵니다. 희망을 극복하면 만날 수 있는 순간이지요. '희망의 극복'이라는 말, 이 또한 카잔차키스입니다. 희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봤다는 것은 순간에 온전하겠다는 의지예요."     (p.210~p.211)

 

오늘 아침에도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올랐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은은히 전해져 오는 솔향기와 온 산으로 울려퍼지는 매미 소리와 사색에 빠져들수록 더욱 고즈넉해지는 숲의 적막감. 나는 그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흐트러진 마음과 흐트러지려는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약간의 시차와 메울 수 없는 그 틈새를 뚫고 샘물처럼 솟아나는 생각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면 듬성듬성 내 마음의 틈새가 메꾸어지는 듯 보이고 어느 정도 내 실존에 대해 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현재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한 듯 보였다. 그리고 내 속에 존재하는 희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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