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난다. 경상도 사투리를 어찌나 심하게 쓰시던지 때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쳇말로 인정만큼은 '갑'이었던 분이다. 언젠가 내가 하루 종일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딸꾹 딸꾹' 하면서 돌아다니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머슬 딸가닥 혼자 훔쳐 묵었노?" 하시면서 나를 조용히 불러 식혜 한 사발과 함께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셨다.

 

어제 오후에 폭염을 뚫고 외출을 했던 나는 두어 시간 동안 원치도 않던 딸꾹질에 시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어떤 맛잇는 걸 혼자 훔쳐 먹었느냐?' 물어왔다.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이웃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무얼 그리 허겁지겁 훔쳐 먹었던 걸까?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나섰던 외출. 말매미 울음 소리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거리에는 여름 햇살만 가득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훔쳐 먹은 게 하나 있긴 하다. 내것이 아니라고 나는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는지도 모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무엇 하나 그른 게 없다. 양잿물은 마신 적 없지만 길에 넘쳐나는 오존을 욕심껏 들이켰던 듯하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생각지 않고 너무 많이 마신 게 아니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슬몃 들었다. 양심도 없는 짓이었다.

 

오늘도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거리에는 뜨거운 햇살이 넘실대고, 오가는 행인들을 위해 쉼없이 오존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찌 고맙지 않으랴! 국민들 배 곯지 말라고, 혹시나 세균에 감염되지나 않을까 강력한 소독 효과가 있는 오존을 국민들 몰래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 정부는 자신들의 공을 너무나 많이 감추는 게 아닌가. 우리가 국민들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했소, 알린다고 해서 누가 뭐랄 것도 아니고 국민들은 오히려 고맙고 황송해 할 텐데 말이다. 겸손함만으로 따진다면 역대 최강의 정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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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너무 무능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그 혜택이 부정적인 것이 그렇습니다만...

꼼쥐 2016-08-21 11:00   좋아요 1 | URL
현 정부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혜택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국민들 배고플까봐 미세먼지도 주고, 불법으로 축재하는 방법을 국민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민정수석을 본보기로 보이기도 하고... 정부는 온통 국민들 생각뿐이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