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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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 하면 많은 사람들이 1순위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교회의 몰락'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개신교의 몰락일 수도 있고, 목사로 지칭되는 개신교의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그들의 세속화에 대한 염증쯤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그와 같은 현상이 유독 대한민국에서 크게 불거졌던 데는 공동체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일상화된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이 크게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교회를 중심으로 외부인에 대한 배타성과 그들만의 폐쇄성이 상존하는 교회의 태도가 코로나 시국에 무척이나 이기적으로 보였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테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 온라인 예배를 강조했던 정부 방침을 무시하면서 대면 예배를 강행했던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대규모 확진자가 연일 발생했던 것은 물론 그와 같은 사태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주변의 상인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주민들도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으니 교회를 좋게 볼 수만은 없었던 게 사실. 지금 당장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안녕을 도외시한 일부 교회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싶다. '교회는 다 그렇다'는 식의 일반화는 건전한 교회마저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마저 약화시킨다. 하기야 황금만능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팽배한 21세기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신의 권능보다는 돈의 위력이 이를 완전히 대체하였다는 시각이 우세한데 종교가 무슨 필요이고, 믿음이 뭔 소용이겠나.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고, 절대자를 찾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믿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함께 그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는 더욱 절실해지지 않았을까.

 

"희망과 기대감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 삶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내일의 천국을 이야기하는 종교가 지금 우리의 삶이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가 헛된 희망과 거짓된 기대로 과대 포장한 선물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종교인들이 스스로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불안한 인간 존재에게 신실하고 진실한 말과 행동으로써 희망의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p.15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에서)

 

<라틴어 수업>으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한동일의 신작 에세이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어쩌면 성직자 신분인 저자가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참회의 기록인 동시에 자신과 종교가 다른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공존의 악수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20, 30대의 탈脫종교 현상은 종교 인구의 고령화와 전체 종교 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통계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 마당에 종교인이 나서서 자신들이 믿는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옳지 않다고 한다거나 비종교인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종교는 어쩌면 설 자리를 잃고 소멸할지도 모른다. 한동일 저자 역시 그와 같은 긴박한 심정에서 이 책을 구상했을 터, 저자의 경험과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낸 이 책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고통은 인간 사회가 만들어 온 구조적인 문제가 그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 탓에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사라진 사회에서 이웃끼리 서로 고통을 주고받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나 내가 믿는 종교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나와 종교가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비난하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그를 구제해야 할 죄인으로 보며 다가가지 않아야 합니다."  (p.242)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예루살렘에서 한 달간 머물렀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도 하고,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코로나 정국을 통과하면서 종교인이 취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자유'에만 큰 방점을 찍고 행동한다면 사회나 이웃과 불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을 믿고 그 뜻을 따라 살고자 한다면, 나와 내가 속한 종교 공동체의 행동이 이웃에게 고통을 주거나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더 나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p.137)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한 저자의 말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곱씹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비단 믿는 자들에 대하여 던지는 말은 아니었을 터,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의 그와 같은 거룩한 모습을 여러 번 반복하여 보면 볼수록 돈과 신이 경쟁하는 작금의 사태는 조금씩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믿는 자들이 나서서 희망이 없는 시대에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종교 무용론이 발붙일 자리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냉담자가 냉담을 풀고 성당의 주일 미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믿는 자들의 올바른 태도일 터, 중언부언 변명 같지 않은 변명으로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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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 책 속의 한 줄을 통한 백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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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혹은 하나의 이미지가 발목을 붙잡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혹은 문장이 또는 이미지가 지나온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게 만들고 뜨겁기만 하던 열정을 한순간에 얼어붙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이토록 달려왔던 것인가?' 하는 회의가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차올라 손가락 하나 굼적거리기 싫어지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가. 차갑게 식은 가슴은 무엇으로 데울 수 있을까.

 

"우리는 항상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삶의 일부다. 당신의 상황에 책임이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불행을 책임질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다. 왜냐면 살면서 맞닥뜨리는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건 언제나 당신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평가할 기준을 선택하는 건 언제나 당신이다."  (p.189 '마크멘슨, <신경 끄기의 기술>)

 

인문학자 김태현의 저서 <백 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은 14개의 파트에 그에 알맞은 다양한 책의 명구를 옮겨 적어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한 명언집이다. 저자가 나눈 파트의 소제목만 찬찬히 살펴보아도 삶의 갈림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고민과 갈등의 순간들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Part 1. '좀 더 느리게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 Part 2. '버림을 통해 채움을 얻는 방법', Part 3.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책 속의 한 줄들', Part 4. '픽션으로 세상을 보다', Part 5. '역사도 인생도 똑같이 반복한다', Part 6. '미래를 움직이는 인문학', Part 7. '꿈과 목표는 어떻게 인생을 바꾸나', Part 8. '나의 시간을 내가 지배하는 법', Part 9. '미래와 미경험의 세계를 도전하는 힘', Part 10. '인생의 안목과 센스를 기르는 방법', Part 11. '인간관계에도 정답이 있다면', Part 12. '0.1% 탁월한 사람들의 인사이트', Part 13. '돈의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부자들의 비밀', Part 14. '천재들은 어떻게 사고하는가'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이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부(冨)를 염두에 두고 책의 구성을 꾀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돈 문제는 재무관리가 아닌 역사와 심리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장 크게 성공한 투자자, 가장 크게 파산한 투자자 모두를 만나고 깨달은 한 가지는 진정으로 부를 이해하고 부를 얻고 싶다면 인간의 심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312 '모건하우절, <돈의 심리학>')

 

목차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저자의 관심이 오직 '돈과 성공'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나 어떻게 하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든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 등 우리의 삶 전반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저자 스스가 읽었던 책 속에서 찾은 명쾌한 해답들을 독자들에게 펼쳐 보임으로써 삶이 처음인 우리 모두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고 하겠다.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멀어진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호감을 갖고, 당신에게 자꾸만 다가서고자 하는 건, 당신 또한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P.279 '레일라운즈 <사람을 얻는 기술>')

 

사실 이와 같은 책 속 명언이나 아포리즘을 모아 엮은 책은 독자들에게 그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 하나의 문장만 발췌한 것이기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이 그 많은 책을 일삼아 읽는다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이처럼 한 권의 책에서 여러 사상가나 인문학자, 성공한 사업가 등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경구 혹은 지침을 통해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삶의 정수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더없이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갖는다는 것, 아니 나이가 든 까닭에 젊은이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품는다는 건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바른 자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전보다 육체적으로 쇠약해졌다는 이유로 우리들 각자는 시나브로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현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이미지가 나의 발목을 잡는 장애 요인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를 북돋우는 원동력이 될 수만 있다면 휴일 하루를 반납한 채 기꺼이 이 한 권의 책을 읽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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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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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캐럴라인 냅의 작품에 매료된다는 건 스스로의 내면을 드러내고픈 욕구, 이를테면 자신에게 덧씌워진 가면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겠다는 선언 내지는 그러고자 하는 갈망이나 욕구의 또 다른 징후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욕구의 밑바탕에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깨를 움츠리고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불안, 혹은 현대인의 위축된 자아가 맞닿아 있다. 자신을 숨김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과 편리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우리는 타인이 그려준 나의 모습이 마치 나의 실체인 양 착각하며 평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알고 있는 공개된 버전의 캐럴라인과 사적이고 개인적인 캐럴라인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용감하고 웃기고 심리적으로 예리하고 표현력이 좋으며 다른 사람들이라면 두려워하며 달아났을 법한 감정적 솔직함의 길로 기꺼이 들어서는 사람."  (p.10 작가 게일 콜드웰의 '서문')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솔직하고도 유려한 필체로 써내려간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았던 작가는 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이 책을 탈고하였고, 그녀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물론 작가의 유작 에세이집 <명랑한 은둔자>를 읽어본 독자라면 그녀의 암울했던 삶에 비해 작품에서 풍기는 긍정적 마인드가 마치 보색 대비처럼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와 솔직함이 빚어내는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로 인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쉽게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한아름 선물 받는 듯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음식, 섹스, 쇼핑. 당신의 독이 무엇인지 불러보라. 욕구, 특히 여자들이 경험하는 욕구는 으스스할 정도로 변신에 능하고 외적인 것들에 요령 좋게 찰싹 달라붙는다. 한 전투가 다음 전투로 이어지고, 어떤 약속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또 다른 약속이 빛을 발하며 지평선 위로 솟아올라 별처럼 신호를 보낸다."  (p.31 '서문' 중에서)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 2장 '어머니와의 관계', 3장 '내 배가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 4장 '브라 태우기에서 폭풍 쇼핑으로', 5장 '목소리가 된 몸', 6장 '희망을 향해 헤엄치기'의 소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성의 불안과 욕망,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육체 혐오, 페미니즘과 소비문화, 공허함과 갈망 저변에 깔린 슬픔 등을 분석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방식은 결국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 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인간 허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 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억제의 상자들을 조각조각 박살 낼 수 있는 도구는, 공허함을 산산조각 내고 그 밑에 묻혀 있는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p.357)

 

작가는 여성의 몸이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이는 사회 환경에 따라 여성이 자신에 대한 시각, 자기 몸과 맺는 관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몸에 대해 간과함으로써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관련된 여러 욕구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페미니즘 운동이 밀물과 썰물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될 때 여성은 육체적으로 조금 자유로워지거나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과 마음 저변에 깔린 욕구의 원인과 형태를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통제와 억압 속에서 평생을 허비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나 분석 혹은 묘사가 이 책의 장점일 수는 있으나, 무엇보다도 책이 주는 재미와 적절한 유머, 솔직함에서 오는 시원시원한 느낌이 독자인 내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던 이유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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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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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라는 게 원한다고 언제든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지만 평화를 깨는 불협화음의 주요 원인이 과거의 기억이라면 우리는 과연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없앨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개인의 기억이라는 게 개인을 대표하는 정체성인 동시에 삶의 총체인 까닭이다. 단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발적 치매를 얻는 꼴인데 누군들 이 선택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삶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가와 요코의 초기작 <은밀한 결정>은 사물의 존재와 기억이 주기적으로 사라져가는 미지의 섬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섬에서는 주기적으로 '소멸'이 일어난다. 섬의 주민들은 '소멸'과 함께 관련된 기억을 모두 잃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밀경찰에 끌려가곤 한다. 소설가였던 '나'의 어머니 역시 기억을 잃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이미 소멸한 물건을 지하 서랍장에 숨겨두고서 나에게만 남몰래 보여주거나 어떤 물건인지 설명해주곤 했다. 어느 날 비밀경찰에 불려 갔던 어머니가 시신으로 돌아온 후 들새 연구가였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나'는 가정부 할머니의 남편이자 페리 정비사였던 할아버지와 가족처럼 지내며 살고 있다.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색깔의 새와 장미정원의 꽃,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하나둘 소멸해가는 속에서도 '나'는 그와 같은 상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담담한 생활을 이어간다.

 

"저도 기억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허사였어요. 도무지 기억이 안 나요. 어머니의 표정이나 목소리, 지하실 공기의 감촉은 선명한데, 서랍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전부 흐릿해져버렸어요. 그 부분만 기억의 윤곽이 녹아버린 것처럼."  (p.81)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나'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평가해주는 담당 편집자인 R씨 역시 소멸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할아버지와 합심하여 집안에 작은 은신처를 마련하고 그를 숨긴다. 언젠가 R씨처럼 기억을 잃지 않은 사람도 숨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비밀경찰의 기억 사냥은 날로 심해져만 가고, 달력이 소멸한 탓에 추운 겨울이 끝없이 이어졌다. 섬에는 식량과 물자가 점점 부족해지고, 소설마저 소멸하면서 '나'는 메울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소멸해버린 것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신경의 일부분을 혹사해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언짢지 않았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선명한 영상으로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크게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다. 어릴 적 지하실에서 어머니와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때처럼 나는 그저 천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신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초콜릿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내려고 치맛자락을 펼친 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p.294)

 

소설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 지진과 해일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자연재해, 테러, 전염병 등 예상할 수 없는 위기가 수시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 돌볼 뿐 이웃, 국민, 나아가 지구인의 안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이기심은 증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동정심 등 인간 본연의 심성은 점차 소멸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인간성을 지키며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체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이 소멸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먼 길을 돌아서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진이 나고, 페리가 가라앉고, 이누이 씨가 맡긴 조각품이 부서지고, 그 안에서 '물건'이 나타나고, 별장에 조각품을 가지러 가고, 검문을 당하고, 할아버지가 죽었다. 하나하나의 사건은 전부 우연에 좌우된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섬사람들 모두 어렴풋이 예감하면서도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달아나려고 발버둥치지도 않았다. 다들 소멸의 성질을 잘 이해했으며, 가장 적절한 대응법을 알고 있었다."  (p.360~p.361)

 

햇수로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그저 온라인으로만 물을 뿐 만남도, 서로를 향한 토닥임도, 기쁨이나 슬픔의 언어도 점차 그 횟수를 줄여가고 있다. 오직 침묵만이 우리네 삶의 영역을 조금씩 잠식하며 친밀함이 주던 과거의 숱한 경험과 그 기억의 따스한 온기를 잊게 하고 있다. 비대면의 편리가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이미 우리들 곁에 자리를 잡은 채 도무지 비켜줄 의사가 없다는 듯 완강한 모습.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는가. 밖에는 눈발이 날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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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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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254억을 부과받았던 모 그룹의 회장이 납부 대신 노역을 선택함으로써 일당 5억 원의 소위 '황제노역' 논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하루 노동의 대가를 10만 원으로 정하는 일반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일당인 셈인데 2014년 4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액 벌금을 단기의 노역장 유치로 무력화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지금은 고액 벌금형 선고 시 환형유치기간의 하한을 정하는 조항이 신설되어 어느 정도 형평성을 맞추려는 노력이 개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노역장 유치 기간의 상한을 3년으로 정한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어 '황제노역'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따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나처럼 고급 인력을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나?" 하며 툴툴대기도 한다. 사람의 일당이 이처럼 천차만별인 것처럼 우리의 생명 역시 누군가에 의해 천차만별의 가격표가 매겨지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두루 이용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얼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이도 드물지 싶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 가격표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매겨지고 있다. 혹자는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며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철학적 관점일 뿐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의 생명에 수시로 가격을 매기고 나 역시 타인에 의해 그리 평가된다는 것을 인지하여야만 한다. 지난 일이지만 군대 물품을 조달하는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하였던 나는 갓 전입한 이등병 시기에 사망한 군인을 처리하는 영현 처리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일반 사병의 영현 처리비(일명 몸값)는 13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와 선임들은 사람의 몸값이 갯값만도 못하다며 혀를 끌끌 찼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해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에는 매일같이, 끊임없이 가격표가 부여된다.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p.277)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 가격표>는 '인간 생명의 가치 측정'이라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핵심 문제를 파고든다. 유엔인구기금에서 유엔 주요 사업의 수석 데이터모델러를 맡아 왔던 저자는 생명 가격표가 불공정할 때가 많고 젠더, 인종, 민족, 문화적 편견 등이 작용하며 노인보다는 젊은이, 빈자보다는 부자, 외국인보다는 내국인, 타인보다는 가족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지곤 하는 까닭에 낮은 가격이 매겨진 사람들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에서 돈과 시간이 어떻게 교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보상은 생명 가격표에 관한 논의에 매우 중요하다. 소득이 민사소송에서 생명에 책정되는 금전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9.11 희생자 보상 기금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137)

 

우리 사회에서 종종 불거지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 역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 가격표가 다라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그것이 곧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 가격표의 최상단에 위치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수명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환경에서 적용되며 이것을 피할 방법도 딱히 없다.

 

"관념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 가치 평가 방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명백한 해답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Isaiah Berlin)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불멸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깊고 형이상학적인 불치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는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에 가치를 매기는 일에도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있다. 그리고 명확한 정답도 없다."  (p.265)

 

우리는 이따금 생명의 가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치환하곤 한다. 최근 아동 성범죄를 저질러 12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조 모씨의 집에 잠입하여 조 씨를 피습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의 범행을 생각할 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테고,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사적 구제를 하는 건 잘못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한 인간 생명에 대한 가격표 역시 다양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간다/그러니까 사람이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의 생명에 다양한 가격표를 매기는 불합리한 행위를 시시각각 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그러니까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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