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보는 바깥 날씨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과 풍요로운 햇살. 코트를 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을 듯한 날씨인데 막상 나가 보면 딴판이다. 저절로 옷깃이 여며지고 코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게 된다. 보는 것과 체감하는 것은 이토록 다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된 후 만날 수 있는 친인척을 더러 만나게 된다. 전염력 강한 오미크론의 여파로 직접적인 대면은 다들 부담스러운 듯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보자'는 말로 에둘러 거절하기 일쑤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관계도 더러 있게 마련, 시간을 내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게 된다.

 

세배를 하고 간단한 차와 다과를 나누며 그간의 사정을 묻고 안부를 확인하는 게 전부이지만, 그마저도 생략하면 언제 다시 얼굴을 보고 손 한 번 잡아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것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긴 연휴 동안 집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 본들 늘어난 체중과 나른한 피로만 남을 게 뻔한지라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 싶은 것이다. 몸은 조금 고될지라도 말이다.

 

대선이 멀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그의 장점을 설파하려 든다. 그러나 그 이면을 파고들어 보면 자신의 이익이 후보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집값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시세가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고, 종부세 대상도 아니면서 세금이 너무 높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대 포장하기도 하고,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아무개 후보가 제일 낫다고 판단하면서도 실제로 자신이 아무개 후보를 지지하는 건 단순히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말뿐인 애국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쟁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 사는가?' 하는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어떤 후보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시세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지지 기준의 1순위가 된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에게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살다 죽으면 이 집은 다 아들에게 갈 텐데 집값이 안 떨어지면 나도 좋고 아들도 좋지 뭐 그게 어때서 그래? 하고 반박하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게 된다면 아들은 어쩌면 수십 년을 난민처럼 떠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도 죄책감이라곤 조금도 없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이란 그저 거주의 공간일 뿐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길이 막히다 보니 외국에 사는 친구들이나 친인척을 만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전화나 sns를 통해 겨우 소식을 전할 뿐이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대선에 꽤나 관심이 많은지 자국에서 보도되는 언론을 통해 접하는 소식을 나에게 확인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무속 신앙에 심취한 야당 후보의 부인과 후보 본인의 무속 논란에 대해 나에게 물어왔다.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대한민국의 국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며 각종 여론 조사의 조사가 잘못된 게 아닌지 따져 물었다. 내가 여론 조사기관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니 조사 방법이나 조사 시간 등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었지만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사람들에게 실망하다 보니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적어도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루가 이렇게나 빨리 스러지는 걸 보니 휴일은 휴일인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 되는 일이 없을 때 읽으면 용기가 되는 이야기
하주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읽는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이 성공담이나 성공 노하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렇다. 오히려 저자 자신의 실패담이나 실패로부터 깨우친 것을 책으로 엮었을 때,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은 소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학 장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쁨보다는 슬픔,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 성공보다는 실패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에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기저에는 우리 삶의 근본 원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듯 보인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삶은 실패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인간적 성숙을 이룬 영웅담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조차도 실패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실패담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다른 분야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인 까닭에 다른 여러 분야의 측면에서는 역시 실패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본인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성공한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까닭에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기준은 자신의 삶을 다른 어떤 것과 견주어 비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자신의 삶에 무리한 욕심을 낸 까닭에 이 분야에 조금, 저 분야에 또 조금의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것은 실패담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이의 삶을 기웃대지만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쉽게 말하는 '할 수 없는 이유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유들'로 바꾸어 가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니까. 언젠가 희망 없이 털썩 주저앉아 있을 때 내 이야기를 떠올리며 의지와 희망으로 툭툭 털고 일어난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p.19 '프롤로그' 중에서)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를 쓴 하주현 역시 다른 이의 삶을 기웃대거나 자신이 선택한 삶을 후회하지 않은 채 오직 외길을 향해 달려온 케이스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삶을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스스로는 극구 부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혹은 저자 스스로가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실패담이 되고 만다.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하는 비교의 기준(예컨대 재산이나 명성, 권력 등)으로 보더라도 그녀의 삶은 특별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에는 쥐도 많았다. 그것도 슈퍼 사이즈의 쥐! 이곳 바퀴벌레와 쥐는 모두 슈퍼 사이즈였다. 새벽에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일어나면 쥐가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당당해서 오히려 쥐가 사는 집에 내가 얹혀사는 기분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그리는 밝은 뉴욕의 뒤에는 늘 어둠이 깔려 있었다."  (p.129)


저자의 이력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코넬 대학교에서 호텔과 레스토랑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포시즌스 호텔 뉴욕, 리츠칼튼 호텔 서울, 미국 플로리다, 펜타곤 시티, 호주 시드니와 미슐랭 3스타 쉐프들의 레스토랑 뉴욕 다니엘, 르 버나딘,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프랑스 식료품 브랜드 포숑의 한국 디렉터, 2015년 신세계 그룹 신세계 푸드 외식 팀 영업팀장과 레스케이프 호텔 식음 팀장을 거쳤다고 하니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녀의 출신 배경이 '금수저'려니 착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국내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 기업을 아우르며 말단 직원에서부터 임원, 그리고 조그만 베이커리의 오너까지 차근차근 성장했다. 다양한 위치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 다시 지나간 시간이 주어진다면 좀 더 잘 준비해서 더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내 인생을 뒤로 되돌릴 순 없다. 대신 후배들이 지나간 나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들의 방식대로 젊음과 열정적인 삶을 잘 써내려 가길 바란다.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p.226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하주현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기적처럼 일구어낸 작은 성취들을 기록한 이 책,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는 자기계발서라기엔 다분히 문학적이며 가독력이 높고, 삶에 지친 이들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선 수준 높은 자기계발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저자의 삶 역시 누구나가 넘볼 수 있는 평범한 분야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결코 저자의 성취를 폄훼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노력이나 열정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섞인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삶이 이룩한 성취가 어떻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다른 분야를 기웃대지만 않는다면 그러한 삶을 사는 모든 이의 삶이 성공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저자 하주현의 삶이 성공담이듯 나와 우리 모두의 삶이 성공담으로 평가될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절이 코앞이라 그런지 때 아닌 복고 바람이 거셉니다. 토속 신앙이랄 수도 있고, 미신이랄 수도 있는 이 전통은 야당의 대선 후보 또는 그 부인에 의해 작금의 유행이 촉발된 듯한데 제 주변에서도 온통 난리입니다. 용하다는 점집을 묻는 사람들이며, 신년 액막이를 하기 위해 굿을 하려는데 그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묻는 사람 등 잊혀가던 무속신앙이 21세기 대한민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운세와 함께 코로나19의 종식이 언제쯤 가능할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갑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하다는 '거니 도사'를 만날 방법은 없고, 도력은 그만 못하지만 차선책으로 건진법사나 해우스님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군요. 어릴 적 만화영화에서 만났던 무도사, 배추도사에 이어 건진법사까지 합쳐 놓으면 올해 김장은 걱정이 없을 듯합니다. 하나 아쉬운 건 건진법사 앞에 절임도사 한 명쯤 끼워넣어도 참 좋겠지만 말입니다.

 

저의 초등학교 친구 한 명도 서울의 모 여대 근처에서 전통 무속신앙(소위 점집)을 지켜나가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직업군인이었던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군에서 제대한 후 점집을 차렸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지라 뭐라 조언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놀랐던 건 사실입니다. 복비라도 들고 점을 보러 갈까, 하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하다가도 나의 어릴 적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친구에게 점을 본다는 건 이 업계의 규정상 도리에 맞지 않는 듯하여 그만두었습니다. 야당의 대선 후보 역시 자신의 장모를 재판하는 판사가 그와 사법연수원 동기로 각별한 사인인데도 기피신청을 하지 않아 욕을 먹는 것처럼 저와 초등학교 친구인 '00 거사'는 각별한 사이임에도 기피신청을 하지 않고 점을 본다는 건 욕을 먹어 마땅한 일이겠지요.

 

이제 보니 또 한 명의 친구가 무속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친구는 무제한급 유도선수였는데 하라는 동계훈련은 하지 않고 산에 들어가 풍수지리학을 연마하던 친구는 그 후 속세에 나와 가엾은 중생들을 인도하며 부산에서 전통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친구의 고향도 강원도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야당 대선후보의 멘토라는 무정 스님과도 친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에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정중히 물어봐야겠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라는데 영험하다는 '거니 도사'는 자신이 청와대에 입성하여 영빈관도 옮기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굿이라도 한판 벌일지 모르겠습니다. '거니 도사'가 주관하는 천도제가 열리기만 한다면 저도 돼지머리에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넣을 요량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테레사 2022-01-2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아아..우주선발사 성공이니 뭐니 하는 시대에 이게 무슨 선사시대도 아니고 ㅜ

꼼쥐 2022-01-28 16:0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재미 삼아 점을 보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마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와 그의 부인이 전적으로 무속신앙에 의존한다는 게 참 어처구니없습니다.
 
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어깨가 움츠러드는 긴장감에 휩싸이곤 한다. 책으로 출간되어 읽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락된 일기이든 개인의 사적 비밀이 담긴, 책상 서랍에 꽁꽁 숨겨둔 비밀 일기이든 가리지 않고 일기라는 이름이 달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학창 시절, 형이나 누나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다 들켜서 죽지 않을 만큼 혼쭐이 났던 경험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주눅 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내용 위주로 후다닥 읽는 것은 물론 한두 줄의 중요 문장만 머릿속에 기억한 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지런히 두고 조용히 물러나는 걸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황정은 작가의 『일기日記』를 책으로 읽으면서도 나는 내내 주변의 눈치를 살폈고, 금방이라도 누군가 내 방문을 왈칵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책을 읽었으면서도 말이다. 이러한 긴장감으로 인해 눈을 통해 들어온 문장은 뇌를 통해 쉽게 이해되거나 기억되지 않았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몰래 훔쳐 읽는 것만 같았고, 꽁꽁 숨겨둬야 할 이야기들을 나만 알고 있는 듯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나와 동거인의 나이를 잘 세지 않는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p.32)

 

내가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아마도 <百의 그림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의 나는 박민규 작가의 <핑퐁>이나 <카스테라>, 천명관 작가의 <고래>처럼 문체가 특이하거나 창의성이 뛰어난 작품들에 열광하고 있던 터라 황정은 작가의 <百의 그림자> 역시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디디의 우산>이나 <연년세세>도 출간과 동시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황정은이라는 이름 석자만 기억할 뿐 그녀에 대해 도통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소설 잘 쓰는 작가일 뿐.

 

첫 장인「일기日記」와 그다음 장인 「일 년一年」은 파주로 이사한 작가의 달라진 일상과 코로나19로 인한 주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의중앙선 너머로 호수공원이 보이는, 직선거리로는 15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어 1킬로미터를 걸어야 호수공원의 일부인 소리천에 다다를 수 있는 곳이란다. 작가는 원고노동자로서 몸을 관리하기 위해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는 등 몸을 지키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쓰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며 집앞 공터인 '반달터'를 지켜보았고, 우주를 상상하기도 하고, '명命을 지닌 존재들의' 안녕을 빌기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p.41)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과 「민요상 책꽂이」에는 어린 조카들에 대한 이야기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빨강머리 앤」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평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목포행木浦行」은 2017년 이후 매년 목포신항을 방문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산보」는 작가가 돌보는 화분들과 걷기에 관한 이야기를, 쿠키를 먹는 것처러 읽을 수 있는 일기를 목적하고 썼다는 「쿠키 일기」, 그리고 「고사리를 말리려고」와 「흔痕」에는 작가의 과거가 담겨 있다. 작가의 아픈 과거를 읽다 보면 공감할 수 잇는 아픔 한 자락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일기日記'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p.197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살금살금 겨울비가 내렸다. 점심을 먹고 조심스레 빗길을 걸었다. 먼짓내가 사라진 가까운 공원의 풍경을 눈에 넣으며 나는 누군가의 아픔을 생각했고,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게 썩 나쁜 일은 아니라며 자위했다. 누군가 다녀갔는지 허공에서 보행을 하는 운동기구는 주인을 잃고 한동안 흔들렸다. 살금살금 비가 내렸고, 조용조용 걸음을 옮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가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꼴값을 떠네!"라는 말로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꼴값'은 사실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꼴값하네' 혹은 '꼴값 떠네'라고 이르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나 과장스런 몸짓 자체에 꽤나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것 같다. 물론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사대부의 남정네들, 그것도 얼굴값 하는 남정네들에 대한 거부감 혹은 안하무인의 태도는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감정은 시대가 바뀌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우리들 의식 곳곳에 남아 있다가 어떤 상황에서 불현듯 툭 하고 불거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여인네도 있었던 모양이다. 야당의 대선 후보 부인이 바로 그렇다. 그녀와 한 인터넷 언론 기자와의 전화 통화 내용 중 한 대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보수들은 챙겨주는 것은 확실하지, 그렇게 뭐 공짜로 부려먹거나 이런 일은 없지. 그래서 미투가 별로 안 터지잖아. 미투 터지는 게 다 돈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게 아니야. 돈은 없지, 바람은 피워야겠지. 이해는 다 가잖아. 나는 다 이해하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이 대목만 들어보면 바람피우는 데 익숙한 남정네들의 입장에서 그녀는 보살과 다름이 없다. 이해의 폭이 바다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어느 신문사에서는 '걸 크러시'라는 제목을 뽑아 찬양 기사도 내지 않았던가. 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꼴값을 떨어도 이런 꼴값이 없다.

 

나는 그녀의 말을 소위 검사의 부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바람피우는 것에 대한) 그 정도의 포용력과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이해했다. 이른바 남정네가 꼴값을 떨어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마음속으로만 삭혀야 한다는 것, 그게 여인네의 도리인 것이다. 이런 태도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걸 또 '걸 크러시'라고 칭송하는 언론사는 또 뭐고. 세상 참 가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