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보는 바깥 날씨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과 풍요로운 햇살. 코트를 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을 듯한 날씨인데 막상 나가 보면 딴판이다. 저절로 옷깃이 여며지고 코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게 된다. 보는 것과 체감하는 것은 이토록 다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된 후 만날 수 있는 친인척을 더러 만나게 된다. 전염력 강한 오미크론의 여파로 직접적인 대면은 다들 부담스러운 듯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보자'는 말로 에둘러 거절하기 일쑤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관계도 더러 있게 마련, 시간을 내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게 된다.

 

세배를 하고 간단한 차와 다과를 나누며 그간의 사정을 묻고 안부를 확인하는 게 전부이지만, 그마저도 생략하면 언제 다시 얼굴을 보고 손 한 번 잡아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것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긴 연휴 동안 집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 본들 늘어난 체중과 나른한 피로만 남을 게 뻔한지라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 싶은 것이다. 몸은 조금 고될지라도 말이다.

 

대선이 멀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그의 장점을 설파하려 든다. 그러나 그 이면을 파고들어 보면 자신의 이익이 후보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집값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시세가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고, 종부세 대상도 아니면서 세금이 너무 높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대 포장하기도 하고,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아무개 후보가 제일 낫다고 판단하면서도 실제로 자신이 아무개 후보를 지지하는 건 단순히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말뿐인 애국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쟁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 사는가?' 하는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어떤 후보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시세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지지 기준의 1순위가 된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에게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살다 죽으면 이 집은 다 아들에게 갈 텐데 집값이 안 떨어지면 나도 좋고 아들도 좋지 뭐 그게 어때서 그래? 하고 반박하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게 된다면 아들은 어쩌면 수십 년을 난민처럼 떠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도 죄책감이라곤 조금도 없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이란 그저 거주의 공간일 뿐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길이 막히다 보니 외국에 사는 친구들이나 친인척을 만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전화나 sns를 통해 겨우 소식을 전할 뿐이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대선에 꽤나 관심이 많은지 자국에서 보도되는 언론을 통해 접하는 소식을 나에게 확인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무속 신앙에 심취한 야당 후보의 부인과 후보 본인의 무속 논란에 대해 나에게 물어왔다.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대한민국의 국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며 각종 여론 조사의 조사가 잘못된 게 아닌지 따져 물었다. 내가 여론 조사기관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니 조사 방법이나 조사 시간 등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었지만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사람들에게 실망하다 보니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적어도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루가 이렇게나 빨리 스러지는 걸 보니 휴일은 휴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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