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찌나 덥고 후텁지근하던지 동네의 한 커피숍에 들러 늦은 시각까지 있었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음료수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채 하릴없는 시간만 죽이고 있었죠.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은 '어서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하고 바랄 때는 시간은 마치 느림보 거북이처럼 도통 그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조명이 어두워 책을 읽기도 어려웠고 구석 자리에 홀로 앉은 남자가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면 괜히 치한으로 오해받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서 차라리 눈을 꾹 감은 채 커피숍 내부에 떠도는 잡다한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만나야 할 무슨 긴박한 볼일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볼일을 핑계삼아 피서를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가 평일에 머무는 아파트에도 에어컨은 있지만 저는 왠지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튼다는 게 무슨 크나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좀체로 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커피숍으로 피서를 간 것이지만 말입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음원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사람들은 저마다 소통의 목적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구나.' 하는. '그러므로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서로에겐 먼 외계에서 온 이방인에 불과하구나.' 하는.

 

히말라야의 아시아 흑곰 얘기를 좀 해볼까요?

아시아 흑곰은 털이 검기 때문에 사냥감인 인도 엘크 사슴의 눈에 띄기 쉽습니다. 특히나 히말라야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설산에서 곰의 움직임은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일이죠.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업는 일 아니겠어요?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죠. 산 아래쪽에서 생활하는 사슴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아시아 흑곰은 산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눈밭을 굴러내려갑니다. 산비탈을 굴러 내려가면서 몸에는 눈이 달라붙게 되고 곰의 몸은 이내 눈덩이로 변하여 사슴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는 방심한 사슴을 덮친다고 합니다. 영리하지요?

 

그러나 영리하다는 표현은 곰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사슴의 입장에서는 영악하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지요. 우리는 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이 유리한 쪽에서 행동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합니다. 마치 곰과 사슴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조차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혹은 제 스스로 외계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5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세월의 감지는 손에 만져지는 게 아니라서 선뜻 알아차리기 어렵다. 6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소요되는  알라딘 신간평가단(주로 에세이 분야) 활동을 몇 번 하면서 나는 그때마다 '아! 벌써 6개월이 흐른 거야?' 되묻곤 했다. 반 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른 셈이다. 월초마다 신간 페이퍼를 작성하고, 그 페이퍼에 의해 선정된 책을 받고,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는, 어찌 보면 단순하고도 정형화된 시간들이 속도도 감지되지 않은 채 조용히 흘러갔을 뿐이다. 나는 방금 잠에서 깬 듯 '뭐야, 벌써 6개월이 흐른 거야?' 깜짝 놀란다.

 

1.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

   <조지프 앤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되었던 과거의 어느 시점에 시 하나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의 소식이 뇌리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시간을 두 번 산 듯한 느낌을 받았다.

 

2.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2) 나는 왜 쓰는가

   3)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4) 금요일엔 돌아오렴

   5)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얼추 장마가 끝나가나 봅니다. 이제 다음 계절까지는 더운 일만 남았겠지요. 그렇게 무더위를 견디다 보면 조만간 아침 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불고, 나도 모르게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날이 오고야 말겠지요. 오늘도 날씨가 참 무덥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과연 신이 존재할까? 라거나 '너는 신이 있다고 믿어?'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학자나 종교학자가 아닌 나와 같은 일반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올 때는 그 사람이 정말로 신의 존재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호기심 왕성한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다. 아마도 그의 속내는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나의 이런 불행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이거나 '신이 나의 불행을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줘.' 정도가 될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질문을 하기 바로 직전이나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생각지도 않았던 불행이 찾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이 있다고 믿느냐? 의 질문 속에는 내 불행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신의 은총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자신의 속내를 에둘러 표현한 말일 게다. 혹은 나를 위해서 신의 은총을 빌어달라는 의미이거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신이 인간에게 매정하리만치 무관심할 때 신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신의 사랑은 당연히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눠져야 한다고 믿는 까닭에 누구를 더 편애하거나 누구를 더 미워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신의 존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그런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간을 닮은, 인간과 아주 흡사한, 신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신답게 처신을 하려면 그런 일은 절대로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누구의 불행이 더 커 보여서, 누구의 처지가 더 딱해서, 누구는 신을 향하여 간절히 빌었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불행을 면제해주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공평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오직 신의 영역일 뿐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은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채 무관심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셈이다. 어떤 기도에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아무리 큰 불행에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아야만 모든 인간에게 공평할 수 있다. 결국 하느님(또는 신)의 가장 큰 사랑은 인간을 향한 완전한 무관심이다.

 

날씨가 무덥다. 더위를 먹었는지 한 친구가 내게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뜬금없는 문자를 보냈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니체도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직도 이런 철없는 질문을 하는 친구가 있다니...쯧쯧.  나잇값 좀 하시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주말을 앞둔 시점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이런 말을 들으면 가끔 온 몸의 기운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마치 내 몸의 어느 부분에 수채구멍처럼 에너지만 배출되는 특별한 통로가 있어서 듣기 싫은 말만 들으면 곧바로 그 통로가 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직자의 지나친 부도덕성(또는 탈법성)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는 엄격한 준법정신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나만 그런가? 그럴지도...) 예컨대 공직자의 기강을 내세우면서 비서실이 작성한 문건을 두고 찌라시라고 한다거나,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은 눈감아주겠다는 식으로 함구한다거나, 국정원이나 군 기무사의 댓글 공작을 통한 선거 개입에도 도움 받은 게 없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사소한 잘못에는 가차없이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요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국정원 감청 의혹 사건만 해도 그렇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대행했던 기업의 대표는 야당의 출국 금지 요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업의 대표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출국했다. 뿐만 아니라 해킹 프로그램을 운용했던 국정원 간부는 컴퓨터 파일을 삭제한 채 자살했다. 웃기는 건 그가 마지막으로 탔던 마티즈 승용차의 진위여부였다. ccTV에 찍힌 번호판은 흰색으로 보이는데 왜 녹색 번호판을 달고 있느냐 하는 의문에 대한 네티즌의 문제 제기. 정부는 처음에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냥 믿으라고 햇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정부의 말대로 따라야 하는가?

 

정부의 탈법이나 불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사과의 말도, 그렇다고 책임자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국민들은 그저 정부를 믿으라는 강요,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이다. 이제는 국민들의 머릿속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인지, 믿으라고 명령하면 믿어지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대한민국의 애연가에게 2015년은 어쩌면 최악의 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0%에 이르는 담배값 인상은 개개인에게 적잖은 부담이었을 테니까요. 사실을 말하자면 담배 가격의 인상은 아니었고 담배에 붙은 징벌세 성격의 세금이 올랐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제 소득은 전년도에 비해 그닥 오른 게 없었기에 저는 올해 초부터 담배를 끊었고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저와 함께 금연을 결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 삼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못 피웠던 걸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더 적극적으로 피워대는 모습을 보면 괜히 미안해집니다. 나만 혼자 빠져나간 듯해서 말이지요.

 

아무튼 담배값 인상은 우리 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 게 사실입니다. 궐련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가격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전자 담배로 갈아탔는가 하면 지금껏 궐련 담배를 고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담배값을 아껴보려는 심산인지 필터에 불이 붙을 때까지 알뜰하게 피운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두어 모금 빨고 버리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현저히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세수 증대를 은근히 기대했던 정부는 요즘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을 걸로 압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을 테니까요.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 사람들의 심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왕 버린 몸!'이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네덜란드 속담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비에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브라질의 해안도시 파라티에서는 매년 진흙축제(Bloco da Lama)가 열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보령머드축제'처럼 말이지요. 젊은이들이 이 축제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 평소에 느낄 수 없는 해방감 때문일 것입니다. '이왕 버린 몸!' 신나게 놀아나 보자는 심리와 담배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한모금 빨아보고는 '이왕 버린 몸!' 하면서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겠지요. 요즘 들어 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비싼 외제차를 잠시의 고민도 없이 덥썩 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저는 그들이 대단한 부자인 줄 알았죠. 그런데 속사정은 그렇지 않더군요. 한계에 도달한 가계 빚을 떠안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왕 버린 몸'의 자포자기 심리가 반영된 까닭이지요. 주말마다 외식이나 캠핑을 즐기면서 말입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것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