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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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분야, 그것도 정치 분야의 도서에 대한 리뷰는 언제나 그 시작이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의 도서에 대한 리뷰는 늘 쉬운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렵기는 매일반이지만 상대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기고자 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었을 때는 결국 리뷰를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쓰지 못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2021년 1월, 선거에 패배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을 시작으로 촉발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이로 인한 미국 민주주의 급격한 후퇴를 바라보면서 공고하게만 보였던 민주주의 체제의 약점과 허약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그와 같은 의견 제시에 대한 논거로 미국의 헌법과 선거 제도를 살피고 프랑스, 헝가리, 태국 등 민주주의를 추종하는 국가에서 극단적 소수를 가진 소수가 어떻게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의 배후로 민주주의 원리주의자들, 즉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과 낡은 민주주의 체제를 들고 있다.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로운 권력 이양과 정당한 경쟁을 유도하고, 같은 진영이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극단주의 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책이 과연 미국 정치인이나 국민들을 위해 쓰인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쓰인 책인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질서 정연한 소수의 지배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보수 정치인들의 양태를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는 때로 정치 싸움에서 다수를 좌절하게 만들거나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일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일반적인 협상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소수가 '계속해서' 거대 다수를 이기거나 정책을 강요하는 것, 나아가 그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의 우위를 굳건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곳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p.247)


그러나 책의 원제인 [소수에 의한 폭정(Tyranny of the Minority)]은 장구한 역사에 있어 일시적인 현상일 뿐 항구적이거나 영원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물체의 열적 상태 또는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쪽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즉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는 시스템의 무질서도가 크고, 에너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는 시스템이 더 질서 정연하고, 에너지가 특정한 형태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민주주의 발전에 등치 시키면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제도의 무질서도가 크고, 권력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반면 민주주의 발전 단계가 낮으면 제도가 더 질서 정연하고, 권력이 특정한 형태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자연계에서 엔트로피는 결코 감소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제도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책에서 저자들은 정치적 소수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도입되는 반다수결주의적 제도들에 숨겨진 소수의 독재에 대한 위험성을 끝없이 제기한다. "민주주의는 몇몇 반다수결주의 제도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반다수결주의 제도가 지나치게 만연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대목처럼 극단적 소수에 의한 지배를 꿈꾸는 사람들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극단적으로는 하나의 의견밖에 없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지향한다. 그러자면 언론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윤석열 정권이 끝없이 언론 통제에 공을 들였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일반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역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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