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소담 클래식 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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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재독, 삼독, 나아가 아무리 읽는 횟수를 늘려가더라도 설렘의 강도가 여전히 줄지 않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줄기는커녕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 읽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은 물론 추억에 더하여 새로운 느낌과 기대감으로 인해 설렘의 강도가 예전에 비해 절반쯤 높아지는 책이라면 명작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내가 판단하는 기준에서는 그렇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 듯하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러한데 네 번이나 다섯 번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제 읽었던 책의 저자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은 나로서는 나의 기억력을 도통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개츠비', 내가 확실하게 경멸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개츠비는 내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만약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련의 남다른 행위와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정말 눈부신 면이, 그러니까 인생의 성공을 감지하는 뛰어난 감수성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수만 마일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할 수 있는 그런 정교한 기계처럼 말이다."  (p.11)


당연한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주목하게 되는 등장인물은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달라지곤 한다. 주인공인 개츠비였다가, 데이지의 남편인 톰이었다가, 이야기의 화자인 닉이었다가... 그러나 주목하는 인물이 달라짐에 따라 책을 읽은 느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벌어진다. 개츠비를 주목했을 때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란 말인가' 하는 느낌과 함께 삶에 대한 열정이 뭉글뭉글 피어나지만, 이번처럼 닉에게 주목했을 때는 모든 게 허망하고 덧없다는 느낌이었다. 삶에서 획득하고 경험하는 모든 게 손안에 거머쥔 가는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쉽게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살면서 맺게 되는 멀고도 가까운 인간관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개츠비가 한 말을 통해, 지독히 감상적인 그의 생각을 통해,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주 옛날,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리듬, 잊힌 말의 단편을...... 일순 내 입에서 한마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서 내 입술이 벙어리처럼 벌어졌다. 마치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결국 말을 하지 못했으며, 거의 생각날 뻔했던 것은 영원히 전달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p.181)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까닭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대강의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젊은 시절, 순수한 열정만으로 연인 관계를 유지하던 데이지와 개츠비. 결국 개츠비는 전쟁터로 나가고 데이지는 톰 부캐넌이라는 부자와 결혼한다. 한편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닉은 증권업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 교외의 웨스트 에그에 있는 작은 집을 빌려 생활하는데, 그것이 하필 부자가 된 개츠비의 대저택 옆집이었다. 데이지와 헤어지게 된 것이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개츠비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결국 부자가 되었고, 데이지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자신과 데이지 사이의 관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뉴욕 시내로 외출을 했던 데이지가 자신이 운전하던 차로 교통사고를 내고, 결국 그 사고로 톰의 정부였던 윌슨 부인이 사망하게 된다. 개츠비는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지만 데이지는 톰과 공모하여 개츠비가 사고를 낸 것으로 몰고 가는데...


"그 섬의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집으로 향하는 길가 양쪽에 늘어서 있던 나무들은 한때 모든 인간의 꿈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지막 꿈에 탐닉하여 소곤거렸을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황홀한 한순간, 인간은 이 대륙의 존재 앞에 넋을 잃고 숨을 죽였을 것이며, 역사상 마지막으로 자신의 경이로운 능력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마주 대한 채, 이해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어떤 심미적인 명상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갔으리라."  (p.290~p.291)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어쩌면 숨 죽인 채 바보처럼 살았던, 자신의 아내 머틀이 누군가(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직 일만 하며 살았던, 그러다 결국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자 했던, 그러나 끝내 그것마저 이루지 못했던 자동차 정비공 조지 윌슨을 주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착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선하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망연자실 넋을 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조금쯤 분개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이 책을 다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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