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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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시간의 회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골목을 따라가면 언제나처럼 작은 공터가 나오고 왁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석치기를 하거나, 양갈래머리를 한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때로는 무리에 속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놀이에 끼이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대며 놀이를 방해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질 때까지의 골목은 온통 아이들 차지였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아이들은 아쉬움만 한아름 내려 놓고 공터를 떠난다.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공터 한켠에 놓인 평상으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밤새 모깃불이 타올랐었다.  이따금 어른들의 이야기가 호박 넝쿨처럼 길게 이어지는 날이면 졸음에 겨운 아이들은 제 어미의 무릎을 베고 곤한 잠에 빠져들고 풀벌레 소리만 별처럼 가득했었다.

 

골목에서는 그때 맡았던 제 어미의 땀내음처럼 아릿한 향수가 밀려오곤 한다.  낮은 담장 넘어 손바닥만한 마당 한켠에선 걸레를 빠는 누이의 모습.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에 함초롬한 가을 햇살이 소복소복 쌓일 것 같은 오후.  영훈, 종애, 영숙, 정태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는 메아리가 앞산 머리에 쩌렁쩌렁 울릴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그 정겨운 풍경이 하마면 잡힐 듯한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의 옛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까치발을 뜨면 안마당까지 훤히 보이던 정겨운 풍경도, 깡통을 차며 놀던 작은 공터도, 세월의 더께가 일던 담배가게도 이제는 모두 아슴아슴 멀어지고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갑수 골목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나즈막한 슬레이트 지붕이 골목으로 나란히 펼쳐지는, 골목을 따라 코스모스 여린 데궁이 일렁일 것만 같은 그때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골목을 다니다보면 순수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곳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람으로 흔들리는 미루나무의 움직임처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켜보며 보일러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온통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p.240)

 

서울의 부암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통영의 동피랑, 청주의 수암골, 부산의 태극도마을, 대전의 복지관길 등 저자의 발길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1m씩 높아질 때마다 남보다 두세 걸음쯤 앞서 걸어야만 했던 우리는 골목의 여유란 그저 게으름의 상징, 청산해야 할 구태의 하나쯤으로 여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미의 시큼한 땀내음이 물씬 풍겨오던 삶의 터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도통 찾을 길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위압적인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렇듯 풍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경하게, 또는 살풍경하게 만들어 놓았다.  추억은 오직 마음 속의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수암골 골목에 서 있다.  주홍빛 불이 들어오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뛰어간다.  먼 지붕 위로 별이 돋고 어디선가 졸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다."    (p.359)

 

언젠가 댐 건설로 인해 자신이 살던 고향을 잃고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그는 호수 어딘가를 가리키며 자신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느꼈었다.  '아,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체취는 이제는 더 이상 찾기어렵다.  새로이 태어나는 자식들에게 제 부모의 흔적을 지우도록 강요하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골목을 보존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은가.

 

뽀얀 가을 햇살 속에 온종일 펄럭였던 이불 홑청처럼 순수한 마음이 흘러가던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면 백구가 컹컹 짖던 내 어릴 적 친구의 집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제는 몇 남지도 않은 골목이 부디 무사하기를...  그곳에 흐르던 순수의 마음들이 계단을 오르고, 공터를 돌아 고샅고샅 흩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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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나를 세운다 - 자전거 세계일주, 나를 향한 50가지 질문
스콧 스톨 지음, 윤덕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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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만 그려 놓은 담장의 벽화 앞에 동네 꼬마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낙서를 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끝이 뭉툭해진 연필에 가끔씩 제 침을 묻혀가며 낙서 아닌 낙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 윤곽 안에 눈이며, 코며, 입을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빈 풍경 안에 알 수 없는 것들을 그리며 때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웬만한 화가의 진지함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빈 곳을 채워갑니다.

 

당연한 것 아닐까요?

어려서는 자신의 경험으로 삶의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니까요.  한 살 두 살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색다른 경험도, 내 삶의 빈 공간도 없어질 즈음이 되면 우리는 이제 삶이라는 것에, 또는 일상이라는 것에 조금쯤 시들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솔개가 40년 정도 살다 보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며, 날개는 무거워서 날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쯤 되면 사람도, 솔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솔개는 그런다지요?  높은 바위산으로 올라가 둥지를 틀고는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쪼아 없애버리고는 닳아 없어진 자리에서 새 부리가 나오면, 다시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을 하나씩 뽑고, 무거워진 깃털도 모두 뽑아내어 새로운 발톱과 깃털이 자라게 한다구요.  그렇게 생사를 건 130일을 보냄으로써 40여 년의 새 삶을 살게 된다지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욕심으로 무뎌진 감성과, 무료한 일상에 매몰된 두뇌와, 안락에 취해 죽어가는 열정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비록 육체는 백 살을 산다 한들 이미 자신의 수명은 그 순간에 다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솔개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제2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자전거로 나를 세운다>의 저자인 스콧 스톨은 자전거 여행을 통하여 생사를 건 솔개의 체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전거 하나로 4년 동안 6대륙 50개국, 4만1444㎞를 일주하였으니까 말이죠.  어쩌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의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도를 던져 버리고 스스로의 방향 감각을 믿으며 발 끝으로 직접 풀을 밟는 감각을 느껴 보려는 것이다.  때로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겠지만 지도 제작자가 표시할 수 없는 세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p.123)

 

저자는 여행을 준비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과 직업, 절친한 룸메이트, 자신감 등 그를 구성하던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향해 훌쩍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이라는 품 속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흔한 질문에서부터 자신의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그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찾고자 노력한 듯 보입니다.  우리와 똑 닮은 보통 사람의 저자가 들려주는 나름의 답변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정답과는 상반된 말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자 자신의 경험과 독자의 인생 경험을 합치면 더 즐거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자신에게 진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를 두려워 한다.  사람들은 또 왜 자신이 꿈꾸는 것처럼 살지를 못하는지 몰어 보기조차 두려워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험을 시도할 용기조차 없다.  그러니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못한다.  그저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자위할 뿐이다.  그냥 그렇게 지내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p.44)

 

"결과적으로 사람들 대부분은 바깥 세상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개조하려고 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기대에 맞춰 세상을 살려고 인생을 낭비한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20)

 

저자는 이 책에서 '용변은 어디서 보나요?'와 같은 일상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행복하세요?'와 같은 철학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의 그가 선정한 50가지의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손이 뒤틀리고 관절이 찢어지는가 하면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물 한모금을 찾아 극한의 인내력을 감수해야 했던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간접경험은 산처럼 커 보입니다.  우리는 저자처럼 훌쩍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인간은 자신을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월든>의 작가 소로우의 말처럼 나, 그리고 너는 "최악의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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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 - 메콩강 따라 2,850km 여자 혼자 떠난 자전거 여행
이민영 글.사진 / 이랑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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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전거는 통학을 위한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만큼 값싼 교통수단도 없었기에 아침이면 도로는 온통 자전거의 물결이었다.  당시에도 물론 버스는 있었다.  그러나 100원 남짓이던 버스요금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같은 동네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런 까닭에 자전거에 얽힌 추억도 많다.  한번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늦은 밤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길을 걷고 있던 어느 여학생과 부딪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썸씽이 있었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나를 향해 걸어 오던 여학생은 내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으면 똑 같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역시 왼쪽으로 피하려다가 결국은 속도를 죽이지 못하여 여학생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그 사태를 무마하려고 자전거에서 재빨리  내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또 다른 추억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대학 진학 공부의 막바지에 박차를 가하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꽤나 지쳐있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학교에 나와 자습을 하던 친구들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했고, 그 결과를 내게 선심 쓰듯 알려주고는 그들과 행동을 같이할 것을 반 강제적으로 종용했었다.  계획인즉슨 학교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계곡으로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자는 것, 그것도 가장 더운 날 가장 더운 시간을 골라서 출발하여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 무모한 계획에 선뜻 동참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8월의 땡볕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목적지에 반도 이르지 못한 지점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만 보면 온 몸에 물을 끼얹고 더위에 지친 개처럼 혀를 길게 뽑고 물을 들이켜기 바빴다.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막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이었다.  준비해 간 쌀로 밥을 짓고 삼겹살을 구워 배를 채운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계곡의 물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니 홀딱 젖은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길을 라이트도 들어오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다섯 명 중에 라이트가 멀쩡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그 약한 조명에 의지하여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설상가상으로 도중에 한 친구의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는고장난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수십 분을 헤맸다.  그러나 휴일의 늦은 시각이었던지라 자전거포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자전거를 수리해 주십사 사정하여 펑크를 수리하고 가까스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자전거 여행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이다.  사실 요즘은 전국의 어느 도로를 가더라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도로 사정은 좋아졌지만 그만큼 차도 많아졌고 달리는 차의 속력도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오지로 향한다.  여행을 좋아했던 작가 이민영도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여자 혼자서 무려 2개월 동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메콩강 4개국, 2,850km를 달릴 결심을 한 것은 나의 학창시절의 경험처럼 조금 무모하다 싶다.  결국은 무사히 마쳤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때의 기록이다.

 

"나 역시 20대의 대부분을 미친바람처럼 떠돌았다.  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되고,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며 모든 곳이 비슷하게 느껴질 무렵, 문득 '이젠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여행을 다니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놀지 못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다 불태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미친바람이 잦아든 것이었다.  대신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가슴속에 '사무침'이라고 할 만한 단단히 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진정으로 사무칠 때 화두를 잡아야 평생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다는데, 산만하게 이곳저곳으로 뻗었던 내 인생의 많은 길들이 사실은 나선형을 그리며 하나의 단단한 화두로 통합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여행 직전에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를 자축하기 위해 혼자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을 내 속도로 천천히 헤쳐나가는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 익숙한 일상이 끊어진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과 새로운 생각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 때 삶에 더 감사하게 된다는 것을 생생히 배울 수 있었다."    (p.264)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르긴 했지만 작가 이민영은 생소한 사람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고, 그녀의 이력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놀랍고 약간의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포항공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했으나, 대학 시절부터 휴학을 거듭하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인도와 남미, 스페인의 산티아고는 물론, 나중에는 여행인솔자라는 직업까지 얻어가며 60개국을 떠돈 후 2010년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의료인류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단다.  그녀의 여정은 메콩강 상류인 태국의 치앙마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인 산악도로와 섭씨 40도 이상의 뙤약볕이 내려쬐는 길을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은 남자인 나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펑크도 스스로 때워본 적이 없는 왕초보 자전거 여행자였던 작가.  독자는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절대로 '어렵다'는 말을 해서도 안 돼.  어려울지는 몰라도 반드시 해결책이 있단다."  그분이 말해준 주옥같은 명문장들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사과 한 알을 보아도, 포도 한 송이를 보아도 "이 탱탱한 알을 좀 봐!  얼마나 즙이 많고 맛있겠니!" 하고 감탄하던 천진난만한 할아버지,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그의 삶이 내게는 위대한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p.117)

 

메콩강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원주민들,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여행하면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실로 다양했다.  가난하지만 낯선 여행자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순박하고 고운 심성,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작가.  그 모든 것들이 30대의 인류학도인 작가에게 앞으로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어떤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만남이 아닐까?  작가가 마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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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예술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곽재구 글, 정정엽 그림 / 열림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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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역시 치밀한 관찰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나 <원형의 섬 진도>를 읽을 때도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곽재구의 예술기행』을 읽으면서 또 같은 생각을 했다.  달리 말하면, 생계에 목을 맨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도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물을 지긋이, 또는 가까이서 찬찬히 살피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가만가만 짚어보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언제나 잰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다 밤이 되면 짚단처럼 풀썩 쓰러지는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 책은 <사평역에서>로 잘 알려진 곽재구 시인이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노래한 글들을 모아 묶은 것이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결국 시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시인이란 본디 겉으로 드러난 풍경을 눈보다는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이니 작가의 여정은 하나도 중요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시인이 어디에 위치해 있든 그의 마음이 향하는 촉수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여 시인이 쓴 여행기는 지명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언제,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감칠맛이 난다.

 

"싸리꽃이었다.  내 유년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가장 짙고 찬란하게 피어난 싸리꽃 무더기였다.  나는 조금 흥분했었을 것이다.  싸리꽃들은 길을 따라 어디론가 죽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그날의 그애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조금 조급해졌으며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경사가 급한 비탈길도 그대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다가 한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꽃 한 가지를 꺾었다.  앞으로 닥칠, 전혀 경험하지 못한 어떤 만남에 대한 추상이 마음속으로 찾아들었다."    (p.25)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다양하다.  이성복 시인, 소설가 김동리, 서정주 시인, 신동엽 시인, 화가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 김환기 화백, 작곡가 윤이상, 박인환 시인, 소설가 이효석,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 그리고 누구라고 지칭할 수 없는 진도 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곽재구 시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아, 나는 누가 뭐래도 천상 한국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오랜 옛적부터 면면히 내려온 '한(恨)의 정서'가 내 핏줄 어딘가에서 고요히 숨죽이다가 그의 글로 인해 태곳적 우리 조상들의 삶과 이어져 꿈틀대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을 찾아가는 작가와 그 길에 동행한 김유택 시인은 이효석의 자취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고 장재인 시인의 흔적을 따라간다.  장재인 시인은 서울 덕수 상고의 영어 선생으로, 그의 부인이었던 최영애는 내면 고교의 불어 선생으로 근무하며 한반도의 동과 서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다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곤 했었다고 한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고, 아들과 아내가 아비를 만나기 위해 탔던 강원여객 직행버스는 빗길에 섬강교 아래로 추락했다.  1990년 9월 1일의 사고였다.  탑승객 스물여덟 명 중 스물네 명이 사망하였고, 장재인 시인은 그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장재인 시인은 사고 발생 보름 만에 열여덟 페이지에 달하는 긴 유서를 남기고 이 지상을 떠났다고 한다.

 

"행여 살아남아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생의 의무감을 생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 세 식구가 지닌 쓰라린 사랑의 메시지보다 더 생생한 삶의 경종이 어디 있겠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생을 초월한 선택이 어찌 소극적인 결심일 수 있겠습니까?  부디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하지 말 것을 당부드리며, 저희 세 식구 하늘나라에서의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 장재인 시인의 유서' 중에서 p.219)

 

이 책에는 '진도 소리를 찾아서'가 두 번 나온다.  그 두 번째의 '진도 소리를 찾아서'는 책의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시인에게 삶의 애환이 담긴 절절한 가락은 차마 잊을 수 없는 시요,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유구한 역사가 아니었을까?  시인은 어쩌면 그 노랫가락 속에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발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에서 몇 홉쯤의 눈물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야 삶은 왜 이리 슬프냐.  근디 너는 왜 이리 예쁘냐.  산굽이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갈대들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회심곡 한자락을 이승의 서러운 산자락에 풀어놓고 있었다."    (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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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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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특별하지 않은 일들은 그저 멀뚱히 바라보는 편이 좋다.  평소보다 눈에 힘을 반쯤 빼고 멍하니 바라보노라면 흔하디 흔한 일들도 마냥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슬몃 놓쳐버린 일들, 무채색의 흐릿한 일상도 시간이 멀찌감치 흘렀을 때는 분명 아름답게 보인다.  그렇게 흘려버린 일들을 생각할 때면 과거에는 매우 소중하게 느꼈었던 것들과 별 것 아니라고 내팽겨쳤던 일들이 일순 자리바꿈을 하곤 한다.  후회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후회는 어쩌면 가치관의 혼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애초에 품었던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었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뒤바뀐 자리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일 게다.  그렇게 시작된 후회는 언제나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으로 끝나곤 한다.

 

한강(韓江)의 소설은 독자들의 일상적이고도 소소한 후회를 떠올리게 한다.  장아찌독을 누르던 묵직한 돌덩이를 가슴에 옮겨 놓은 듯한 느낌.  가슴 깊이 눌렸던 슬픔이 오히려 헤살거리는 웃음으로 터져나올 때의 처연함.  그 단초는 언제나 한강의 소설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쓰지 못한다.  매번 그랬다.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그 언저리에서 뱅뱅 맴을 돌았다.  그녀의 산문집은 그나마 조금 나았다.  얼마 전, 그녀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읽고 리뷰를 썼었다.( http://blog.aladin.co.kr/760404134/6099863)  그때도 나는 여전히 꿈과 의식의 경계에서 한참을 서성였었다.

 

생각이 생각만으로 끝난다는 것, 차고 넘치는 많은 생각들이   컴퓨터 화면에서 물 흐르듯 퍼져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름 땡볕이 한낮의 소란을 깊이 삼켜버렸을 때의 비현실적 정적과 흠사한 부드러운 고요가 저릿저릿하게 밀려왔었다.  그쯤부터 나는 내 삶과 어깨를 겯고 흐르던 꿈, 이상과 같은 것들이 한층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했던 헤르만 헤세의 일갈이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삶의 한 귀퉁이를 제 손으로 무너뜨렸거나 어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삶의 외딴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지만 그 과정을 겪는 현실은 쓰라리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갈 만큼 아프다.  그러나 삶의 고통 속에서 바라볼 때의 '순리'라는 의미는 오히려 명징하다. 마치 뼈가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의 하늘이 더없이 맑은 것처럼.

 

"먹빛 하늘이 서서히 밝아집니다.  이렇게 푸른빛이 실핏줄처럼 어둠의 틈으로 스며들 때면, 내 몸속의 피도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 의지, 내 기억, 아니, 나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워집니다.  한차례 파도가 밀려 나간 사이 잠깐 드러난 부드러운 모랫벌처럼, 우리가 여기 머무는 시간은 짧은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문득 당신의 그림이 보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시간이란 흐르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때 함께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그 시간의 당신과 내가 빗소리를 듣고 있다구요.  당신은 어디로도 간 게 아니라구요.  사라지지도, 떠나지도 않았다구요."    ("파란 돌" 중에서 p.214 - 215)

 

작가는 시간의 잔물결이 그려내는 삶의 무늬와 블랙홀처럼 빨려드는 죽음에 대하여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저항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하여,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부조리에 대하여 작가는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다룬다.  삶을 대하는 독자의 시선이 숲이었다면 삶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은 낙엽이 쌓인 그루터기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는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하는 곳.  작가는 독자의 목을 틀어잡고 '똑바로 보라'고 외치는 듯하다.

 

문학평론가 강지희씨는 “한강의 소설은 아무리 겪어도 무뎌지지 않는 고통 속으로 영원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어둠 속에 한 줌의 희미한 빛이 구원처럼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면서 “억지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낙망과 두려움을 거친 후에야 서서히 번져 오는 깊고 맑은 빛. 그것이 그녀의 소설을 고통으로 찍어낸 ‘빛의 지문(指紋)’으로 보이게 한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다만 이상한 것은, 모든 것이 뭉개어지는 데 비례하여 오히려 감각들은 선명하게 살아난다는 것이다.  회칼처럼 예리해진, 예전에는 가져본 적 없었던 눈과 귀와 코와 피부와 혀의 감각들을 느낀다.  그리고 그보다 명징한,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  육체에서라고도, 영혼에서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들이 분리될 수 없는 어떤 부분에서 뻗어 나온, 무섭도록 절실한 촉수를 느낀다."    ("노랑무늬영원" 중에서 p.299)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절실하게 살고 싶은 때는 죽음과 마주하는 그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꺼져 가는 불빛이 마지막으로 밝게 빛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죽기 위해 사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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