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나를 세운다 - 자전거 세계일주, 나를 향한 50가지 질문
스콧 스톨 지음, 윤덕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형체만 그려 놓은 담장의 벽화 앞에 동네 꼬마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낙서를 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끝이 뭉툭해진 연필에 가끔씩 제 침을 묻혀가며 낙서 아닌 낙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 윤곽 안에 눈이며, 코며, 입을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빈 풍경 안에 알 수 없는 것들을 그리며 때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웬만한 화가의 진지함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빈 곳을 채워갑니다.

 

당연한 것 아닐까요?

어려서는 자신의 경험으로 삶의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니까요.  한 살 두 살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색다른 경험도, 내 삶의 빈 공간도 없어질 즈음이 되면 우리는 이제 삶이라는 것에, 또는 일상이라는 것에 조금쯤 시들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솔개가 40년 정도 살다 보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며, 날개는 무거워서 날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쯤 되면 사람도, 솔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솔개는 그런다지요?  높은 바위산으로 올라가 둥지를 틀고는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쪼아 없애버리고는 닳아 없어진 자리에서 새 부리가 나오면, 다시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을 하나씩 뽑고, 무거워진 깃털도 모두 뽑아내어 새로운 발톱과 깃털이 자라게 한다구요.  그렇게 생사를 건 130일을 보냄으로써 40여 년의 새 삶을 살게 된다지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욕심으로 무뎌진 감성과, 무료한 일상에 매몰된 두뇌와, 안락에 취해 죽어가는 열정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비록 육체는 백 살을 산다 한들 이미 자신의 수명은 그 순간에 다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솔개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제2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자전거로 나를 세운다>의 저자인 스콧 스톨은 자전거 여행을 통하여 생사를 건 솔개의 체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전거 하나로 4년 동안 6대륙 50개국, 4만1444㎞를 일주하였으니까 말이죠.  어쩌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의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도를 던져 버리고 스스로의 방향 감각을 믿으며 발 끝으로 직접 풀을 밟는 감각을 느껴 보려는 것이다.  때로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겠지만 지도 제작자가 표시할 수 없는 세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p.123)

 

저자는 여행을 준비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과 직업, 절친한 룸메이트, 자신감 등 그를 구성하던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향해 훌쩍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이라는 품 속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흔한 질문에서부터 자신의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그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찾고자 노력한 듯 보입니다.  우리와 똑 닮은 보통 사람의 저자가 들려주는 나름의 답변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정답과는 상반된 말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자 자신의 경험과 독자의 인생 경험을 합치면 더 즐거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자신에게 진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를 두려워 한다.  사람들은 또 왜 자신이 꿈꾸는 것처럼 살지를 못하는지 몰어 보기조차 두려워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험을 시도할 용기조차 없다.  그러니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못한다.  그저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자위할 뿐이다.  그냥 그렇게 지내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p.44)

 

"결과적으로 사람들 대부분은 바깥 세상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개조하려고 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기대에 맞춰 세상을 살려고 인생을 낭비한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20)

 

저자는 이 책에서 '용변은 어디서 보나요?'와 같은 일상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행복하세요?'와 같은 철학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의 그가 선정한 50가지의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손이 뒤틀리고 관절이 찢어지는가 하면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물 한모금을 찾아 극한의 인내력을 감수해야 했던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간접경험은 산처럼 커 보입니다.  우리는 저자처럼 훌쩍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인간은 자신을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월든>의 작가 소로우의 말처럼 나, 그리고 너는 "최악의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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