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이 된다는 것 -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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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그렸지만 본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입니다. 얼굴에는 자신의 삶의 이력이 그려집니다. 자연스러움은 이처럼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너무나 얕고 보잘것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온갖 부조리가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주저앉히는 좌절과 낙담, 슬픔과 분노... 위로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정작 위로가 필요치 않은 시기에는 위로가 없었던 것처럼 위로가 넘쳐난다는 건 또 한편으로 슬픔과 분노 혹은 좌절과 낙담이 넘쳐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위로를 가장한 거짓 위로가 세상을 장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 없는 빈 밭에는 밀알의 싹보다는 잡초만 무성한 것처럼 말이지요.


"일부 그리스도교 단체들도 상업 광고처럼 그러한 구호를 내걸면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신앙인들로 구성된 자기네 공동체 안에서 위안을 얻게 될 거라고 약속합니다. 그 단체들이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놓고도 늘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큰 도움을 주는 긴밀한 관계, 결속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게 될 거라고 피상적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더 심오한 것입니다."  (p.40)


세계적인 영성 심리 상담의 대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저서 <위안이 된다는 것>을 구매했던 시점은 '10.29 참사' 직후였습니다. 최근의 일이지요.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도,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국민들에게도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관료들의 생각은 '시간이 가면 금세 잊힐 일인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일 테지요. 적당히 애도하고 밑선에서 몇 명 책임자를 처벌하면 가족을 잃은 유족들도, 일시적으로 분노하는 국민들도 그 위세가 금세 잠잠해지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인 듯합니다. 그러나 깊은 슬픔은 가슴에,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깊은 생채기를 남길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새살이 돋고 그리운 이를 가슴에 묻을 때까지 말입니다.


"울음은 쌓이고 쌓여서 터져 나오는 감정에서 우리의 짐을 덜어 줍니다. 눈물은 고통을 완화시킵니다. 펑펑 울고 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울음은 누군가를 제압하고 그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듯한 고통을 견뎌 내게 하고 그에게 답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울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울면서 자기를 내려놓는 것, 그러면서 고통을 허용하고 그 방향을 돌리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답을 더 이상 알지 못합니다. 말로도, 몸짓으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p.218)


책의 부제인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륀 신부님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어떻게든 지금의 슬픔이나 좌절에서 벗어나 남은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어쭙잖은 말로 생색을 내거나 아는 체를 한다는 건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장 '빗나간 위로', 2장 '결속감에서 얻는 위로', 3장 '아름다움 속에 깃든 위안', 4장 '자연이 주는 위안', 5장 '몸과 영혼에 생기를 북돋아 주는 위안', 6장'내적 원천의 힘', 7장 '기도가 주는 위로'의 목차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위안을 얻습니다. 포옹이나 대화, 독서, 음악, 그림, 자연, 산책, 반려동물, 운동, 낮잠, 걷기, 목욕, 기억, 유머, 고요, 기도 등 신부님이 제시하는 위안의 방법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친밀한 사람이 당신과 대화를 나눈 뒤 위로를 받고 떠나간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도 굳세게 할 겁니다. 위로, 위안은 이 불확실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이 토대 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향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마주보며 똑바로 설 수 있습니다."  (p.292 '맺음말' 중에서)


우리는 종종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와 같은 꼰대질을 지금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뱉곤 합니다. 습관화된 자기 과시와 자기 피알의 시대에 위로마저 형식적으로 흐르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합니다. 결국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다가가는 방법을, 체온과 체온으로 위로하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놀다'에는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느라 괴로움과 놀고/ 슬픔을 견디느라 슬픔과 놀고/ 그러다가/ 노는 것도 싫어지면/ 싫증하고 놀고......”(「놀다」 전문) 싫증하고 놀 수 있는 날은 아마도 머나먼 미래가 될 듯합니다. '10.29 참사'를 잊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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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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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좋은 생각이란 여러 생각의 흐름에서 생각 하나가 어쩌다 내 의식의 갈고리에 얻어걸리는 기막힌 우연의 결과일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달아나려는 생각을 꼭 붙잡고야 말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좋은 생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진배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은 생각이 내 의식의 그물에 걸려들 때는 주로 산을 걷거나, 멍하니 넋을 놓고 있거나, 음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게 되는 그런 순간이다. 말하자면 좋은 생각이란 나조차도 내려놓은 찰나와 같은 순간에 번개가 치듯 전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아무리 새롭고 재미있는 일도 몇 번 반복되는 순간 쉽게 질리고 마는 성마른 내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아침 산행을 이어오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그와 같은 큰 혜택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색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p.346)


우리에게 <고백>을 쓴 추리소설 작가로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여자들의 등산일기>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휴식이나 쉼의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책이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동네 뒷산의 평탄한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책인 것이다. 결말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이 추정할 수 있는 어떤 작은 단서조차 꽁꽁 숨겨야만 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이처럼 책을 이해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작가의 의도를 너무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중 소설을 쓴다는 건 작가의 능력을 가늠케 하는 기분 좋은 반전이다.


“산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다만, 누가 다치기보다는 치유되는 이야기요.”
_미나토 가나에 (출간기념 인터뷰에서)


책은 '묘코 산', '히우치 산', '야리가타케', '리시리 산', '시로우마다케', '긴토키 산', '통가리로', 가라페스에 가자' 등 8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직장 동료이지만 다소 어색했던 두 사람(리쓰코와 유미)이 산을 오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의 묘코 산, 우연히 참가한 단체 미팅에서 만난 커플(간자키와 미쓰코)이 등산 데이트에 나서는 내용을 다룬 히우치 산, 야리가타케 정상 도전에 번번이 실패한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결심으로 세 번째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우연히 만난 중년 커플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는 내용의 야리가타케, 서른다섯의 독신 번역가이자 아버지의 양파 농사를 돕고 있는 미야카와 유미가 의사 남편을 둔 언니의 제안으로 동반 등산에 나선다는 내용의 리시리 산, 리시리 산에 올랐던 유미가 이번에는 언니와 그녀의 딸인 나나카까지 동행하여 등산에 나서는 시로우마다케, 남자 친구인 다이스케와 산에 오르는 마이코의 이야기가 담긴 긴토키 산, 웹사이트 '여자들의 등산일기'에 모자를 만들어 팔고 있는 유즈키가 뉴질랜드 트래킹 투어에 참가한다는 내용의 통가리로, 언니와 함께 리시리 산과 이어서 시로우마다케에 오른 후 본격적인 등산 계획을 세울 겸 등산 친구를 사귀기 위해 등산 페스티벌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가라페스에 가자' 등 시종일관 소설은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그들만의 고민과 인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발걸음을 앞으로 밀어내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괴로움의 씨앗이 아니라 자기 변신, 자기 버림의 요구,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길과 몸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연금술을 발견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여기서 인간과 길은 행복하고도 까다로운 혼례를 올리며 하나가 된다."  우리는 어쩌면 그날이 그날 같았던 지난날의 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즐겁고도 가벼운 그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의 인생에 비슷한 장면이 몇 번이나 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이 놀고 싶으면 끼워달라고 하면 그만이고, 다른 그룹 아이들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면 참가하면 되는데, 먼 곳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 나는 외려 누가 귀 기울여 듣느냐는 듯 관계없는 책을 펼치는 그런 아이였다."  (p.363)


반짝 추웠던 날씨가 풀리자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난밤 개기월식을 보면서 대학 기숙사에 있는 아들과 전화 통화를 했었다. 아들도 역시 도서관 옥상에서 개기월식을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붉게 변하던 달이 점차 흐려지더니 마침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생도 저 달과 다르지 않겠지?' 생각했었다. 친구들과 함께 개기월식을 보고 있었다는 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기에는 아들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도 많은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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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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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예컨대 말이나 글로, 혹은 행동이나 몸짓으로, 또는 악보나 그림으로, 또는 이제껏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자신만의 발명품으로, 우주의 비밀을 푸는 수식이나 이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이야기의 바다, 이야기의 천국인 셈이다. 나 역시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회상하거나 어떤 의미였을까 해석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나의 삶이 시간의 수직선상에 나열된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더없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저으기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p.34)

"외로움은 내가 맛본 인생의 첫맛이었고, 늘 그 자리에, 내 입안의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p.5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는 이들의 마음은 다들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 혹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루시는 소설을 쓴 작가인 동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1980년대 중반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간단한 맹장수술을 받고 원인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린다. 직장과 집안일로 바쁜 남편은 결국 자신의 장모인 루시의 엄마에게 SOS를 보냈고,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 "안녕, 위즐." 하는 어릴 적 애칭과 함께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지냈던 엄마가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일인용 병실에서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씨름하던 루시. 엄마라는 존재는 파편화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어 주기 위한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p.21~p.22)


루시에게 있어서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은 따뜻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엄마는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렇게 들먹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개로 루시 역시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되살린다. 종조부의 차고에서 지내며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떨던 날들, 부모님의 억압과 간헐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날들,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의 차별과 따돌림, 그녀에게 고향인 앰개시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무지의 기원이자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로운 섬과 같은 곳이었다. 남편과 결혼하여 그토록 동경하던 뉴욕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소설가가 된 지금까지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그녀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는 오빠와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언니에 비하면 루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04~p.205)


루시는 옷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 참가한다 세라 페인은 '섬약한 연민에 기우는 스스로를 잡아 세우지 못하'는 작가, '무대에 능한 작가'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루시에게 세라는 '뉴욕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세라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는다. '작가의 일이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던 세라 페인에 대한 지지를.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p.217)


이 소설에는 루시 곁을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가장무도회처럼 짧았던 수많은 인연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얼굴을 달리하여 나타났던 수많은 천사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것은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꽤 행복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 덕분이었음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독자들에게 잔잔히 말하고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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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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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 김초엽의 등장은 우리 문단에 꽤나 신선하고 강한 인상을 남겼다. 테드 창의 작품 외에는 SF 소설에 그닥 관심이 없던 나도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구해 읽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읽고 꽂아 둔 책을 아들이 이어 읽은 후 김초엽 작가의 팬이 된 것을 보면 요즘 젊은 세대만의 공통분모가 작가의 작품 속에 완벽히 녹아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초엽 작가의 인기는 신인 작가 치고는 무척이나 놀라운 것이어서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은 그동안 과도하게 증폭되고 축적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가의 산문집 <책과 우연들>이 출간된 건 어쩌면 시기적절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올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초엽 작가의 산문집 <책과 우연들>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세계를 확장하기'에서 작가는 'SF란 무엇인가?'와 같은, SF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통해 SF 장르 소설을 쓰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고 데뷔 후 김원영 작가와의 협업으로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를 쓰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2장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은 자신이 겪었던 뒤죽박죽의 독서 여정과 우연처럼 찾아온 소설 쓰기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3장 '책이 있는 일상'에서는 책방과 독자, 과학과 작업실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들어가며 독자들이 궁금해했을 소설가로서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다.


"2015년의 어느 날 나는 소설 쓰기에 대한 작법서 한 권을 읽고 지인들과 함께 있던 채팅방에서 "작법서를 읽었는데 재밌더라. 취미로 소설 써볼까?" 가볍게 말문을 텄는데 별안간 "그래, 다 같이 한번 써보자!" 하고 몇몇이 동조하며 뜬금없이 창작 모임 하나가 급조되었다."  (p.120)


어느 날 야구장을 찾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야석 잔디밭에 누워 생맥주를 마시며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도중에 야쿠르트의 한 선수가 경쾌하게 2루타를 치는 소리를 듣고 우연히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일화처럼 김초엽 작가의 소설 쓰기는 아주 가벼운 우연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계사의 중요한 일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 발단이나 시발점을 쫓아가면 픽 하고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작고 가벼운 것들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작업실에 앉아 책장을 쭉 둘러보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책들이 눈에 잔뜩 들어왔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필요해서 사들인 게 아니었다면 살면서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을 책들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수한 애정과 즐거움 대신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독자가 되었지만, 그래서 그게 일종의 직업병이라며 투덜대고 있었지만, 혹시 이 불순한 독서가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잘못 탄 버스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도시의 낯선 장소로 나를 데려가주는 것처럼."  (p.160)


소설가나 시인의 산문집은 대개 독자들의 요구와 이를 수용하는 출판사의 영리 목적이 결합하는 지점에서 성사되곤 한다.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몇몇 기자의 질문을 통해 일부 해소되기도 하지만 인터뷰라는 형식의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 산발적이며 즉흥적인 질문과 답변 등으로 인해 독자들의 읽기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유년 시절을 포함한 읽기의 여정, 작가로 등단하기까지의 과정,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 등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일반적인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해소하는 한편 소설이나 시에서 보였던 문장과는 완전히 다른 문장들을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꽤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내놓는 이런 형태의 산문집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와 같은, 자신의 일상이나 경험을 일부 포함하면서도 세상을 보는 견해나 가치관 그리고 지금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한 인상 깊은 묘사 등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품격 있는 작품을 산문집에 담지 못한다면 작가의 산문집은 빵점에 가깝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청소년에게 적나라한 신체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와 같은 행위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자극하지도, 매력이나 호감도를 증가시키지도 못한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일률적으로 나열하고 기술하기보다는 예술적 가림막에 의해 적절히 가려지고 통제될 때, 작가에 대한 매력과 호기심이 증가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그것이 바로 예술로서 산문집이 가져야 할 미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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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석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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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시간에 의해 마모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동병상련의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계절. 우리의 곁을 스쳐갔던 숱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더듬 반추할 때마다 나는 기어코 한 권의 책을 손에 잡고야 만다. 쓸쓸함에 대한 가장 적절한 위로는 쓸쓸함의 언어인 것처럼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상은 사라진 것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한 권의 시집이나 한 권의 소설을 손에 들고 펼쳤을 때의 기분은 마치 저무는 가을의 저녁 햇살처럼 정겹다. 그럼에도 나는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해거름녘의 서늘함과 성큼 다가올 삭막한 계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안도와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는 느낌. 내가 권석 PD(이제는 작가라고 해야겠지만)의 장편소설 <스피드>를 읽기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건물 입구 위에 붙어 있는 누런 글자 세 개. 처음엔 금빛으로 번쩍였을 '水泳場(수영장)' 글자도 이제는 허옇게 색이 바래 추레해 보였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청동상이 생뚱맞게 서 있었다. 학교의 상징인 참치였다. 수산 시장도 아니고 학교의 상징 동물이 참치라는 게 이상했지만 청동상도 나름대로 수난을 겪는 중이었다. 피뢰침 같은 주둥이를 위로 한 채 'C'자형으로 허리를 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통째로 기름에 튀긴 것 같았다. 몸통은 돌에 맞았는지 옴폭옴폭 패었고 눈은 무언가에 까맣게 그을려 흉측했다. 한때 학교의 자랑이었을 수영장은 봄이 왔어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면 동물처럼 산속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p.14~p.15)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속초 바다고등학교의 수영장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기울어가는 수영장의 위세처럼 바다고등학교의 자랑이었던 수영부 역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욱이 바다고등학교에 전학 온 것은 한 달 전. 속초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를 갔던 욱은 3년 만에 자신의 고향인 속초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고향 친구였던 성수의 꼬임에 빠져 바다고등학교 수영부의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사실 바다고등학교 수영부의 기존 멤버는 9명으로 욱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해체 위기 직전의 상태였었다.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아직도 숨이 가쁜 욱은 무안해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래도 태호에게 졌는데요." 감독은 허리를 굽혀 욱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아직 미완성이야. 그게 네 가능성이다." 감독의 말이 욱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p.127)


사실 욱의 아버지인 박두하 역시 바다고등학교 수영부 회원이었으며, 한때는 모든 경기에서 금메달을 휩쓸기도 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는 금지약물 투약으로 자격정지 3년을 받고 수영계에서 은퇴하였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하였던 그는 아프리카 건설현장에 파견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때 욱은 은행원이었던 엄마의 배 속에 있었다.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태어난 욱은 엄마를 따라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신의 할아버지가 있는 속초로 돌아왔고, 그 후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욱을 중심으로 두 축으로 펼쳐진다. 아버지인 박두하 선수의 금지약물 파동에 대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하나의 축과 바다고등학교의 수영부 해체를 막기 위한 속초 하늘고와의 수영 대결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과정을 그리는 또 하나의 축이 그것이다. 물론 고등학생인 욱의 달달한 로맨스와 사내들의 거친 우정 그리고 바다고등학교 수영부를 살리겠다는 뜨거운 열정 등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하나의 덤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삶의 나이테가 두꺼워져도 내 안에는 아직 '어릴 적의 나'가 살아 있습니다. 칭찬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고 쉽게 삐치고 질투심도 많은 변덕스러운 아이입니다.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 팬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이 아이는 제게 뮤즈 같은 존재입니다. 어리다 보니 유치하고 미욱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가볍습니다. <스피드>는 내 안의 그 아이에게, 그때를 지나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그 위대한 유치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입니다."  (p.278 '작가의 말' 중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만으로 순수하다거나 어리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드시 그렇게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현실보다 크게 부풀려서 말하거나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다시 또 가을! 반복되는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자신의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포용의 임계치를 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신인작가의 작품이니 만큼 때로는 덜컹덜컹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고, 단출한 인물 구성과 예측 가능한 결말이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누구나 첫 숟갈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권석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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