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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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듣게 될 때 가슴에는 '쿵' 하고 멍이 든다. 아득한 심연을 향해 추락하는 말의 무게와 현실을 부정하고픈 나의 도리질이 가슴 언저리에서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부딪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내가 얼른 죽어야지'라거나 '오늘 잠들면 내일 아침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어'와 같은 말들. 최승자 시인의 시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에서 시인은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고 읊었다. 최갑수 작가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을 읽다가 '사랑은 사라지려 할 때만 사랑 같았다'는 말에 시선이 멎었다.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뒤돌아보면 발자국은 어느새 지워지고 없었다. 끝끝내 삶은 헛되고 헛되고 헛될 뿐. 모래밭에 놓인 고래의 뼈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헛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삶은 더 절실해야 하는 건 아닐는지. 모래밭에 당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써보았다. 사랑은 사라지려 할 때만 사랑 같았다." (p.161)

 

시인이자 여행작가이면서 사진가이기도 한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발견한 사랑의 문장에 자신이 찍은 사진과 글로 전하고픈 자신의 느낌을 덧붙였다. 그렇게 모은 [사랑하는 문장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도 없는 사랑의 순간들을 작가는 자신이 찍은 한 컷의 사진 속에, 평범한 일상을 문득 도드라지게 바라보던 순간의 시선에 담아낸다. 그리고 정제된 감정으로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적는다.

 

"여행을 떠나 보면 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답고 선명하다는 것을." (p.116)

 

'온기가 있는 생물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고 했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외롭지 않은 인생은 존재하지 않기에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어깨가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랑의 모습은 순간순간 다를지언정 그 안에 깃든 푸근한 위로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지하철 안에서 내게 선뜻 내주었던 당신의 어깨와 꽁꽁 얼어붙던 어느 겨울날 차갑게 언 손을 슬몃 잡아끌던 당신의 따뜻했던 손,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볍게 감춰주던 당신의 가슴, 그리고 불안에 떠는 나에게 멀리서 전해주던 당신의 미소.

 

"당신은, 함께 행복해도 좋을 사람이 아닌, 나와 함께 불행해도 좋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서로의 불행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시절, 은유와 비유와 상징을 내던지고 명료하고 현실적인 사랑의 말만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밤들.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걷던 시간들." (p.212)

 

살아가는 동안 사랑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 비록 보지 못하는 순간은 이따금 있을지언정. 이 책 최갑수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을 읽다 보면 작가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만나 깊은 슬픔을 자아내거나 싱긋 미소 짓게 되는 순간이 더러 있다. 작가도 나도 '이것이다' 하고 사랑의 실체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어렴풋한 사랑의 교감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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