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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오늘은 입춘, 24절기 중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지만 동장군의 기세에 그 의미마저 무색해진다. 오늘날은 입춘축을 써 붙이는 우리의 옛 풍습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입춘축이 집집마다 내걸렸고, 붓글씨로 크게 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의 입춘축이 낯설지 않았다. 입춘축을 붙이는 게 굿 한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옛말처럼 새해의 소원을 입춘축에 씀으로써 사람들은 어쩌면 한 해의 행운을 모두 얻은 듯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글쓰기 경험은 삶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나인지 알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p.82)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블로그를 시작했던 몇 년 전을 떠올려보았다.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 일을 나는 참 오래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효용으로 따지자면 시쳇말로 '1도 가치가 없는' 일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조금 놀란다. 충동에 가까운 무작정 시작했던 일, 몇 번 위기는 있었지만 성마른 성격의 내가 수년째 이어오는 일, 나는 아직도 그 배경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어떤 명제를 만들거나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글로 자신이 온전하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단언하듯 문장을 만들지만 그 문장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계속 쓰고, 단언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하얀 눈 위의 구두 발자국' 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찍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흔들리며 글을 쓴다." (p.123)
사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보편적인 조언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이라거나 대중적인 글쓰기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글쓰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작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글을 쓰는 직업인으로서의 작가 자신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모습을 누군가 객관적으로 써내려 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목차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1부 '창작의 도구들', 2부 '창작의 시작', 3부 '실전 글쓰기', 4부 '실전 그림 그리기', 5부'대화 완전정복' 등 자신의 글쓰기 환경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나 연필, 스마트펜, 해마다 업그레이드된다는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굳이 이런 것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딱히 쓸 얘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서른 살에 쓴 내 소설과 마흔여섯 살에 쓴 내 소설은 무척 다르다. 패기는 줄어들었지만 여유는 늘어났다. 형식적인 실험은 줄어들었지만 소설의 내용으로 하는 실험은 늘어나고 있다. 문장은 짧아졌고, 사람들의 대화는 부드러워졌다. 앞으로 나는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힘들고 막막하지만 앞으로 내가 쓸 소설이 기대되기도 한다. 나이만 잘 먹으면 글 같은 건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나이를 잘 먹어야만 글이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p.204)
'글을 쓰면서도 최대한 말에 가깝게 쓰고 싶고, 말을 할 때는 최대한 글에 가깝게 쓰고 싶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글을 잘 쓰거나 글쓰기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사람처럼 생각될 테지만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전에 '이러이러한 내용의 글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쓰고 나면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떡하니 올라 있는 경험을 수차례 반복하는 까닭에 '내 글은 왜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담지 못할까' 화가 나기도 하고 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끝끝내 쓰고 싶은 글의 롤모델이 어머니의 글'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글에는 맞춤법이나 문장은 엉망이어도 리듬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리듬을 찾는 게 글쓰기의 완성'일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는 건 세상 속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불안정한 내가 타인으로부터 '너답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정표가 없는 삶의 행로에서 자신이 가야 할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글쓰기만큼 유용한 수단도 달리 없는 듯 보인다. 끝없이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함은 아닐까. 오늘은 입춘, 매운 바람이 불었고 천진한 나는 봄의 향기를 맡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