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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평점 :
지난해 여름이었던가 보다. 피서 겸 고민상담 겸 겸사겸사 찾곤 하는 강원도 한 사찰의 스님께 어쭙잖은 질문을 드렸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사건의 전말인 즉,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떠도는 '미니멀 라이프'나 '내려놓기', 혹은 '소박한 삶'이나 '비우는 삶' 등에 대해 스님은 어찌 생각하느냐 여쭈었던 것인데 살면서 집착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대답과 함께 이러이러하게 살아라 하는 충고의 말씀이 돌아오리라 기대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정색을 하고 나무라시는 스님 말씀에 나는 일순 어찌할 줄 모르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었다.
스님 말씀인 즉 '속가인의 삶과 종교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방향에 있어서는 극과 극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육체가 음식을 통하여 에너지와 활력을 얻듯 우리의 영혼은 욕심을 통하여 에너지를 얻는 법이라며 다만 속가에서는 삶에 필요한 돈과 재물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을, 출가인은 속가에서 배웠던 욕심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버리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며 그런 것들이 개인의 영혼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재물에 대한 큰 욕심이 없거나 그만 한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 어쭙잖게 욕심을 내려놓게 되면 영혼의 에너지만 고갈되어 절망과 우울감 속에 빠지게 된다는 충고와 함께 현대인의 병은 주로 그런 절망감에서 비롯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반면에 수도자는 집착과 욕망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버리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기를 염원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이쯤이면 된 게 아닌가 하는 판단에서 자신의 원(願)을 내려놓으면 그 순간 영혼을 지탱하던 삶의 동력을 잃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속가인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수도자는 속가에서 배웠던 욕심을 내려놓고자 하는 갈망으로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우며 속가인이 출가도 하지 않은 채 수도자의 삶을 모방하거나 출가인이 파계도 하지 않은 채 속가의 삶을 탐하게 되면 탈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말씀하셨다.
이해인 수녀님의 <기다리는 행복>을 읽으며 나는 그때의 일을 곱씹어 생각했다.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하여 1968년 첫 서원 이후 일 년간의 일기가 수록된 이 책은 1부 '일상의 행복', 2부 '오늘의 행복', 3부 '고해소에서', 4부 '기다리는 행복', 5부 '흰구름 러브레터', 6부 '처음의 마음으로 -기도 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녀님이 쓴 시와 일상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해인 수녀님의 열혈 애독자는 대개 그렇듯 나 역시 1976년에 발간된 수녀님의 첫 시집 <민들레 영토>에서부터 수녀님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일상의 쉬운 단어들을 그저 평이하게 옮겨놓은 듯한 수녀님의 시는 이상하게도 수녀님의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믿는 종교의 수도자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순수한 영혼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수도자라는 이유만으로 내 인간적인 부족함과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벗이 되고 가족이 될 수 있는 특혜. 오랜 세월 시를 쓰는 덕분에 모르는 이웃을 많이 알게 되고 때로는 가족 못지않은 우정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신비. 이 모두를 선물로 받아 안으며 나는 새삼 행복하다. 사랑받는 그만큼 더러는 오해도 받고 구설에 오르고 예기치 않은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없진 않지만 이미 내가 받은 선물만으로도 나는 모든 어려움조차 축복으로 받아안으리라 기쁘게 다짐해본다." (p.203)
1, 2, 3, 4부가 수녀님의 일상과 사물에서 얻은 지혜의 글이라면 5부는 편지 글들이 모아져 있다. 법정 스님이나 박완서 작가,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런 저런 사연으로 알게 된 사람들의 편지. 그 중에는 탈주범 신창원의 편지도 있다. 이와 같은 편지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수녀님의 글을 좋아하는지, 수녀님의 글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조금쯤 알 것 같기도 하다. 수녀님의 글이 수도자로서의 한 차원 높은 곳에 있지 않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구분이 없는 것이다. 1968년 5월 23일에 첫 서원을 하여 2018년 5월 23일이면 수도서원 50주년이 된다는 수녀님. 1969년 4월의 어느 날에 쓴 수녀님의 일기는 다음과 같았다.
"본당 미사에 가는 길. 라일락이 많이도 피었다. 때가 되면 자기를 꽃피우고 또 때가 되면 살며시 자신을 감추는 그 온갖 식물들은 얼마나 정직한 것일까. 해가 좀 길어진 것 같다. 주일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내 영신 생활이 윤택하도록 기름을 부어주어야 한다. 스크랩북 위한 신문을 좀 오리고 조금 쉬었다. 참된 예술인이 되고 싶다. 창조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p.383)
여전히 바람이 차다.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지만 우리가 죽음을 잊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삶이 목표가 아닌 과정을 즐기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해 배우고 익힌다. 그러나 목표만 중시했던 사람은 별 탈 없이 평생을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되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 나는 수녀님의 기다림 속에서 그것을 배운다. 스님은 내게 죽기 전까지 욕심을 부리라 했다. 다만 타인의 삶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리 하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지혜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며 이웃을 돌아보는 지혜, 나는 그것을 배우기 위해 쉼 없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