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우리는 무척이나 정이 많고 순박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죠. 몰강스러운 세상을 향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거리낌없이 표출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와는 많이 달랐던 듯합니다.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분노는 단지 안으로만 삭일 뿐이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지요. 가파른 산과 산 사이를 이따금 덜컹거리며 열차가 오갔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그 열차를 타고 오갔던 건 아니지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도시의 소식들이 열차에 가득 실려 있다고 믿었던 듯합니다. 철길로부터 먼 산비탈의 밭에서도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오가는 열차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달리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누군가의 기다림에 답을 주려는 듯 열차 안의 승객들 또한 열차 밖 사람들을 향해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열차 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향해 그윽이 커지다가 산 너머로 아스라히 멀어질 때까지의 그닥 길지 않은 시간이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마치 영원처럼 아득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리움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주관적인 어떤 계기로 인해 그리움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치환될 때 우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상상의 세계로 도약하곤 합니다. 불가능이 없는 상상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마을 입구의 신작로에는 하루에 서너 번 버스가 오갔습니다. 버스가 지날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일고, 동네의 꼬마녀석들은 버스를 쫓아 한동안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 많은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말이지요. 열차가 지날 때처럼 어른들은 저만치 먼 발치에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버스도, 열차도 닿을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인 양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멀지도 않았던 시절. 그러나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과거는 가깝든 멀든 그냥 다 같은 과거일 뿐 몸에 착 붙은 옷감처럼 그 감촉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지요. 50대의 어느 배우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홀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추억 속 앨범을 펼치듯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풍경이었습니다. 겨울 오후의 순한 햇살이 이제 막 산을 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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