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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밀리언 특별판) -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이나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지만 책을 쓴 저자는 이러한 독자들의 생각을 전해들었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일까? 아무리 하찮고 어리석은 생각일지라고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오롯이 독자의 권리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의도했던 주제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생뚱맞은 견해를 제시했을 때에도 말이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Stuart Diamond) 교수가 쓴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를 읽고 난 후 나의 느낌은 뭐랄까, 다소 엉뚱한 것이었다. 변호사와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협상 전문가로도 널리 알려진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효과적인 협상 전략과 수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협상 상대방으로 이끌어내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협상의 속성과 기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내게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누구나 협상 전문가가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정말 평화로운 곳이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협상에 필요한 여러 방법이나 기술은 차치하고라도 저자는 협상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 즉 사람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고 꾸준한 연습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저자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었다.
"협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의사소통의 실패다. 그리고 의사소통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식의 차이다. 그렇다면 인식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관심사와 가치관 그리고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인식 체계에 맞지 않는 정보들은 무시한다. 그리고 협상을 할 때 자신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기억한다. 인식 차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그래서 인식 차이가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p.67)
책의 구성은 Part 1 '통념을 뒤엎는 원칙들', Part 2 '원하는 것을 얻는 비밀'로 비교적 단출하고 명확하지만 제1강에서 제16강에 이르는 그의 강의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협상에는 언제나 협상 파트너가 있게 마련이고 때에 따라서는 제3자가 개입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협상 전략과 협상 내용을 구비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의도했던 성공적인 협상으로 이끌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 목록만 보더라도 저자가 어떠한 관점으로 협상을 이해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하지 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이와 같은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협상은 줄곧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이루어진다. 그러자면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사람의 시각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는 일시적 만남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라도 그 사람에게 정성을 들이면 장기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풍부한 인간관계는 삶에 더 많은 것을 안겨준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보고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하는 대로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나누어라. 그러면 평생에 걸쳐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p.313)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배려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의례적이거나 통상적인 그것과는 구별된다. 내게 손해가 되지 않는다면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배려하는 사람에게 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오로지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관찰하여야 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말하자면 감정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만큼의 정신적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가 있지만 지난 정권의 대통령조차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하기를 '우리 편을 뽑아라'고 했다지 않은가. 국민 전체를 아우를 책임이 있는 대통령조차 내편, 네편으로 편가름을 할 지경이니 일반인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단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나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조차 진심을 다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내가 서두에서 이 책을 읽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협상 전문가가 된다면 세상은 정말 평화로운 곳이 될 거라고 말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협상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내 말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것도 협상이요, 배우자를 설득하는 것도 협상이다. 우리는 협상 없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협상에 번번이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협상에 실패하고도 기분이 좋다고 말할 사람도 물론 없을 것이다. 실패한 협상을 이끈 두 사람이 협상 후에도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협상의 실패는 세상을 갈등과 긴장 국면으로 이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건 결국 상대방을 이기는 게 아니라 나를 이기는 것은 아닐런지. 한 해를 마무리짓는 이맘때면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올 한해 나를 이기는 일에 얼마나 소홀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