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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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대체로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될 때 나는 조금 슬프다. 그렇지 않은 어떤 것, 세상의 평범에서 슬쩍 비껴선 어느 별종, 다름에 이르기 위한 저만의 과정에 있는 어느 주체, 그의 자존심, 그의 별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평범을 거부하는 어느 소수자의 몸짓이 때로는 딱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 자체를 숫제 지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대체로 그렇다.'고 누군가 말해버린다면 그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노력마저 허사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생계형 서평가 금정연의 글은 왠지 짠하다. 2010년 초봄,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며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책을 읽지도 못한 채 책과 싸우는 날들을 거듭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저자. 8년차 프리랜서인 그의 세 번째 서평집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는 글쓰기 책은 아니다. 전문 서평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인 동시에 생계독서가인 그의 눈에 띄었던 34개의 멋진 문장을 그의 삶에 견준 책이다.

 

"나는 서평가, 다른 이들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 서평은 한 권의 책이 아닌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혹은 둘. 셋. 어쩌면 다섯.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뭐라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거나, 리처드 웬트워스의 말처럼 마음에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문장이거나, 이 책은 그렇게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p.10)

 

저자가 건져올린 하나의 문장은 베르나르 키리니의 단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나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장 그르니에의 '섬',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찰스 부코스키의 '글쓰기에 대하여'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가 발견한 멋진 문장에 감탄하기보다는 그 문장에 슬몃 끼어든 저자 자신의 이야기(때로는 푸념)에 더 눈길이 간다. 저자에 대해 그저 '찌질하기는...'이라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웬지 모를 우월감에 우쭐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썼던 폴 오스터의 에세이를 생각할 때 저자 또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저자의 사정을 무작정 딱하게만 여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생각했다. 그들 앞에 하얗게 쏟아지던 '만나'를 생각했다. 창밖에는 올겨울의 첫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직도 내겐 도망쳐야 할 거리가 남아 있는 모양이라고. 써야할 서평이, 글들이 좀 더 남은 모양이라고. 나는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게을렀고, 내가 게으른 한 앞으로도 적지 않은 불편함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p.235)

 

글쓰기를 그만두는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건 심장을 파내어 변기에 넣고 똥과 함께 내려버리는 것과 같다면서 자신은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일흔 살의 노장 찰스 부코스키의 말을 새삼 인용할 필요도 없이 금정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사는 모습은 '대체로 그렇다.'의 편에 선 다수의 사람과 흔적이나 자취마저 쉽게 지워지는 소수의 몸짓으로 구성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놓고 읽던 책들을. 나는 기억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새 글을 쓰고 맞던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원고료를. 그때 나는 평생 이렇게 먹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이해해보려 했던 것을." (p.220)

 

요 며칠,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이 한낱 문학적 수사에 그치는 말이 아님을 실감하였다. 설마 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거리를 좁혀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전까지 우리는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 차도 없이 외출을 했던 나는 '더위 때문에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 굶는 한이 있어도 글 쓰는 재미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가 체감했던 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우리가 들었던 사실은 '설마'이거나 '대체로 그렇다'로 나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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