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의 습기가 말라가는 동안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말매미 소리만 가득했다. 때로는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를 잠재움으로써 새로운 침묵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말매미 소리만 요란한 고요. 열대야로 연일 잠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그 고요 속으로 자신의 밀렸던 잠을 슬몃 들이밀었는지도
모른다. 한껏 드높았던 인간의 힘이 이렇듯 힘없이 수그러드는 날에는 자연의 범주에서 인간만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연의 뜨락에서 멀리
밀려난 듯한 인간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추레한 인간을 구제하는 것은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가교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자연과의 친화를
영원히 포기했을런지도 모른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간과 자연의 순리를 끝없이 되내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 속한 인간 존재의 자각을 선명히
드러내곤 한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문학상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사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최근 도서출판 현암사에서 출간된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는 각종 문학상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대담을 책으로
엮은 대담집으로서 대담집 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노밸문학상, 맨부커상, 콩쿠르상, 퓰리처상, 카프카상, 예루살렘상,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이렇게 여덟 개 문학상을 다루었는데, 일본 책인 만큼 일본의 문학 교수와 평론가, 작가, 번역가 등 14명의 대담자가
등장한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상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교수인 도코 고지는 각각의 문학상에 모두 참여하였고, 다른 두 명의 대담자는 문학상마다 다르게 편성되었다. 이를테면
노벨문학상에는 도코 고지와 나카무라 가즈에, 미야시타 료가 참여하였고, 아쿠타가와상에는 도코 고지, 다케다 마사키, 다키이 아사요가 참여하는
식이다. 대담에 참여하는 세 명의 대담자는 수상작 한 편씩을 집중적으로 논의함으로써 모두 24편의 소설을 다루게 된다. 대담자들은 수상작을
논의하기 전에 각각의 문학상에 대한 성향을 다루면서 독자의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상자 중 고령자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이 수상했을 때 "죽기 전에 줘야지 싶었겠지요"라는 코멘트를 한 것처럼 연령이 높을수록 받기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의 주요
언어밖에 못 읽는 사람이 선정 위원이기 때문에 그 언어로 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또 북유럽 출신이라면 더욱 유리합니다."
(p.20)
흥미로웠던 것은 맨부커상에 대한 대담자들의 평가였다. 선정 위원의 구성이 문학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종사하는 이들로 구성된다는 점과
선정 위원들이 매년 교체된다는 점, 각각 100권이 넘는 후보작 전체를 읽고서 수상작을 선정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인다는 것이었다. 한 작가가 여러
번 수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살만 루슈디,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존 쿳시 등이 수상한 맨부커상의 수상작은 문학성에 재미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일본의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대표한다고 인식되는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에 대한 대담자들의 평가는 신선하다. 사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 문학계의
신인상으로서 문학계에 데뷔하는 정석 코스의 마지막 단계가 아쿠타가와상 수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선언과도 같다. 반면 나오키상은 중견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으로서 어느 정도 예술성을 인정받고 인지도가 있는 작가의 대중적인 소설에
주어진다. 이쿠타가와상이 '유럽 문학처럼 쓴 일본 문학'이라면 나오키상은 '아시아에서 본 일본'이라는 관점이 반영된 작품이 많다는 평가와 함께
대담자들은 '아시아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유럽의 일부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망상을 꼬집기도 한다.
책은 이들 문학상에 더해 문학과 음악, 보도 부문을 아우르는 퓰리처상(미국),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작품 '해변의 카프카'로 수상한
바 있는 카프카상(체코), 2009년 하루키의 수상 연설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예루살렘상(이스라엘), 1903년에 제정된 콩쿠르상(프랑스)을
다루고 있다.
"퓰리처상이란 미국의 문학상으로, 아마 일본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상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상인지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걸요(웃음). 왠지 모르게 유명하고 번역서의 띠지에 '퓰리처상 수상'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기도
하지만요." (p.202)
대담은 문학상에서 그치지 않고 문학상과 인연이 없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 다섯 번이나 이름이 올랐지만
매번 상을 놓쳤던 조이스 캐롤 오츠,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상 실적이 없는 폴 오스터 등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해 우리나라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하여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덕분에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등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고, 여타의 다른 한국 소설들이 모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순간에 그치는 관심은 한국 문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지 못한다.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는 사실
문학상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의 소설에 대해 문학 전문가들이 펼치는 깊고 풍성한 이야기 한마당이다. 그럼에도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지 않은가 싶다. 문학상 수상 작품과 여러 수상작가들에 대한 지식의 폭이 넓은 대담자들에 비해 나를 비롯한
일반 독자들의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상이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격이 높아진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은 결국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그것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고은 시인의 노벨상 수상을 바라면서도 정작 고은 시인의 시는 읽지 않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태도를 감안할 때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쾌거'라고 확대 해석할 게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문학 볼모지에서 태어난 한 작가의 지난한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것도 결국 그 나라의 독서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문화는 사회 전반을 아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