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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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가족소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작가가 어깨의 힘을 반쯤 뺀 상태로 쓴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글을 통하여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거나 우쭐해하고 싶은 욕심을 절반쯤 내려놓았다는 얘기다. 글을 쓰는 작가가 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건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여타 작가들의 초창기 작품을 읽어보면 '잘 써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채 글을 쓴 탓인지 책을 읽는 독자가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져 어깨가 뭉치는 느낌이 든다. 가독력도 떨어지고 말이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욕심을 내려놓은 채 글을 쓰면 작가 스스로도 글을 쓰거나 퇴고를 거듭하는 과정을 지겹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즐기게도 된다. 노동이 아니라 유희가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글을 쓰는 일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쓴 글은 그것을 읽는 독자도 배시시 웃음을 머금을 수 있게 된다.

 

"아내는 계속 깔깔 웃어댔다. 아내의 그 웃음은 뭐랄까, 정말이지 나를 자꾸 내부 지향으로 만들어가는, 편안하고 적나라한 웃음이었다. 그냥 한번 웃고 마는 것. 아내의 장기주택저축을 지켜주는 것, 계속 방귀대장 뿡뿡이의 연인이 되어주는 것. 그것과 머리칼을 바꾼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게 만드는 웃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클클 함께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나와 함께 웃고 있는 이 사람은 특이한 거 좋아하는 여자가 된 게 맞으니까. 그거면 다 된 거니까."    (p.26~p.27)

 

아무튼 이 책은 가족을 소재로 쓴 가족 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슬쩍 덧칠하여 썼으니 소설이 맞긴 하지만 '가족 에세이'라고 해도 과하지는 않을 듯하다. 2011년부터 한 월간지에 '유쾌한 기호씨네'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했다. 원래는 삼십 년을 연재 시한으로 삼고 시작한 글이 채 사 년을 채우지 못했던 까닭은 세월호 사건 때문이었다고 했다. 둘째 아이의 생일이 4월 16일이란다.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에 실린 44꼭지의 글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p.246~p.247)

 

아내와 애 셋 딸린 가장은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또는 세 명의 아이들의 아빠로서,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아들이자 사위로서 실수도 많고 바라는 바도 많겠지만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한 듯 보인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낮에는 합기도 체육관에서 밤에는 동네 카페 2층의 '사자소학' 교실에서 문무(?)를 갈고 닦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그 언저리에서 맴돈다.

 

2016년의 꼭 이맘때쯤이었다. 나는 이기호 작가의 소설 <사관 잘해요>를 읽고 리뷰를 썼었다. 그리고 딱 1년 후에 나는 다시 그의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쓴다.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만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디 가족뿐이랴. 내가 사랑하는 모든 대상이 한 편의 소설이자 삶의 감동인 것을. 세월이 흘러 나나 당신의 사랑하는 대상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때 우리의 소설은 어떤 추억으로 쓰일 것인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소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갈무리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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