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의견이 달라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써내려간 그런 내용의 글을 읽을라치면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단 한 번뿐인 삶,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강명 작가와 같은 희귀종, 또는 별종을 만나면 왠지 존경스러운 마음보다는 '설마 이거 레알?' 하는 의심부터 드는 것이다.

 

'댓글 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으로 이미 베스트 셀러 작가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장강명의 에세이 <5년만에 신혼여행>은 개인보다 가정을 앞세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케케묵은 관습을 과감히 박차고 나가 자신의 소신대로 살고 있는 작가의 리얼 스토리를 다룬 책이다.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 계열의 건설회사에 취직했다가 1년 뒤 기자로 전향했다. 10년 남짓 기자생활을 한 그는 그마저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 책은 저자와 그의 아내가 결혼한 지 5년만에 떠난 보라카이 신혼여행기다. 3박 5일간의 여행 이야기이지만 톡톡 튀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책은 2001년 초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나 2년 남짓 연인으로 지낸 HJ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2004년 HJ가 시민권 취득을 목표로 호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갑자기 헤어져 연락처도 모른 채 지내다가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으로 "평생을 기다릴 수도 있어"라는 작가의 고백 덕분에 다시 장거리 연애에 돌입, 2008년에 귀국한 HJ와 1년 남짓 동거를 했고, 2009년 여름에 결혼식은 생략한 채 혼인신고를 했다. HJ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부모님과 연락을 끊었고 결혼식은 포기했다. 대신 두 사람의 이름과 함께 결혼을 하니 축하해달라는 신문광고를 작게 냈다.

 

명절에는 작가 혼자 부모님 댁에 가고, 집 현관에는 '효도는 셀프'라는 글귀를 붙여 놓았다. 아이를 낳지 않고 둘이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정관수술도 받았다. 작가는 자신이 그간 살아온 궤적과 세상을 대하는 가치관,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까지 솔직하고 거침없이 쏟아낸다. 신혼여행도 신혼여행이지만 이 책은 오히려 신혼여행기를 빙자한 장강명 작가의 인생 에세이로 읽힌다.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서 잘 살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는 신촌의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받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심이 흔들릴 게 두려웠다. 비뇨기과 의사가 "자녀는 몇 분이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p.15)

 

아내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준비한 보라카이 3박 5일의 신혼여행은 기대와 다르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공항에서 6시간이나 지체되었고, 리조트의 방은 1층에 전망도 안 좋은 데다 시끄럽기까지 했다. 피곤이 쌓인 부부는 결국 부부 싸움을 크게 벌이기도 한다.

 

"우리는 우연의 허락을 받고 사귀게 되었다. 그런 결론에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이 결론에 따르면 우리가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 보라카이 해변에서 부부 싸움을 벌인 것도 운명이 아니다.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우연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 우연은 아무리 연이어 일어나봤자 우연의 연속일 따름이다. 거기에 의지가 섞여 들어가야 운명이 된다."    (p.142)

 

작가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가감없이 쓰고 있다. 그것은 가볍다기보다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하는 느낌의, 관습이나 규범, 예절 등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다를 뿐이라는 시각으로 읽힌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40대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이고, 비록 작가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허구에 대해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존재다. 심지어 나는 그 일로 돈을 벌려 하고 있다. 허구는 익사에 대한 공포와 수면 위로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바닷물이자 산소통 그 자체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p.237)

 

나도 이따금 아직 이루지 못한 여행에 대한 간절한 열망으로 들뜨거나 가까운 과거의 지난 여행에 대해 회상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다녀온 여행지에서는 늘 예외나 우연이 길에 버려진 비닐봉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떠다녔다. 여행에서 예외나 우연이 일상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게 한결 편해질지도 모른다. 작가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느껴보는 자유가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들을 불러냈을 것이다.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소신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들로만 삶을 구성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이따금의 여행을 통해 소신이 개입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나의 삶 속에 슬몃 밀어넣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소신을 넓혀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