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가의 자질 중 밑바탕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인간에 대한 편견이나 자기 주장이 없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관대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예컨대 자기 기준에 빗대어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한다면 그(또는 그녀)가 쓰는 소설의 인물들은 지극히 편협하거나 평면적인 소설이 되고 말 것이다. 소설가 자신이 사회 경험이 풍부하거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의 교류가 있어 왔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편협함이 희석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선천적이거나 지극한 자기 수련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소설의 리얼리티도, 처음 몇십 페이지로 신용을 얻을 수 있다면 나중의 백 페이지는 무엇을 쓰든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나서는 인간을 쓸 때 절대로 편 가르기를 하지 않습니다. 남자니까, 여자니까, 젊으니까, 늙었으니까, 경찰관이니까, 학교 선생이니까, 하는 편 가르기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전부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p.140)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버라이어티>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의 구성은 참으로 다채로워서 '역시 오쿠다 히데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버라이어티>에는 주제와 길이도 제각각인 단편소설 6편과 대담 2편, 월드컵 축구 관람기가 실려 있다. 연작 단편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 15년간 다닌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광고 기획사를 차린 38세의 사장 나카이 가즈히로가 세상과 타협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조금이라도 악의를 품으면 밑에 있는 자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유명한 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당연한 것을 몰랐다. 어쩌면 자신을 원망하는 업체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밟고 선 자는 밟힌 자의 고통을 모른다. 가즈히로는 자신의 부족한 상상력을 잘 알게 되었다." (p.58)

 

단편 '드라이브 인 서머'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남편 노리오가 아내 히로코에게 운전을 맡긴 채 가는 혼잡한 귀성길에서 겪는 한바탕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어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한참 읽다 보면 작가가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위트와 유머를 섞어 조금 과장되게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내 히로코는 그들의 7인승 벤츠에 다양한 사람들을 태운다. 히로코에게 추파를 던지며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 청년, 자신만 빼고 해외 여행을 떠난 것에 격분하여 며느리 욕을 쏟아내는 할머니, 에어컨도 없는 낡은 차에서 옮겨 탄 장난꾸러기 아이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식칼을 들고 뛰어든 사내 등.

 

"탤런트 위주의 드라마나 플롯이 탄탄한 소설도 좋지만 저는 인간의 애매함, 해학 같은 디테일을 섬세하게,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리는 소설을 더 쓰려고 합니다." (p.265)

 

남편의 폭력과 자신이 진 과도한 빚으로 인해 어린 아들과 함께 도망쳐 나와 아타미 역 근처의 식당에서 위장 취업을 한 에이코. 말벗도 없이 늘 질책만 당하는 교코. 어느 날 식당에 찾아온 두 명의 형사에 의해 옴 진리교의 특별수배범을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교코가 체포되고... 에이코 또한 노심초사한다는 내용의 '더부살이 가능'과 남자 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밖에서 보내겠다고 하는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의 내적 갈등을 그린 '세븐틴', 그리고 보조바퀴를 떼어 낸 두 발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고 싶어 하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 마사오의 이야기를 그린 '여름의 앨범' 등 이 책에는 작가가 쓴 다양한 주제의 단편이 실려 있다. 특히 '여름의 앨범'은 '작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두 인물인 배우 '잇세 가타'와 각본가 '야마다 다이치'와의 대담도 흥미롭다. 작가는 자신에게 있어 창작의 근원은 집단 속에서 느끼는 '위화감' 또는 '소외감'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일은 '동료를 찾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자신을 찾는 게 아니라 '동료를 찾는 것'입니다(웃음). 웃음도, 분노도, 수치심도 천양지차입니다만 어딘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글을 써서 발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서 특히 이 부분은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는 듯한 반응의 편지를 받으면 정말 기뻐요. 아아, 쓰길 잘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죠." (p.261)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 '위화감'이나 '소외감'이라는 말에 백번 천번 공감이 간다. 소설가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관찰자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고독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각각의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자발적 고독이야말로 소설가를 소설가답게 하는 그들의 정체성인 셈이다. 자신의 기준에서 볼 때 속이 터지는 어떤 인물을 만났을 때 충고를 통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변화를 유도하거나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또는 그녀)는 결코 소설가가 될 수 없다. 편견 없이 관찰한다는 것, 제삼자의 입장을 견지한 채 그저 바라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처럼 성마른 놈이 소설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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