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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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광지역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을 거의 다 마친 그해 겨울방학이었다. 아버지의 지나친 음주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뛸 듯이 기뻤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를 남겨둔 채 나만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 한 구석을 묵직하게 짓눌렀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6년에 중학교 2년을 더해 도합 8년의 시간을 나는 강원도의 탄광 지역에서 보낸 셈이었다. 석탄 산업이 번성하던 당시의 탄광지역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렇게 친분도 없이 모인 사람들은 사택이라는 주거지에 둥지를 틀었다.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회색 슬레이트 지붕과 엉성하게 쌓아 올린 시멘트 벽돌집은 검은 탄가루와 함께 탄광 지역을 대표하는 흔한 풍경이었다. 무채색의 우중충한 공간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탄광 지역의 모습이었다.

 

단칸방의 좁디좁은 공간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복작거리는 틈바구니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했다. 탄광촌의 학교는 아이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북적거리던 탄광 지역은 한순간에 유령 도시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갔고 빈집들은 늘어만 갔다. 적어도 그곳에 폐광지역의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명목으로 카지노 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도시였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무코다 이발소>를 읽으면서 감회가 남달랐던 까닭은 나의 유년기가 소설의 배경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그의 작품 '공중그네'나 '남쪽으로 튀어'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유쾌발랄한 문체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위트와 유머는 이 책에서 보여지지 않지만 작가는 쉽고 사실적인 문체로 마치 쇠락해가는 한 마을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그리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에너지 정책이 석유로 전환된 데다 외국에서 싸게 들어오는 석탄 탓에 경쟁력을 잃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야스히코의 소년 시절은 고스란히 그 쇠퇴기와 겹쳤다. 탄광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덩달아 반 아이들도 전학을 갔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통폐합이 잇달았다. 타계책으로 영화제를 유치하고 레저 시설을 조성하는 등 관광산업에 힘을 쏟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p.12)

 

이야기는 일본 북쪽의 홋카이도 산간 지방 도와자와면에서 시작된다. 올해 쉰세 살의 평범한 이발사 야스히코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후 부부 둘이서 25년째 무코다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그에게는 도쿄에서 의류 회사에 다니는 맏딸 미나와 삿포로에서 대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한 아들 가즈마사가 있다. 취직을 한 지 1년 남짓한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며 귀향을 선포하는 바람에 야스히코의 고민은 깊어진다. 젊은 사람은 모두 도시로 떠나는 마당에 거꾸로 귀향을 하겠다는 아들의 결정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는 쇠락해가는 고향 마을의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둘 풀어놓는다. 고향을 떠난 사람과 고향을 지키는 사람 사이의 현실적인 장벽과 거리감, 부모 세대의 노인들만 남은 고향 마을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뻔히 보면서도 부모를 곁에서 모실 수 없는 자식들의 죄의식, 객지를 떠돌다 상처를 입고 귀향한 고향 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 등 우리도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작가는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나도 도시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도마자와는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삶이 없는 곳이니까 말이야. 다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보니 뭘 해도 다 알려지고. 게다가 한 번 잘못하면 평생 얘깃거리가 되고. 그러나 숙명이다 여기고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이스케, 농사 그만둘 건가? 그럴 수 없겠지. 도마자와를 떠날 건가? 그럴 수 없겠지. 그럼 훌훌 털어버리자고. 모두가 한 연못 안에서 똑같은 물을 먹고 살고 있어. 그게 도마자와야." (P.164)

 

늦은 나이에 중국인 신부를 맞은 다이스케가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스히코의 친구인 세가와가 한 말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시골의 작은 마을일수록 개인의 비밀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이 이웃 간의 훈훈한 정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왕래가 잦은 시골 마을의 풍경은 도시의 익명성에 젖은 도시내기들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문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좋지 않은 소식은 지울 수 없는 큰 흉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도 히로오카의 아들 슈헤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범죄를 저지르고 지병수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동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는 슈헤이에게 했던 말을 아버지 야스히코에게 전한다.

 

"우리가 슈헤이 선배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아직 살 인생이 많이 남았으니까 차라리 도마자와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그야 뭐 삿포로나 도쿄 같은 도시에 살면 주위에서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이 살기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친해지거나 여자를 사귀게 되면 피치 못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데, 숨기는 일이 있으면 사람과의 교제를 피하게 될 테고, 또 괴로울 테니까 ……. 그렇다면 차라리 다들 얼굴을 아는 도마자와에 돌아와서 지내는 편이 마음 편하지 않겠느냐고요. 과거를 알아도, 그래도 동네 사람들끼리는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형기를 마치면 죗값을 치른 거니까, 우리는 받아들일 거예요." (P.312)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의 작은 탄광 마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카지노 시설과 스키장 조성으로 마을은 오래전에 관광지로 변했지만 말이다. 개중에는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를 운영하거나 유흥점을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순수했던 어릴 적 모습을 찾아내지 못한다. 세월이 바꿔놓은 풍경은 쓸쓸하기만 하다. 놀러 오면 술 한 잔 거하게 사겠다는 그들의 제안이 그닥 반갑지 않은 것은 나도 또한 세월의 변주에 쉼 없이 변했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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