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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ㅣ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들었던 어른들의 많은 잔소리 중 몇몇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세상 풍파를 겪은 후에나 비로소 조금씩 이해가 되곤 한다. 그러니까 그 말들이 완전히 다 이해가 되기 전까지의 긴 시간 동안 잔소리를 했던 당사자는 줄곧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 내지는 사리분별을 못하는 잔소리꾼이라는 누명을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잔소리를 했던 당사자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물론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의문의 일 패'를 당한 셈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또한 손자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만큼 잔소리도 많으신 분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의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곁에 가는 것조차 꺼려했지만 손자들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깊으셨던지 이따금 맛있는 거라도 생길라치면 당신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손자들 먹일 생각에만 몰두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형제에게 떨어지는 벼락같은 호통이나 잔소리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예컨대 "문지방을 밟지 마라. 복 나간다."거나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는 흔한 잔소리에서부터 "생고구마는 먹지 마라."와 같은 가끔씩 듣는 말까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할머니의 잔소리는 끝이 없이 계속되었다.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었다. 아이들의 걸음에는 높다 싶게 느껴졌을 문지방을 혹여라도 손자들 중 누군가가 밟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판이니 할머니는 늘 노심초사 가슴 졸이며 살필 수밖에 없으셨을 텐데 그때는 왜 그런 걸 몰랐을까. 그런 마음은 보이지 않고 잔소리만 쟁쟁 귀를 어지럽혔을까.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한다는 작가 백영옥도 애니매이션 영화 '빨강머리 앤' 50부작을 보면서 어렸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왔을 것이다. 이 책의 출발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상대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 그것을 우리는 '역지사지'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것을 공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빨강머리 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마릴라를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냉정하고, 차갑고, 엄혹한 그녀의 고집이 싫어서 그랬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을 긴 세월에 걸쳐 보다 보니 이제 마릴라의 마음이 눈에 들어온다. 만약 내 아이가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p.131)
나는 사실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매이션 '빨강머리 앤'을 띄엄띄엄 본 적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고,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원작을 읽어본 적도 없다. 그런 까닭에 내가 알고 있는 '빨강머리 앤'은 누군가로부터 들었거나 어느 책에서 대강의 줄거리를 읽었거나 하는 수준의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백영옥의 이 책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난 지금, 작가처럼 애니매이션 50부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꼼꼼히.
"슬픔을 슬픔 이외의 것으로 뒤섞지 말아야 한다. 슬픔을 분노로 바꿔 왜곡시키면 스스로 애도의 시간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외로움을 배고픔으로 착각해 폭식하거나, 우울을 우울의 증상인 단순한 수면장애로 오해해 방치하면, 우리는 점점 더 깊이 병든다. 슬픔은 제대로 다뤄졌을 때에만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진다." (p.199)
현 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건 작가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글로 썼다는 것을 의미할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지 않은 사람이 읽어서는 도무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도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백영옥의 이 책만 하더라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사람에게는 조금 어렵다 싶은 내용의 글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독자를 영화 등급처럼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식으로 연령을 제한할 수는 없겠지만 젊은 독자들에게는 이따금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유보된 앎'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빨강머리 앤'을 보면서 그랬던 것처럼.
"문득 인생의 절정이 놓여 있는 순서를 바꾸고 싶단 생각을 한다. 계절의 순서, 나이를 먹는 순서, 요일의 순서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을 말이다. 그것이 도무지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자꾸만 이런 엉뚱한 상상들을 하게 된다. 빨강머리, 내 안의 오랜 소녀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p.319)
지난밤에는 눈이 제법 내렸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이른 새벽에 나는 언제나처럼 산을 올랐다. 그러나 어둠이 걷힌 아침나절, 출근 차량이 속도를 내는 아스팔트 대로에는 시커멓게 변한 눈석임물이 인도를 걷는 행인을 위협하고 있었다. 에일 듯 차가운 바람이 이따금 날리는 눈발과 함께 도시의 살풍경을 펼쳐내고 있었다. 외투 깃을 곧추 세우고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는 이런 날 , 어렸을 적 보았던 '빨강머리 앤'의 추억은 주머니 손난로보다 더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