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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바보 - 대양 육대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대화
오소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외양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우리가 짓는 마음의 결은 국적을 불문하고 서로 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나는 저으기 안심하곤 한다. 크게 복잡할 것도 없이 열 손가락만으로도 다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의 결들. 기쁨, 슬픔, 화남, 놀람, 공포, 혐오... 여행자는 기실 공간과 공간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디딤돌 삼아 삶의 또 다른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여행의 묘미이자 순리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그 마음결을 재차 확인하며 자신이 사는 이 세상에 대해 안심하는 것이다.
"유난히 사랑이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그곳 사람들이 더 많이 키스하고 포옹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이 울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물을 참는다는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일이다. 눈물을 잘 참는다는 것은 잘 억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울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p.200)
몇 해 전에 나는 심리학 서적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깊은 지식을 요하는 전문서적은 어려워서 읽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의 가벼운 책들만 주로 읽었지만 그때 내가 깨달았던 건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만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 단단했던 그때의 깨달음도 흐르는 세월에 풍화되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각성이나 깨달음은 오직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에서만 비롯될 뿐 책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은 유통기한이 명시된 그저 일시적인 '앎'일 뿐이다.
여행작가 오소희의 <사랑바보>는 예전에 읽었던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다만 김형경의 시선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었다면 오소희는 그녀의 시선이 타인에게 향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작가는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방식, 말하자면 사랑하는 방식을 진솔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여행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염려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기억엔 관심없어요. 언제나 현재를 살며 체험할 뿐이지요. 여행이라는 매우 강도 높은 체험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를 형성해줍니다. 열고, 뛰어들고, 함께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요. 기억은 결국 사라지지만 태도는 평생을 관통해 남아 있게 되죠." (p.38)
맞는 말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오직 지식에 의존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과 곁에 있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대부분이 여행을 즐겼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의 다양한 형태, 이를테면 모성애, 자기애, 동성애 등과 함께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남미로 가는 경유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중년의 동성애자와 남미에서 만난 유쾌한 레즈비언 등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세계 각국에서 만나는 청년의 사랑, 중년의 사랑,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났던 잊혀지지 않는 노년의 사랑을 작가의 편견없는 따뜻한 시선으로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부여한 아름다운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는 것과 동의어일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까르르까르르 박수를 치며 고맙다고 하는 것. 시간과 품과 진심을 내어주고도, 고스란히 받아주니 고맙다고 하는 것. 일 년에 한 걸음씩만 내딛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아 고맙다고 하는 것. 고맙다는 것의 참뜻, 아마도 그런 것인가보다. 다시 평범한 창밖을 보니, 온통 고마운 세상이었다." (p.265)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하지 않던가. 뭉근한 햇살 속에서 완만하게 변하는 겨울 날씨처럼 사랑은 그렇게 온유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면 당신의 삶은 안전할 것이다. 오늘 오전에 오는 20일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고별연설이 있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그가 임기말까지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받았던 까닭은 아마도 8년간의 임기 내내 미국인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만 명에 가까운 예술인들을 배제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는 격이 달랐던 것이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의 부인인 미셸 여사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먼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존경할 만하다. 사랑꾼 오바마의 연설문 일부를 인용해본다. “지난 25년간 당신은 나의 부인이자 내 아이들의 엄마이면서 가장 중요한 친구였다. 원치 않던 역할(영부인)이었지만 아주 우아하고 용감하고 폼나게 일을 해냈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든 사람의 장소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