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실제하는 현실과 그 순간에 펼쳐지는 자신의 생각이 별개의 세상처럼 분리되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마치 다중 우주론에서나 나오는 차원이 서로 다른 우주처럼 일상을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몸과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이제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동마저 사라진. 하루가 그저 무심하게 흐르고 나는 그 시스템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 그것에 대한 일체의 감정이나 느낌마저 사치인 양 치부되는 그런 삶. 그래서 더는 자신의 의견이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순응하며 사는 게 기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우리네 삶이라고 적당히 위로하는 그런 삶.
문득문득 나의 일상과 생각이 철저히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곤 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죠. 인지하지 못하는 삶에서 감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타인의 삶을 그저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지요. 이것이 어쩌면 애당초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기에 나는 상상 속의 삶과 현실의 삶을 철저히 분리한 채 살아왔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호불호나 선과 악 등 판단의 경계마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일상을 사는 나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가 일치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여행을 할 때입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기쁨과 감동이 샘솟듯 솟아납니다. 아마도 그것은 육체가 체감하는 현실과 마음 속 생각이 일치하는 데서 오는 벅찬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간순간을 인식하며 산다는 건 기쁨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멀뚱히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요.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그것을 체험하는 당사자에게는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순간순간 인식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삶이자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삶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읽는 여행기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는 여행에서의 체험과 그 순간의 생각들을 놓치지 않아야 하겠지요. 그렇게 기록한 순간순간의 감동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책을 일컬어 우리는 잘 쓰인 여행기라고 하겠지요. 대단한 풍광을 사진에 담거나 어떤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다고 해서 책을 읽는 독자가 감동하는 건 물론 아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소희 작가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무척이나 잘 전달하는, 말하자면 여행기에 특화된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오소희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그녀가 세 살배기 아들 중빈과 함께 터키를 여행한 후 썼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였습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퍽이나 놀랐던 것 같습니다. 세 살배기 아이를 안고 그 먼 나라까지 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대단하다는 느낌보다는 별 이상한 여자 다 보겠네,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터키를 비롯하여 아랍, 라오스, 아프리카, 남미 등 제3세계를 주로 여행하는 작가의 인생관과 교육관은 배울점이 많아 보였고, 그녀의 작품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이 되었던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순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나는 작가와 그녀의 아들 JB가 남미를 여행하고 쓴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을 읽었습니다. 남미 여행기의 1부에 해단하는 이 책에는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콜롬비아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그 속에서 느꼈던 작가의 감상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는 꿈을 소중히 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을 뿐이다. 꿈을 키워주는 곳과 싹을 죽이는 곳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끝까지 꿈을 놓지 않는 사람과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간절함을 꽉 붙잡고 있는 사람과 시간 속에 녹여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p.400)
터키를 여행할 때 세 살이었던 JB(중빈)는 이제 열 살이 되었고, 방문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엄마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대하고 불편함을 꿋꿋이 참아낼 줄 아는 든든한 여행 동반자로 성장했습니다. 여행 도중에 아이의 학교가 개학을 했는데 그때도 작가는 '여행을 계속하겠다'며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언제든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게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와카치나에서 만난 젊은 식당 매니저 훌리오의 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원시부족 마치겡가족의 일원인 훌리오는 계부의 폭력을 피해 17살부터 세상을 떠돌며 삶에 필요한 모든 것(언어, 음악, 미술 등)을 익혔던 사람입니다. 작가가 그에게 묻기를 '만약 당신의 아들이 당신처럼 어린 나이에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떤 말을 들려주겠는가' 물었을 때 그가 들려준 대답입니다.
"아들아, 인생을 살아가려면 균형이 중요하단다. 너무 선하면 안 돼. 때에 따라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너무 악해서도 안 돼. 때에 따라 베풀 줄 알아야 하니까. 사막의 사구를 보렴. 빛과 그림자가 만나 정확한 경계를 이루지. 여행이란 꼭 그 경계를 따라 걷는 일과 같아. 새로운 경험들에 도전하면서, 밝음과 어둠, 그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걷는 법을 배우는 거지.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단다. 네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지평을 말이야. 그러니 어서 떠나거라. 벌떡 일어나 걸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주먹질도 해. 다가올 일들에 너를 던져. 언젠가, 후우, 큰 숨을 내쉬며 마음의 평화를 느낄 때까지." (p.232~p.233)
여행지에서 JB는 길거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여 모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기도 하고, 엄마보다도 먼저 현지의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엄마를 지키기도 합니다. 여행은 아이에게 커다란 학교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고르게 놀리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토양을 만들어 주면 아이는 제 스스로 삶을 관리해 나간다"는 확고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듯합니다.
"제3세계를 주로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가난한 나라 가운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많은 이유는 소통과 배려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 혹은 돈으로 이용가능한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적은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뒤에 돈은 대단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보다 '감각적 만족'을 가져다준다. 행복과 감각적 만족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행복은 원초적인 것이고 감각은 말초적인 것이다. 모든 말초적인 감각은 한시적이다." (p.252)
그동안 집필한 책의 인세 절반을 제3세계 청소년 도서관을 세우는 데 기부하고 독자들과 책 보내기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는 작가는 이번에도 이 책의 인세 절반을 남미 볼리비아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은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여행을 지속해오면서 그때 그때마다 생각은 늘 바뀌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는 오롯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일치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7년 정유년 새해에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내기'보다는 '살아가는' 나날이 될 수 있기를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기원했습니다. 적어도 작가처럼 여행의 장도에 오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