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진다는 기상청 예보 때문이었는지 아침 산행길에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어제, 오늘 휘영청 밝은 달빛만 나의 곁을 지켜주었고 새벽까지 넉넉했던 달빛을 받으며 나는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유유자적 걸었던 것입니다. 모자와 장갑까지 중무장을 한 덕분인지 매몰찬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개활지가 나타날 때마다 산을 거슬러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겉으로 드러난 양볼이 얼얼해지곤 했습니다.
나는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겨울 산길을 좋아합니다. 오늘처럼 인적이 끊긴 산길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단골 산행객이라면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겠지요. 어둠 속에서 밝아지는 과거라는 그리움에 취하여 나는 이따금 나 자신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세월의 절벽에 자신의 몸을 묶어둔 채 지나가는 세월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 공기는 더없이 맑았습니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알싸한 추위도 싫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도무지 허방을 짚은 듯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죠. '내 인생은 이렇게 마냥 흔들리다가 마침내 끝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불현듯 들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보란 듯이 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논리 체계는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기계발서는 그와 같은 논리 체계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해석하려고 하지만 말입니다.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여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단순한 안부 전화라고 하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동생의 목소리에서 촉촉한 슬픔이 배어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타국 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동생의 아픔을 헤아리기 어렵겠지요. 오늘처럼 바람이 불고 갑자기 추워지는 날이면 어둠 속에서 보았던 과거의 그리움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됩니다. 오늘 뉴욕의 날씨는 '-5/1 °C, 흐림'이라는군요. 그리움의 온도는 날씨가 차가울수록 뜨거워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