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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은 다수의 편에 속한 인간들이 그곳에 속하지 못한 소수의 인간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우리는 소수자,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무수히 많이 듣고 자라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그것만큼 헛된 구호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다수의 편에 섰을 때의 편안함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소수지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한 적이 없으니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항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라는 변명은 나를 지키기 위한 한낱 위선에 지나지 않았음을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실감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는 18년째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의 노처녀이다. 그녀의 삶은 어렸을 때부터 그리 순탄치 않았다. 말하자면 사회 부적응자의 기미가 어려서부터 보였다는 얘기다. 그것은 자신만의 판단이나 의사가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컨대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 "싸우지 못하도록 해!"라고 말한다면 옆에 있던 삽을 들고 싸우는 친구의 머리를 때려서라도 싸움을 멈추도록 만들고 그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라치면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이후로 후루쿠라는 주변부에서 맴돌 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이따금 머리나 끄덕이면서 조용히 지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p.98)
은행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난 후루쿠라에게는 그녀와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정상인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후루쿠라를 가족 모두는 진심으로 반겼다. 조금은 특이했던 후루쿠라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일상과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후루쿠라의 체질에 잘 맞았을 뿐인데 가족들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 (p.113)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편의점 일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다른 곳에 취직 한 번 하지 못한 채 18년째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이 오픈하면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알바 인생에서 그녀는 수많은 알바생들과 이별했고, 점장도 지금까지 여덟 번이나 바뀐 상태였다. 그녀는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규칙적으로 일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불만도 품지 않았다. 달라진 것 없이 그렇게 그녀는 나이만 먹어 왔던 것이다. 그녀가 편의점을 쉬는 휴일에 학창 시절의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자신에 대해 간섭하는 친구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동생의 조언에 따라 몸이 허약해서 편의점 알바만 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변명을 친구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한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친구들의 평범한 삶과 비교하면 남자 친구를 사귄 경험도, 취직을 한 경험도 없는 그녀의 삶은 그들과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간다. 고친다는 건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p.113)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 신참 직원으로 '시라하'가 들어온다. 매사에 불평 불만이 많았던 그는 기계화 된 사회 체계와 규범화 된 승자 독식의 관습을 비판하며 다수로부터 멀어져 온 인물이다.
"무언가를 깔보는 사람은 특히 눈 모양이 재미있어진다. 그 눈에는 반론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심, 또는 상대가 반발하면 받아쳐줘야지 하는 호전적인 빛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깔볼 때는 우월감이 뒤섞인 황홀한 쾌락으로 생겨난 액체에 눈알이 잠겨서 막이 쳐져 있는 경우도 있다." (p.81)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믿는 시라하는 서른다섯 살의 대학 중퇴자이다.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세상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열망만 가득했을 뿐, 매뉴얼화 된 편의점 일은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결국 편의점에서 해고된다.
"그래요, 정면으로 세상과 맞서 싸워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쪽이 아마 고통에 대해 성실한 걸 거라고 생각해요." (p.112)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 시라하는 거리를 배회하던 중 후루쿠라의 눈에 띈다. 갈 곳 없는 그를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같이 살게 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남녀관계는 아니였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편의점 식구들과 후루쿠라의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축하의 말을 하며 반긴다. 그녀의 집에 숨어서 놀고 먹는 시라하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결국 18년 동안 몸 담았던 편의점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에 길들여진 그녀의 몸과 마음은 기준을 잃고 헤맨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입성했을 때 나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에 한없이 매료되었었다. 특별히 눈에 튀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서울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빴고, 나는 투명인간이 된 듯 자유로웠다. 하루 종일 시내를 싸돌아다녀본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쩌면 다수의 편에 선다는 건 평범함 속에 자신을 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묻혀버리지 않았던가. 평범함의 기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한 개인은 닮은 듯 서로 다른 파편화 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평범함이 주는 익명성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일에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