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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 최초 잡놈 김어준 평전
김용민 지음, 고성미 사진 / 인터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악연도 그런 악연이 없다. MB와 현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서 "쫄지마, 씨바"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를 외치며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정치판으로 이끌었던 인물. 바로 김어준이다. 부스스한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 비교양. 일본의 옴진리교 교주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 거칠 것 하나 없는 자신감. 그를 특정짓는 것은 그 외에도 아주 많다. 물론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오해나 선입견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임을 말히고 싶다.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하기는 나부터도 그랬다.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초창기에 김어준에 대한 사전지식이라곤 전혀 들어본 바 없었던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외모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듯한 어투에 그가 순전히 막돼먹은 후레자식이 아닐까 생각했었으니까. 그랬던 나의 선입견은 그의 저서 '건투를 빈다'를 읽은 후 말끔히 사라졌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그는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총수 김어준입니다. 새로운 방송을 만들었습니다. 이 방송은 이명박 대통령 가카에게 헌정하는 방송입니다. 가카가 퇴임하는 그날까지 이어집니다. 가카의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극강의 꼼수, 앞으로 매주 여러분 앞에 바치겠습니다." (p.174)
"정면으로 부딪혀서 자존심을 세우다가 한 방에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적당히 피하고 욱하면서 삶을 영위해가는 것이 이 시대의 처세다. 그런 때 필요한 것이 욕이고 위로다. 대신 욕해주는 것, 함께 있어주는 위로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태도로서의 콘텐츠다." (p.258)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이 있었던 어제, 나는 '나꼼수'의 멤버이기도 했던 김용민 PD가 쓴 <김어준 평전>을 읽었다. '은하계 최초 잡놈'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분방했던 부모님의 교육 철학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한 김어준에 대하여, 포스코에 취직했다가 금세 사표를 내던지고 세계여행길에 올랐던 그에 대하여, 사업에 실패한 후 딴지일보를 창간하기까지의 이력과 이혼을 하고 방송 MC를 하던 시절과 나꼼수를 시작한 이후에 대하여 쓰고 있다. 김용민은 김어준의 동지로서, 그를 지근 거리에서 살펴보았던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김어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김어준은 '선호하는 스타일의 배우'에 대한 답변을 무시하는 박근혜에게 10여 분 동안 줄기차게 추궁했고 '장동건'이라는 답을 간신히 얻어냈다. 그런 박근혜의 표정에서 '뭘 이런 걸 알려고 하지' 하는 찝찝함이 느껴졌다고 하고." (p.70)
사실 김어준의 저서 중 아무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인간됨이나 철학적 기반이 시정잡배의 수준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다만 그의 인생관이 범인의 시각에서는 특이하게 보인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원하는 대로 멋지게 살아보자' 하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니,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김어준 자신은 그렇게 사는 듯 보인다.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에게서 '제5도살장'을 쓴 커트 보네거트의 모습을 언뜻언뜻 보곤 한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공포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웃음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광대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가카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모토만으로 기득권 세력을 조롱하고 농락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신명나는 모습에 기꺼이 웃었고, 이를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었다. 나꼼수를 통해 새로운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P.329)
어제 국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고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험로는 지금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야당은 마치 대선에서 승리하기라도 한 것인 양 들떠 있는 모습이지만 그 속내는 제각각이란 걸 국민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나꼼수든 누구든 한국 야당에 염치는 고사하고 의리라도 회복돼야 뭘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의리는 간단하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아 슬퍼하는 공감이다. 정서와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과 다르다. 인간다움이다. 어느 정파, 어떤 정치인의 승리 그 이전에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다."(p.354)
우리는 종종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는가 하면 받은 것 없이 또 누군가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른이라면 적어도 호불호의 이면에 깔린 감정이 합리적인 판단에서 기인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한 번쯤은 따져보아야 한다. 나는 현재의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미워하는 건 절대 아니다. 자라온 환경이나 겪어온 일들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과오에 대해 떳떳하게 밝히고 용서를 구하지 못한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 한 국가의 리더가 된 자가 그만한 '용기'도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대통령의 비겁함에 대해서는 철저히 단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