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 -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
황인숙 지음 / 이다미디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읽었던 책에 대해 짧게나마 글을 쓴다는 건 또 다른 일인 듯싶다. 평론가가 아닌 이상 말이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괜히 어쭙잖은 말 한마디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이러쿵 저러쿵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감나라 배나라 간섭하는 꼴로 비친다면 아무래도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독서일기는 흔하지도 않지만 그(또는 그녀)가 읽었던 텍스트보다 소감을 기록한 글이 더 어려워 독자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작가라는 놈이 그 정도밖에 쓰지 못하느냐 누가 따지기라도 하는 듯 한껏 멋을 부려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비교하는 등 일반 독자들의 기를 사정없이 찍어 누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시 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인숙 시인의 독서 후기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은 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숫제 작가가 아닌 일반인의 글을 옮겨놓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작가도 이런 사실이 뭔가 모르게 께름칙했는지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독후감이나 서평이라는 것은 책읽기의 침전물이거나 흔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침전물이나 흔적을 밖으로, 몸뚱어리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그리 마땅치 않았다. 독후감을 쓰고 있노라면, 칠칠치 못하게 뭔가를 질질 흘리며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p.6)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읽었던 38권의 책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기록한 독서 후기인 셈이다. 작가는 그것을 '제대로 된 것이 아닌' 혹은 '정통 방식이 아닌' 일종의 서평이나 독후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으로서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서는 결벽에 가까운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이기에 그녀의 책을 읽는 독자가 일상의 사소한 일과 결부된 생활인으로서의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몸빼바지 차림의 편안한 옷을 입은 그녀가 아무도 없는 집안을 활보하는 듯한 그런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내 나이가 돼도, 아니 내 나이의 곱절이 되어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미움'의 앙칼진 톱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에게는 용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 용서하게 될 자신을 상상만 해도 용서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 미움과 증오만이 힘인 사람들. 나는 지금 가산 카나파니의 소설들을 통해 화들짝 발견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다." (p.39)

 

"사막의 꿈" "행복하기 위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사랑도 없이 돈도 없이" 등의 각기 다른 제목의 5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도리스 되리의 "나 이뻐?',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 파트릭 모디아노의 '신원미상의 여자' 등 우리가 한번쯤 읽었거나 누군가의 서평으로부터 대강의 줄거리를 전해 들었던 친근한 제목의 책들이 등장한다.

 

"내 인생에 통과 의례로 논술 시험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을 넘어 횡재다. 지금 이 나이에도 누군가 갑자기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생각을 펼쳐보라고 하면 '정말이지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스무 살 때는 오죽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얘졌을까." (p.206)

 

나도 이따금 책을 읽고 더러 마음이 내키면 '책읽기의 침전물이나 흔적'을 몸뚱어리 바깥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일종의 서평이나 독후감'에도 이르지 못하는, 말하자면 낙서에 가까운 글이지만 나는 몇 년째 블로그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블로그는 삶의 유희나 오락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셈인데 이게 때로는 엉뚱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댓글의 개수나 공감 또는 추천을 누른 횟수에 일종의 시샘 아닌 시샘을 느끼는 경우이다. 나중에 생각하면 헛웃음만 난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 무슨 추태인가, 하고 말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속에서 하찮은 나를 끝없이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독후감을 쓴다는 건 책에서 발견한 부끄러운 내 모습을 쉼 없이 드러내는 일이 된다. 그리고 블로그는 타인의 시선에서 그것을 검증하도록 한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끝없이 평가된다. 나는 그것을 가끔 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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