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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가 웃긴다고? 조심해! 나 까칠한 들고양이 에드가야! - 400일 동안 끄적인 일기
프레데릭 푸이에.수지 주파 지음, 리타 베르만 그림, 민수아 옮김 / 여운(주) / 2016년 10월
평점 :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도 반려동물을 집 안에서 키우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개를 집 안에서 키운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간혹 개를 품에 안고 지나가는 여자만 보여도 동네의 어른들은 뭔가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끌끌 혀를 차곤 하셨다. 개는 당연히 마당의 한쪽 귀퉁이에 박아 놓은 말뚝에 묶인 채 다 찌그러진 양은 밥그릇이나 깨진 바가지에 담긴 잔반을 먹고 자라는 존재여야 했다. 이따금 낯선 사람이라도 볼라치면 목청을 높여 컹컹 짖고 주인이 외출에서 돌아올 때면 가볍게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등 피아의 구별이 확실한 개는 주인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개를 집 안에 들이지는 않았고 그저 끼니를 거르지 않게 제때에 밥을 챙겨주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가 다였다.
반면에 마을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쥐도 워낙 많았고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집도 많았으니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많았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을 천성적으로 따르는 개와 달리 야생의 본능이 살아 있는 고양이는 사람 근처에 잘 오려 하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마주치는 고양이 눈빛 또한 보는 이를 섬뜩하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긴 겨울밤에 듣는 고양이 울음 소리는 어느 집 갓난쟁이의 울음인 양 애처롭게 들렸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나의 할머니도 고양이는 항상 재수없는 동물로 말씀하시곤 하셨다.
나는 지금도 고양이에 대한 친밀감과 두려움이라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듯한 우아한 걸음걸이와 도도한 자태, 사람들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는 고집스러움은 곁에 와서 엉기고 치대는 반려견보다 훨씬 사랑스럽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이웃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로 인하여 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
날씨도 날씨려니와 되어 돌아가는 나라꼴이 엉망이어서 나는 요즘 기분도 꿀꿀하고 진득하니 책을 읽기도 어려웠다.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껴 고른 책이 『내 얘기가 웃긴다고? 조심해! 나 까칠한 들고양이 에드가야!』이다. 들고양이 에드가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사회의 세태와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한 책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무수히 많지만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작가의 풍부한 상식과 넘치는 재치가 책의 성패를 좌우하게 마련인데 이게 또 너무 지나치면 과장인 듯 비친다.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적절한 선에서 써내려간다는 게 쉽지 않아서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우화가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르는 경우는 잘 없다.
"고양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도 보수적인 편이야. 난 최신기기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너희 인간들과는 달라. 낡은 공과 비닐봉지야말로 내가 무지 좋아하는 장난감이지. 그런 내가 '멍청이'들의 태블릿 PC에 서서히 중독되고 있단다. 발로 한 번 톡 치면 웹 서핑을 할 수 있고, 한 번 더 톡 치면 요리 레시피 앱을 실행할 수도 있어. 그리고 또 다시 발로 톡 치면 새를 던져 돼지를 죽이던 걸. 그러고 보면, 인간들은 가끔 괴상한 걸 고안해 내는 것 같아." (p.135)
이 책의 주인공인 6개월 된 아기 고양이 에드가는 어느 날 마크와 세브린느의 집에 입양된다. 에드가는 그집 사람들을 '멍청이'라고 부른다. 에드가가 살게 된 집에는 마크와 세브린느 부부, 다섯 살배기 로돌프, 열네 살짜리 레아, 잡종견 파타푸프가 살고 있다. '400일 동안 끄적인 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이름도 없었던 들고양이 에드가가 에드가로 살게 된 400일 동안의 생활을 일기로 기록한 책이다.
"젠장! 감옥이나 다름없는 이런 집에서 대체 어떻게 지내야 하지? 분명히 말하지만, 난 특급 우편물이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은 수고양이야. 문신도 새겼지. 좋아, 하여간 이런 수용소 같은 곳은 진작 벗어났어야 하는데. 그 어떤 길고양이 형제들보다 더 싫거든. 케이지는 비좁고, 불편한데다, 역겨운 냄새마저 뒤섞여 마치 빈민굴 같고, 먹이는 열차에서 파는 음식처럼 맛없어." (p.6)
에드가는 아이작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을 척척 증명할 만큼 똑똑한 고양이이지만 때로는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겁을 집어먹기도 하고, 이웃집 암고양이에게 홀딱 반하기도 한다. 고양이의 삶이라는 게 늘 먹고 자고, 또 먹고 자는 게 일이지만 호기심이 발동하면 무섭게 집중하기도 한다.
"우리 편집장이 귀띔하던 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일으킨 바람을 한번 타 보자고. 그러니 내 일기에도 에로티시즘을 살짝 가미해 보라고.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어제 저녁, 굉장히 멋진 암고양이를 만났지 뭐야. 그토록 섹시하고 요염한 암컷은 처음이었어." (p.108)
내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에도 들고양이가 산다. 밝은 갈색의 그 고양이는 잊을만 하면 나타나서 슬쩍 얼굴만 뵈주고는 빠르게 사라진다. 그런데 오늘처럼 기온이 꽁꽁 얼어붙는 날에는 등산로 초입의 침목 계단에 엎드려 잠을 자다가 내가 나타나면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괜시리 미안해진다. 나 때문에 잠을 깬 것 같아서 말이다. 작년 여름의 어느 날, 그 고양이는 자신의 새끼인 듯 보이는 어린 고양이들을 데리고 숲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또 혼자가 되었다. 그 고양이를 볼 때마다 나는 묻고 싶은 게 있다. '사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사람이든 짐승이든 삶이 항상 축복일 수는 없는 일, 오늘 하루도 지워지듯 스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