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누군가에게 단단히 발목을 잡힌 게로구나, 생각할 때가 왕왕 있다. 말하자면 무척이나 심심한 조물주가 나도 까맣게 모르던 어떤
미래를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툭 하고 내던져 놓고는 깔깔거리며 좋아라 하는 듯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질 때면 나는 그만 망연한 생각에 넋을
놓게 된다. 그럴라치면 일의 앞뒤를 따져 볼 요량은커녕 자포자기의 심정이 먼저 들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이른 나이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친구의 소식을 전화로 전해듣고는 어찌나 정신이 없고 황망하던지 '어째서?' 하는 물음보다는 '그렇구나!'하면서 주저앉아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은 더욱 빈번하게 벌어지고 그때마다 내 운명이 누군가에게 단단히 발목 잡혔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져만 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단편소설이 좋아졌다. 장편소설과 달리 단편소설의 짧은 이야기들 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발목이 잡힌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건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한때 재미있는 소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들고
있고 싶어서 대하소설만 읽었던 적이 있었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해도 단행본은 역시 막 재미있어지려는 찰나에 서둘러 끝이 나는 감이 없지 않아서
책을 덮고 나면 어찌나 아쉬움이 크던지 나는 처음부터 낱권이 아닌 여러 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만 골라 읽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무렵의 나에게 단편소설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서는 장편소설이 오히려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서 여러 권의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에는 숫제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엊그제 읽었던 김만옥의 소설집 <베어지지 않는 나무> 역시 단편소설집이다. 김만옥이라는 작가를 진작 알고 읽어 왔더라면 지금쯤
조금 더 진중하고 알찬 리뷰를 쓸 수 있었겠지만 나는 사실 이 책을 통하여 김만옥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1977년 마흔의 나이에
늦깎이 등단을 한 것이나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것이나 한국전쟁과 4·19혁명을 원체험으로 간직하며 작품활동을 한 것 역시 고 박완서 작가와
겹치지만 그녀의 글은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날 선 문체로 인해 독자의 마음을 깊게 도려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부모와 같이 살 때는 부모와의 충돌로 어느 정도 완화된 후에 내게 가해지던 폭력이 전혀 마모되지 않은
채 생으로 행사되었기 때문에 훨씬 그 강도가 높아졌고 빈도 또한 잦아졌다.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지옥 같은 공포로의 진입이 된 내막은
그랬다." (p.25 '회칼' 중에서)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엮은 이 책에는 '회칼'을 비롯하여 '거적때기', '한 그루 나무', 이상한
작별과 해후', 따뜻한 포옹, '저 희미한 석양빛', '아버지의 작고 검은 손금고', '돌멩이 두 개' 등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녀의 글에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묵인 속에서 일상인 양 빈번하던 가정 폭력의 실상이 낱낱이 그려지고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또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던 폭력의 그늘.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여자의 몸으로
팬티 한 장만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야만 했던 아픈 기억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그 기억을 먼 이국땅에서 우연히 떠올리게 된다는 줄거리의
'나무 한 그루'는 가부장적 권위를 등에 업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던 가정 폭력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때 왜 끝까지 거절하지 않고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요. 죽기
살기로 대항하면 어머니를 빼낼 수 없었겠어요? 발가벗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쉬웠을 텐데 말이에요." (p.87 '한 그루
나무' 중에서)
작가의 기억은 때로 6.25 전쟁과 4·19 혁명에서 머물다가 일제시대의 아득한 기억 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았을 그녀의 경험들이 시간의 체에 걸러지고 마침내 남았던 커다란 기억의 알갱이들이 이 책에 씌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머릿속에 남는 아픈
기억이 있게 마련이고 가슴으로만 썼던 혈서 한 장을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일 때가 있을 테니까. 가슴에 품었던 그 혈서가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눈물 한 방울에 섞여 붉은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기를 작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