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러 생각들 중 내 딴에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몇몇 것들을 모아 글로 옮기곤 한다. 말하자면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삶의 기억을 찾아 헤매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열정이나 마르셀 프루스트에 의한 삶의 재구성처럼 지난하고 힘든 작업일 수도 있고 시지프스의 노역처럼 덧없는 반복일 수도 있다. 애당초 나에게 주어진 것이 그것 밖에는 없다는 슬픈 고백일 수도 있다.

 

아침에 산을 오르는데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았다. 상수리나무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올해의 첫 작품인 셈이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도토리와 함께 나는 가을을 실감하고 있었다. 조용히 넘어가나 했던 2016년의 가을은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인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전혀 새롭지 않았던, 그동안 언론에 보도만 되지 않았을 뿐 어쩌면 줄곧 공공연한 비밀로 세간에 회자되어 왔던 검찰의 비리가 김모 부장검사에 의해 낱낱이 드러났던 것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김모 부장판사의 건도, 권력형 비리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민정수석의 건도 사람들은 다들 '그걸 이제야 알았냐'는 듯 끌끌 혀를 찰 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어쩌면 북한의 핵실험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학습효과란 그런 것이다.

 

가을은 겨울의 심연을 향해 떨어지는 추락의 계절이다. 시간에 붙은 가속도로 인해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빠른 속도로 밀려나 과거라고 명명된 어떤 체계나 순서도 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진다. 추락하는 기억은 손상되거나 변형된 채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나는 가까스로 건져낸 몇몇 기억들을 글로 적는다.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시지프스의 노역처럼 덧없는 일이다. 추락하는 계절, 가을에는 더 그런 느낌이 든다. 과거를 향해 이유도 없이 곤두박질치던 내 기억의 파편들과 추락하는 계절의 어디쯤,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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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