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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 - 인생을 개척하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인간주의 교육의 제시
텐게시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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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동의할런지 모르겠지만 학부형의 연령은 아이의 나이에 비례하여 결정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결혼을 늦게 하는 바람에 제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아이의 나이가 어리다면 동창회에 나온 친구들로부터 한참 어린 후배쯤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학교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남자들과는 달리 전업주부인 여자들은 '녹색 어머니회'다 '반 모임'이다 해서 학부형들끼리 모이는 경우도 많지만 '급식 당번'이며 '도서관 사서'며 '환경 미화'등 학교측의 요구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자신의 나이가 어떻든간에 그들과 어울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 중에 '반장 엄마', '부반장 엄마', '미화부장 엄마'를 '불쌍한 엄마 3종 세트'로 꼽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아이를 둔 죄인의 심정으로 그런 모임에 여러 번 참가하다 보면 나이 구분은 온 데 간 데 없고 '몇 학년 몇 반 아무개 엄마'라는, 서열을 따로 물을 필요가 없는 모호한 지위만 남게 마련이고, 사회 생활에서도 아이의 학년에 따라 그렇게 엄마의 서열이 정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합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이 그와 같은 모임에 나가는 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정보의 교환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교 성적에 의해 엄마의 위신이나 체면이 서는 까닭에 성적은 아이의 학년과 더불어 엄마의 서열을 매기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모임에 참가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고급(?) 정보가 교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이에 대한 교육열 하나는 단연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개나 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들 경험해 본 것일 테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년쯤 지나면 '학력 붕괴의 시대가 온다.'라거나 '성적보다는 인성'과 같은 말에 솔깃해지는 게 사실이다. 지쳤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대와는 너무도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그런 생활을 몇 년쯤 하게 되면 아이는 숫제 자식이 아니라 웬수로 보이게 마련이다. 아무튼 내가 <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을 읽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의 미래를 심히 걱정하는 까닭에.
"규칙을 잘 지키고 매너도 좋으며 얌전하고 말귀를 잘 알아들으며 친구와도 잘 지낸다. 특별히 커다란 트러블도 없고, 언뜻 보기에 별 탈 없이 자라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적 가치, 적극성이나 바이탈러티가 부족하고, 독창성도 없으며, 자기 부정이 강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한다. 이것이 「살아갈 힘」이 약한 아이의 특징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 (p.186)
우리 주위에는 이런 아이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일관되고 명확했다. '국가주의 교육'이 아닌 '인간주의 교육'을, '주는 교육'이 아닌 '끌어내는 교육'을 통하여 '오래된 뇌'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아이와 학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뇌신피질을 향상시키는 지식 위주의 '주는 교육'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솔직한 심정은 이것이다. 이와 같은 책이나 강연을 들으면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지만 돌아서면 금세 마음이 변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학력 붕괴의 시대가 온다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좋은 대학, 좋은 학벌은 아직 무시할 수 없는 성공 조건이기 때문이다.
"3장에서 「살아갈 힘」의 요소로 '의지력', '결단력', '하고자 하는 마음', '자기를 긍정하는 힘', '창조력', '감성' 등을 제시하였고, 7장에서는 서드베리 교육을 소개하면서 '인간적 매력', '적극성', '행동력' '바이탈러티', '교섭력' 등에 대해 다루었다." (p.105)
사실 아내와 나는 하나 있는 아들의 교육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나 나나 공부만 강요하는 호랑이 부모는 절대 아니다.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싫다는 건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또래들에 비해 여유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레고를 하거나 영어 동화를 들었다. 영어 학원을 잠시 다니기는 했지만 제 스스로 영어 원서를 읽고 이해하는 수준까지 실력이 향상된 건 순전히 아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결국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대자연 속에서 실컷 놀게 하고, 충분히「몰입」을 체험시키면 아이들의「살아갈 힘」은 신장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다. 아이들을 책상에서 일어나게 하고 대자연 속으로 데려가 실컷 놀게 해보자." (p.226)
저자의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한민국 부모의 심정을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여자 친구와 밤을 같이 보내고 싶은 젊은이가 '손만 잡고 잘게.' 라고 약속은 하지만 막상 나란히 누웠을 때 밤새 그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인내력이 필요하거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약속을 어기는 그런... '마찬가지로 학력 붕괴의 시대가 온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조언에 초연해야 하고 아이가 좋은 대학, 좋은 성적을 받음으로써 부모로서 으쓱해지는 그런 느낌을 향유하고자 하는 유혹을 과감히 뿌리쳐야만 한다는 말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공감은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