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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 20년간 생명의 목소리를 들어온 의사가 전하는 진료실 에세이
김남규 지음 / 이지북 / 2016년 5월
평점 :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하던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있을까마는 어려서는 보기에 근사한 일, 월급을 많이 받는 일,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우를 받는 일 등을 직업 선택의 조건으로 삼아 선호했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부대끼며 살다보면 그딴게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밖에서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알차게 꾸려 나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갖는 일과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환자를 직접 관찰하는 시간은 상대를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 인격체로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와 호흡음은 생명의 신호이다. 호흡을 통해서 산소가 들어와 피가 돌고, 피가 조직에 산소를 보내서 각 기관이 제 기능을 한다. 이런 과정을 느끼는 나만의 이 의식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날이 행하는 중요한 예식이다." (p.51~p.52)
세브란스 병원 외과부장이자 연세대학교 주임교수로 있는 김남규 박사의 책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를 읽었다. 대장암 분야 최고의 의사로도 선정된 바 있는 저자는 단지 기술자로서의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참인간으로서의 의사는 이런 것이다 하는, 의사로서 그가 추구하는 면모를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수년간 '진료실에서 부친 편지'라는 제목으로 웹사이트 유어스테이지yourstage에 기고했던 칼럼과 개인적으로 쓴 글을 모아서 엮었다는 이 책은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인생의 가치를 하나 둘 기억하게 한다.
"가끔씩 나는 지식과 경험, 기술을 파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곤 한다. 매일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보다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 대신 가끔 귀찮기도 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어 힘들다. 진정한 의술, 인술은 옆에서 같이 아파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아닐까." (p.91)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이를테면 그가 만났던 환자들, 동료들, 선후배, 가족으로부터 깨달았던 것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많은 경험들에 대해 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삶이란 제 한몸 건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몸이 아프거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까닭에 의사는 타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까지 돌보는 사람일 터, 삶의 이치를 끝없이 터득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의사 노릇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보는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위태로운 마음을 잘 붙잡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내게 예정된 시간을 의식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p.197)
6월도 이제 하순을 향해 가고 있다. 섭씨 30도를 넘나들었던 더위와 연일 시야를 흐리던 미세먼지로 인해 꽤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삶은 지속되고 가까운 시일에는 장마와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실린 저자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다섯 꼭지가 이채로웠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그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오늘도 날이 덥다. 내가 살았던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다양한 색깔들로 채색되어 언젠가 내 삶의 그림으로 나타날 테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미욱하기만 하다.